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돈에 대한 고민이 많다. 아마 어느 대행사의 매체팀이라도 느끼는 점은 비슷할 것이다. 확실히 작년과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매체비가 많이 줄어든 것도 그렇지만, 있는 매체비를 쉽사리 쓰지 못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몇몇 매체 제안 요청에서는 매체비 쓰임에 대한 논리, 즉 안정적인 성과를 요구한다. 광고나 브랜드의 인지도, 대표적인 포털의 검색량, 심지어는 상품의 매출까지도 예상치를 고려해 달라는 경우도 있다.
광고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예상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면 좀 더 안정적인 의사 결정도 가능할 것이고, 재무를 담당하는 쪽에 얘기하기도 편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광고 시장에는 이런 수요를 맞추기 위한 지표와 이론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중이다. 다양한 경험치를 토대로 한 적정 비용과 미디어 믹스 모델링은 물론이거니와 트렌드인 AI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이런 솔루션들이 훌륭한 논리의 결과라는 점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완결된 논리를 조금 벗어나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좀 더 필요할 수 있는 요소를 아래와 같이 생각해 봤다.
먼저 소비자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나는 소비자를 관찰하는 입장이지만, 역으로 소비자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조차도 소비자로서의 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어떤 날엔 광고를 보고 나서 곧바로 구매 버튼을 클릭하지만, 어떤 날엔 나를 따라다니는 광고를 꼼꼼하게 신고 버튼으로 제외하기도 한다. 연애로 비유하자면 어떤 광고의 프러포즈는 감미롭게 다가오는 날도 있지만, 어떤 광고는 “사랑해”만 외치는 스토커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메시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몇 번을 만났느냐, 언제 만났느냐의 시점과 빈도에 대한 문제도 아니다. 구매에 이르기 위한 나의 여정은 하나의 연애 과정과도 같기 때문에 충동도 변덕도 자주 느끼는 나 자신이 원인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끈기 있게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보다는 조금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 너그럽게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하나의 광고로 치환된다면 아마 구매를 일으키는데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둘째, 우리는 너무 깔때기 형태로 소비자를 이해하고 있다. 요즘 매체 제안은 마치 롤플레잉 게임과도 같아서 소비자가 레벨업을 할 때마다 정해진 룰을 따르라는 법칙 같은 것을 만든다. 소비자는 지금 어떤 레벨인가, 우리가 광고를 노출시킨 사람들은 이제 레벨 2이니 레벨 2의 접근법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가만히 내 주위를 보더라도 특정한 광고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스스로를 브랜드가 분류한 어떤 레벨로 여길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광고를 몇 차례에 걸쳐 봤더라도, 겨우 봤다를 어렵사리 기억해 낼 뿐이지 브랜드를 향한 태도가 구매로까지 연결되도록 열려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광고는 물론 무척 소중하지만, 소비자 인식까지 강요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소비자는 우리의 광고뿐만이 아닌 너무 많은 광고와 정보 자극으로부터 항상 피로한 상태다. 우리가 보여준 메시지에 동의하는가, 이해하는가, 설득되었는가, 이건 정말 어려운 판단이다.
과거에도 설문지를 기반으로 소비자들의 이러한 태도를 따지는 경우는 많았다. 다만 설문이라는 방법의 한계로 소비자가 설문에 실제 속마음을 터놓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때문에 결과를 믿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이견이 많았다. 지금은 설문조차 없이도 광고에 노출된 사람의 레벨을 정의하고, 그룹 지어 마치 하나의 브랜드 클럽을 만든 것처럼 광고를 준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미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에 호의적일 것이라는 믿음은 매번 의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셋째, 우리는 너무 우리가 만든 완벽한 것에 의지하고 있다. 앞서 서두에 언급한 매체 모델링들은 그간 실패하지 않았던 모든 사례들을 통한 결론에 가깝다. 때문에 성공의 공식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적정 비용과 믹스를 제시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재미있었던 사례들이 이런 비용과 믹스를 통해서만 구현됐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생뚱맞은 장소와 시간에 노출됨으로써 새롭게 고객과의 유대감을 가져갔던 사례들도 많다. 너무 옛날 얘기겠지만, 버스 광고를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됐던 어느 한의원의 광고와, 저녁 시트콤의 엔딩 자막만 보면 커피가 생각나게 만드는 카페 브랜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런 특수한 사례가 일반적인 경우가 될 수는 없다. 단 같은 모델링을 적용한 모든 광고가 같은 비용의 같은 매체 믹스를 운용한다면 규모의 싸움으로만 매체가 판단될 뿐 특별하게 제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혹시나 나만이 특별하게 합리적인 솔루션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과한 자만일 수 있다.
23년도는 생각보다 광고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어느 회사나 회사의 장부를 펼쳐 놓고 가장 먼저 줄이고 싶은 비용 항목을 꼽자면 광고선전비가 대표적이다. 광고비는 예상 가능한 ROI를 기반으로 제안이 진행되고, 그냥 쓰는 비용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예산으로 설득된다. 그러나 많은 모델링과 솔루션이 같은 방향을 향할수록 동일 매체 안에서의 경쟁은 심해진다. 즉, 예상할 수 없는 경쟁 변수가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예상 밖의 결과들이 나타날수록 투자의 개념인 광고비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불황의 시기, 불안을 안고 쓰는 광고비의 제안은 그 회사가 쓸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적절한 비용 세팅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만약 그 비용이 실패하더라도 굳이 회사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전 대비 다뤄지는 광고비의 양은 줄어들겠지만, 매번 대중만을 상대하는 광고가 아닌, 소규모지만 우리가 핵심 타겟으로 여길 수 있는 새로운 소비자들에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식들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창의적인 작은 성공들의 경험이 다양하게 확보될 때, 내년과 내후년에 더 브랜드에 적합한 광고들을 만들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각각 흩어진 소비자들을 이해하고, 대화하면서 관계 중심적인 광고가 지속 가능한 광고로서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