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사는 소비자들
대홍기획 기사입력 2024.01.29 04:05 조회 957


글 최지혜 /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석·박사, <트렌드 코리아 2014~2023> 공저. 소비자 심리 이해와 소비 트렌드 분석에 관해 연구하고 강의한다.
 

요즘 소비자에게 옷을 구매하는 주된 방법을 물으면 생각보다 다양한 답변에 깜짝 놀랄 수 있다. 빈티지샵을 선호하거나, 해외 직구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좋아하는 인플루언서 브랜드에서 구매하거나, 리셀 플랫폼을 먼저 찾기도 한다. 구매 채널만의 문제일까. 아마존에서 신발끈을 검색하면 2천 개가 넘는 상품이 뜨고, 스타벅스에서는 8만 가지의 음료 조합이 가능하다. 배달의민족 앱에 등록된 메뉴의 수는 무려 2,683만 개가 넘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선택지가 많아졌다. 이렇게 복잡한 소비환경 속에서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구매결정의 노고를 덜기 위해 특정 인물, 콘텐츠, 커머스를 추종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를 ‘나도’를 의미하는 디토(Ditto)를 붙인 ‘디토소비’라고 정의한다.

 

 
디토소비는 스타나 인플루언서에 대한 맹목적인 ‘따라 하기’와는 다르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를 좋아하기 때문에 해당 인물이 광고하고 제안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따라 하는 소비는 표면적인 추종소비에 가깝다. 반면 디토소비는 나의 가치관에 맞는 대상을 찾고 그 의미를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주체적 추종소비다. 표면적 추종소비가 주를 이뤘던 과거에는 다수가 좋아하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스타를 찾아 몰려들었다면, 디토소비 시대에는 자신의 뾰족한 취향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번 칼럼에서는 디토소비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 2024년 시장에 미칠 변화를 예측해보고자 한다.
 

주체적인 해석을 통한 사람 디토

디토 소비자가 추종하는 첫 번째 대상은 사람이다. 예전에는 ‘어느 브랜드의 어떤 제품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누가 사용하는 제품인가’가 더 중요하다. 상품이나 브랜드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보다 해당 제품이 준거집단 즉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로 해석되느냐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디토 소비자가 추종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제품을 선별하고 제품이 갖는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부분이 기존의 팬덤소비 또는 스타마케팅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팬덤소비나 스타마케팅의 경우 소비자가 어떤 스타를 좋아해서 그가 사용하거나 광고하는 제품은 무조건적으로 구매를 고려했다면, 사람 디토에서는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나의 가치관과 얼마나 일치하느냐’라는 추종자의 주체적인 ‘해석’이 구매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화면 속 콘텐츠를 내 것으로

사람들이 추종하는 두 번째 대상은 콘텐츠다. ‘오늘 저녁에 뭐 먹지’ 같은 단순한 고민부터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가지’와 같은 제법 복잡한 고민까지 만화,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에서 정답을 찾는 모습을 보인다. 콘텐츠 소비가 급증한 코로나 시기 이후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콘텐츠에 대한 몰입이 화면 밖 현실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본래 콘텐츠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관람의 대상이었다면 디토 소비자에게 콘텐츠란 소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고유한 취향과 안목 어필

사람들이 추종하는 마지막 대상은 유통 채널이다. 요즘에는 대형 유통인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온라인, 모바일 쇼핑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또 온라인, 모바일 쇼핑에서도 대형 종합몰 대신 특정한 카테고리의 상품만을 취급하는 전문몰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러한 전문 영역 쇼핑몰을 수직적으로 특화했다는 의미에서 ‘버티컬 커머스(vertical commerce)’라고 부른다. 이들은 해당 영역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과 안목으로 제품을 선별하고 제안한다. 편집숍, 셀렉트숍, 취향숍, 큐레이션숍 등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커머스만의 고유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 기준과 맥락을 가지고 있다.


과잉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전략

그렇다면 이러한 디토소비 트렌드는 어떠한 배경에서 발생할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선택지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벤처투자가이자 작가인 패트릭 J. 맥기니스는 SNS의 확산과 지나친 풍요가 결합되며 FOBO 증후군이 등장했다고 지적한다. FOBO란 Fear OF Better Options의 약자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뜻한다. 이러한 불안은 최종결정까지 더 오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기도 한다. 막상 선택을 한 뒤에도 미련은 계속된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옵션이 많아진 만큼 시간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대표 칼럼니스트 나카무라 나오후미는 디지털 기술이 인간을 편리하게 만든 동시에 정보의 양을 폭발적으로 늘렸다고 분석한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반면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인은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택해야 할 옵션도, 경험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시간이 제한적이니 실패에 대한 기회비용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과거 소비자는 마트, 백화점 혹은 종합 온라인 쇼핑몰 같은 대중적인 유통 채널에서 되도록 많은 상품을 비교한 후 그중 제품력이 가장 뛰어난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제품의 수와 유통 채널이 절대적으로 많아지고 제품력이 상향평준화된 현대 시장에서 뛰어난 제품력만으로는 디토소비를 이끌어내기 힘들어졌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내 상품의 타깃 유저를 정확히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나노인플루언서와 버티컬 커머스 사이트를 개발해 나가는 것이 첫출발이다. 나아가 그 전제로서 제품력을 뛰어넘는 기업 혹은 브랜드만의 철학이 중요해졌다. 디토 소비자가 진정 따르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추종하는 대상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결국 디토소비는 상품 자체가 아니라 기업과 브랜드의 철학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 회사, 브랜드의 철학은 무엇인가?’ 과잉 정보의 늪에 빠진 소비자에게 명확한 취향과 철학으로 선명한 선택지를 제안해 줄 브랜드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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