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재성장팀 임동진 CⓔM
가을이 급하게 찾아온 10월의 이른 아침, 찬 공기를 마시며 상암 평화의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슈퍼블루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죠. ‘슈퍼블루 마라톤’은 올해로 벌써 10회째를 맞이하는 마라톤 대회로 여느 대회와는 개최 취지가 다릅니다. 바로 장애인과 함께하는 대회이기 때문인데요. 파란색 운동화 끈을 묶고 걷고 뛰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돌아보는 캠페인 차원의 대회입니다. 슈퍼블루의 ‘BLUE’는 ‘Beautiful Language Use will Echo’의 약자로 ‘아름다운 말은 울림이 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즉 ‘장애인 관련 용어 바르게 쓰기’ 캠페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비록 끈이 없는 운동화를 신어 파란 끈을 묶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파란색 운동화 끈을 묶고 달리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니면 팔목에 감거나, 머리 끈을 운동화 끈으로 대신해서 착용하고 오신 센스 있는 분들도 계셨어요. 저는 왜 그런 센스가 없었던 것인지!
이른 아침부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마라톤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동호회나 동료들끼리 참가한 분들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가족 단위 참가자도 많았습니다. 졸린 눈 비벼가며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기들부터 직접 마라토너로 참가하는 자녀와 함께 몸을 푸는 부모님들, 뛰는 게 안 된다면 걷기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대회에 참가하신 나이 지긋한 어르신 분들까지 정말 다양한 세대가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팀 후배와 함께 참가한 저도 러닝복으로 환복한 후에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치어리더팀의 활기찬 율동에 맞춰서 몸을 풀다 보니 금세 다가온 출발 시간! 사실 평소 조깅을 즐겨하는 저는 가장 짧은 코스인 5KM에 참가했기에 ‘이 정도야 뭐 평소대로 뛰면 되겠지’라며 별생각 없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막상 출발 시간이 되니 엄청난 인파에 압도되면서 묘한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출발선에서 ‘슈퍼블루 5가지 약속’을 모두 함께 외치고 출발했습니다. 매년 회사에서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수강하고 있던 터라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만 그리던 내용을 입으로 소리 내어 외치는 것만으로 새삼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고, 비장애인으로서 갖고 있는 일상의 고마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준비해 온 플레이리스트를 틀고서 드디어 출발! 초반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출발하다 보니 페이스 조절이 쉽지 않았지만, 이내 저만의 리듬에 발걸음을 맞추고 기분 좋은 숨가쁨을 느끼며 달릴 수 있었습니다. 상쾌한 가을바람이 살갗을 스칠 때마다 참가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한걸음, 한걸음 힘차게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웬걸, 전환점을 통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는 철근처럼 무겁고 숨은 턱까지 차올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평소에 하던 조깅보다 속도를 높여서 달리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완주를 포기할 마음은 없었지만 잠시라도 뜀박질을 멈추고 걷고자 하는 유혹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그때 제 앞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엄마가 함께 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더 이상 못 뛰겠다며 힘들어하고, 엄마는 조금만 더 뛰어 보자고 아이를 타이르고 있었습니다. 대략 1KM 정도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 아이가 천천히 뛰더라도 뜀을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 옆을 지나며 엄지를 치켜올리며 말해줬어요. “멋지다!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파이팅!”
그렇게 말하고 모녀를 뒤로한 채 계속 달려 나갔는데, 막상 그렇게 말하고 나니 제가 멈추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를 악 물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기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저의 말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응원이 됐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나 봐요. 그게 계기가 되어 그 뒤로 쭉 멈추지 않고 꾸준히 달려서 마침내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아이도 저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겠죠?
마라톤을 끝내고 메달을 손에 쥐니 뿌듯함과 성취감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빠진 숨을 고르느라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지만 말이죠.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도중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려서 결승점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인내를 그대의 의복으로 삼아라. 의복을 벗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지리라.”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더 쉽게, 더 편하게 살고자 발버둥 치는 일상 속에서 이번 ‘슈퍼블루 마라톤’에 참가한 것은 인내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유혹의 첫맛은 달콤하지만 끝 맛은 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항상 자잘한 유혹과 욕심에 휘둘리기 일쑤였는데, 마라톤을 뛰는 30여 분간은 인내를 옷처럼 입고 달렸어요. 이 경험을 토대로 조금이나마 더 성숙한 제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이번 경험처럼 인내를 옷처럼 입고 포기하지 않고 달리다 보면 또 다른 성공의 결승점에 다다를 수 있겠죠? 함께 달리는 우리 모두,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