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연말공연이 있었다. 한 클래식 팀의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함께 공연해온 지도 어느새 일 년이 넘었다. 우리의 공연은 항상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 한 권을 고른다. 연주자들은 내가 고른 책을 읽고 그 내용에 맞춰 클래식을 선곡한다. 공연날 나와 연주자들은 책과 음악을 주거니 받거니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연주한다. 책도 클래식도 지루하다고들 하는 콘텐츠이지만 이런 지루함과 저런 지루함 사이를 오가는 와중에 새롭게 생성되는 의외의 재미가 있는 것인지 공연을 본 관객들의 만족도는 언제나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연 만족도가 가장 높은 사람은 공연 당사자인 나일 것이다.
나는 무대에 오를 때 중앙에 서지 않는다. 관객석에서 바라볼 때 내 자리는 무대의 왼쪽 끝이다. 거기서 나는 책을 소개한다. 준비한 말이 끝나면 나를 향하던 핀 조명이 꺼지고 바로 뒤이어 중앙에 모여 있는 연주자들을 향한 조명이 켜진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바로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연주자가, 고개를 조금 더 돌리면 피아노 연주자의 뒷모습까지 보인다. 그때 나는 무대 위에 있으면서도 순식간에 관객으로 돌변한다. 내 입장에서는 연주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매우 특별한 관객이 되는 것이다. 지휘자 없이 들숨소리나 눈빛 같은 것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사인을 보내는 모습, 연주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주체적 권한을 갖는 손가락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이 이끄는 대로 호응하는 고개와 눈썹, 입술… 그런 것들을 나는 누구보다 근접한 곳에서 생생히 바라본다. 나는 음악을 듣는 중이지만 그 순간의 음악은 마치 보는 종류의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음악과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 간의 구별이 잠시 어렵고 무의미해진다. 들려오는 음악이 점점 좋아질수록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의 손가락과 손목이, 팔과 어깨를 지나 앙다문 입과 꾹 감은 눈이 덩달아 점점 좋아진다. 불쾌하고, 무례하고, 잔인하고, 더러운 사람들에 진절머리내며 살다가도 그렇게 음악을 ‘보’는 동안, 내 안에서 인간을 미워하는 마음이 한풀 한풀 없던 일이 되는 것만 같다.
또 가끔 어떤 때는 모든 게 사라지기도 한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관객도, 모든 게 사라지고 음악과 나라는 의식만 남아서 그 둘이서 어디론가 훌쩍 다녀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짜릿한 경험이다.
바야흐로 겨울이란 군고구마도, 호빵도 아닌 결산의 계절. SNS에는 찬 바람이 불면 ‘올해의 뭐뭐’가 슬금슬금 등장하기 시작한다. 올해의 드라마, 올해의 영화, 올해의 책, 올해의 사건…. 물론 어제의 공연에도 ‘결산’이 있었다. 연말 공연이었으니 말이다.
그간 클래식 팀이 해왔던 다양한 기획 공연들, 그중에서도 의미 있었던 순간들을 꼽아 다시 관객들에게 상기하고 기념하면서 나는 ‘베스트 오브 게스트상’ 이라는 특별한 상을 수상했다. 트로피도 받았다(트로피는 산타모자를 쓴 동물 인형이었다.) 나는 그간의 소회와 수상소감을 나누고 그동안 함께 불렀던 노래 가운데 세 곡을 불렀다. 퇴장하기 전 연기대상에서 상이라도 받은 배우처럼 나는 트로피(인형)를 높이 들고 관객을 향해 화려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몸을 돌리자 벽에 난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만약 나에게 각양각색의 공연 중에서 클래식 공연만의 특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대 위에 나 있는 ‘문’을 언급할 것이다. 보통 무대의 상수나 하수의 어둠 속에서 불쑥 등장하는 식인 다른 공연과 달리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꼭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문도 무대의 일부인 듯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서 관객석에서는 모두 문을 볼 수 있다. 그곳을 통해 누군가 등장하고 퇴장하는 것도,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잠깐씩 보이는 문 너머의 어둠도.
나는 클래식 공연을 볼 때마다 언제나 문 쪽을 향한 호기심 때문에 약간씩 괴로웠다. 저 문 너머에는 대체 무엇이 있을까. 무대에 오르기 전 사람들은 문 너머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공연이 끝나고 관객석에서 앵콜을 외치고 있을 때, 퇴장한 사람들은 문 너머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나는 이제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다. 지난 일 년간 그 문 너머에 있던 사람이 되어 보았기 때문이다. 문 너머에는 그저 평범한 의자들이 벽을 따라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몇 개의 모니터와 큐시트를 앞에 둔 채 끊임없이 무전을 교신하며 무대 위 컨디션을 콘트롤하는 무대감독님이 고독하게 앉아있다. 그게 다다. 다소 삭막하고 건조한 풍경. 부드럽고 우아하게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문도 무대감독님이 하는 일이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퇴장하는 사람들은 앵콜무대를 펼치기 전의 막간의 시간 동안 땀도 닦고 의자에 털썩 앉아 숨도 돌리고 어쩌면 한 켠에 놓여있는 케이터링 바에서 쿠키도 하나 집어먹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했었다. 그런 일은 없다. 모두가 퇴장하자마자 문 바로 뒤에 작은 동물들처럼 오밀조밀 모여 선다. 의자에 털썩 앉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언제 나가? 언제? 지금? 지금 나가? 신나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런 대화를 속닥거린다. 누군가 나가자, 지금. 이라고 말하면 무대감독님은 문을 조용히 열고, 그럼 그들은 언제 조잘거렸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의젓하게 뚜벅뚜벅 무대 위로 걸어 나간다. 나는 내 순서가 끝난 뒤에도 대기실로 돌아가지 않고 문 뒤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이렇게 저렇게 상상해보기만 했던 그 문 너머 미지의 영역에 지난 일 년 동안 내가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조금 시시하기도 하고 그렇다. 미지는 지(知)가 되면서 꼭 조금씩은 시시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시시함이 상쇄될 만큼 얻은 것이 있다. 그 문을 넘나드는 모두에게서 보이던 빛나는 멋. 그것이 지난 일 년간 나에게서도 어설프게나마 감돌았을 것이(라고 믿고싶)다.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서던 나.
2021, 올해 나의 멋으로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