'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
정지현 AE | 빅밴드앤코

Adfast 2025
한국은 슬슬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곧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와중이었다. 대행 사들도 어느덧 바쁜 비딩 시즌을 슬슬 마무리하고 여유를 찾아갈 무렵, 파타야에서 날아온 초대장 을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곤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매해 꾸준히 열리는 ADFEST는 2025년 ‘COLLIDE : 충돌하다’라는 theme 아래, 세계 각국의 광고인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회사의 성과를 알리기도 하며, 각자 준비한 결과물들을 발표하는 자리다.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 자신의 작품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 는 것이 기대됐다. 한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언어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이 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단연코 광고 산업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COLLIDE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테마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충돌하는 것. 무엇이? 그 앞을 채우는 것이 이번 행사의 핵심이겠지만, 충돌하는 것은 때때로 긍정적, 부정적으 로 다가올 때가 있다.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모이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어 하늘 모르고 솟아 충돌 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바닥으로 내리꽂아 충돌할 때도 있는 것처럼 ‘떡락과 떡상’이 만연한 이 시장의 헤리티지를 잘 담아낸 주제라고 생각했다.
광고 하나가 만들어질 때에는 수많은 머리가 모여 만들어진다. 기획, 디자인, 영상, 미디어플랜 등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결과가 ‘떡상’이던, ‘떡락’이던 간에, 우리는 그저 달릴 뿐이다. 마치 전등 빛에 정신을 잃고 달려드는 나방처럼 말이 다. 표현이 조금 거칠 수도 있겠으나, 모두들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한 곳만 보고 달려가는 것 자체 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한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테니 말이다. 강연들을 하나하나 들어보면서, 목적을 정해놓고 달리는 이 산업의 매력,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연사들에게 존 경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뜨거운 주제 AI
몇 해 전, AI의 본격적인 시장 투입과 ChatGPT의 등장으로 광고계뿐만이 아닌 모든 산업 시장에서의 큰 변화가 있었다. ADFEST에서도 2024년에는 테마를 ‘Human Intelligence’로 잡아 인간의 지능에 대해 이야기하며 AI와 대적하거나 공존하는 인간의 휴머니즘 에 대한 딜레마에 대해 토론했다.
이처럼 여전히 뜨거운 주제로 자리 잡은 AI는 지금의 ADFEST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야기 였다. AI 활용에 대해 나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터라, 세계인들의 생각이 궁금했던 찰나였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감사할 따름이었다. 역시나 그들은 이미 AI를 업무에 적극적으 로 활용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AI가 좀 더 고차원적인 디렉션과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특 히나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는 여전히 인간이 낫다는 어쩌면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던 것이 조금 무안해질 정도로. 크리에이티브뿐만 아닌 전반적인 스토리텔링까지도 AI를 통해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세션에서는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작업에 AI를 적극 활 용하고 있었으며 또한 함부로 말해도 될까 싶지만 AI 적극 옹호자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지나가듯 농담처럼 말하는 ‘이러다 AI한테 일자리 다 뺏기는 거 아냐?’라는 이야기가 마치 현실로 다가올 것만 같지만, 그는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창작하는 방법을 변화시킬 뿐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에이티브와 테크가 단순히 결합됐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 면 AI로 인해 삶이 편해진 것처럼, 때로는 현실 가능성이 어려워 포기했던 좋은 아이디어들이 AI를 통해서 크리에이티브를 뺏긴다는 느낌보다는 함께 ‘협업’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광고업의 visuality는 아직까지는 인간이 뛰어나다는 생각은 변함없으나, 불가능한 것을 현실로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협력자’로 발전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것처럼, AI를 활용한 콘텐츠에 대한 세션도 많았다. 특히

거슬리는 콘텐츠
본격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기 전 그 흐름과 판을 짜는 AE로서 ADFEST에서 가 장 눈에 띄는 세션은 콘텐츠를 기획하는 다양한 회사들의 방향성과 도전 정신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 주의 깊게 살펴봤던 세션은
다만 이것이 그저 완성도 떨어지는 콘텐츠를 의미 없이 계속 생산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캐치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바라보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말이 쉽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서 우리가 매일같이 일을 하는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인플루언서 ‘무댕(MooDeang)’의 예시를 들었다. 그저 동물원의 아기 하마가 얼마나 귀엽고, 영특한지에 대해 포스팅했을 뿐이고, 이를 이용해 밈을 만들었을 뿐인데, 이 아기 하마의 팔로워는 급증하며 결국엔 굿즈까지 나오게 됐다고 한다. 이 부분을 들으며, 얼마 전 한국에 큰 열풍을 일으켰던 에버랜드의 판다 ‘푸바오’가 생각났다. 그저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판다를 전 국민이 열 광하며 사랑하던 그때, 푸바오 찾기라며 여러 판다들의 사진을 나열해 놓고는 해상도가 닳고 닳아 짓이겨질 때까지 공유하던 그때, 트렌드는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전에는 온갖 효과와 화려한 기술이 점철된 영상이 인기였다면 요즘은 그저 아기 하마가 하품하는 단출한 영상이 100만, 200만 조회수를 만든다는 점이다. ‘Perfection is killing creativity. Teams are trapped by the fear of getting it wrong’ 이것은 비단 업무 의 개념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을 고찰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고 또 때로 는 강요받기도 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레거시와 크리에이티브의 결합
세션 중 반가운 단어가 들려왔다. ‘Squid Game’.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 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 게임의 마케팅을 넷플릭스 방콕에서 소개했다. 오징어 게임은 콘텐츠 자체로도 파격적이어서 이를 국내에서 활용하는 모습은 ‘세모, 네모’의 코스 프레나 패러디 정도였는데, 이것이 과연 방콕 스케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오프라인 마케팅을 선보였다. 방콕의 사원에 대규모 ‘세모, 네모’를 등장시키기도 했고, 커다란 ‘영희’를 차 오프라야 강 위의 바지선에 띄워 온 국민들을 레이저에 맞도록 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가감 없이 사용했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이 국내에서도 이슈가 됐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추억 속에 익히 알고 있는 ‘달고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활용, 그것이 살인 게임으로 이어지게 되는 충격에서 호기심을 이 끌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넷플릭스 방콕 또한 자신들의 문화유산에 가감 없이 오징어 게임의 등 장인물들을 배치시켜 이 부분에서 오는 이질감을 잘 활용한 것 같았다. 오징어 게임뿐만 아닌 ‘지 금 우리 학교는’의 프로모션에서도 좀비들이 가득 찬 미디어 버스를 만들어 스쿨버스로 래핑 한 뒤, 도로를 달리게 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 도시와 맞지 않는 이질적인 매개체가 등장하는 순간, 사 람들의 주목을 이끄는 것은 순식간이며 입소문이 퍼지는 것 또한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한 편으로는 이러한 과감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규제와 인정이 부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놀람의 연속이었던 3일의 여정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ADFEST는 이번이 처음 참가하게 된 것이었고, 파타야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법 긴 일정이라 생각했으나 끝나고 나니 오히려 너무 짧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세션 외에도 다양한 수상작과 크리에이티브 작품 들을 관람하고 구경할 수 있었으니 꽉 찬 행사라는 생각이 든다.

광고를 업으로 삼기로 다짐하며 대학 시절부터 변하지 않는 다짐은 ‘경험을 넓히는 것’이었다. 해 보지 않았던 것들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ADFEST는 경험을 넓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와는 다른 사회에 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끝난 후 아쉬움이 남는다면, 내가 프리토킹에 출중한 사람이었다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 연사들과 애프터 파티에서 궁금한 점을 질문 하고 심심한 농담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정도? 그 외에는 정말 만족스러웠던 2025 ADFEST.
Kokunk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