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우성 / 시인, 컨텐츠 에이전시 <미남컴퍼니> 대표
작년부터 결혼이 하고 싶었는데 못했고, 올해도 가능성이 희박하… 없다. 결혼할 사람을 어디서 찾지? 이번 주제는 ‘사랑’인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떻게 만나는가’다. 대학교 1학년 때 애인은 인문관 계단을 올라가는 나를 보고 종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종소리라는 게 정말 있어?”
“응, 내가 들었어.”
우리는 헤어졌으니 아무래도 그 친구가 잘못 들은 거겠지? 엄마랑 아빠는 선을 봤는데, 아빠가 엄마를 만나려고 하루 휴가를 내고 먼 거리를 버스를 타고 갔다.
“그땐 다들 그렇게 만났어.”
엄마 말을 듣고 다들 그렇게 만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친구 부모님이 연애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 저분들은 특별하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절대 아빠 같은 사람이랑 다시 결혼 안 한다는 걸로 봐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 같다. 하지만 수십 년째 함께하는 걸 보니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난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데 결혼이라는 게 아니, 사랑이라는 게 그런가 보다. 모순이라 쓰고 사랑이라고 읽던가 말던가.
나는 소개팅 세대다. ‘소개팅’과 ‘세대’를 나란히 쓰는 게 어색하지만 뭐, 그런 세대인 건 맞으니까. 맞선과 소개팅은 뭐가 다른지 생각해봤다. 손만 잡아도 결혼해야 한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는데, 그때는 ‘연애’라는 단어가 외설스럽게 느껴졌을 거 같다. 소개팅은 연애하려고 만난다. 소개팅해서 만난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지만, 애초에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소개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애는 연애고 결혼은 결혼이니까.
내 나이 43세. 5년 전쯤 ‘데이트 어플’이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에 사진도 올리고 출신 대학, 직업을 올리면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는 뭐 그런 어플이다. 물론 나도 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만남이 성사되려면 선택을 받아야 한다. 애인과 헤어지고 외로워서 이 어플을 이용해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후배가 스마트폰을 꺼내 설명을 해주었는데, 여러 여성분들의 사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와중에 동네 여자인 친구 얼굴이 딱 나오는 거다. 난 그게 왜 창피하게 느껴졌을까? 옛날 사람인 건가. 그 친구도, 다른 지인들도 그 어플에서 내 얼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대 못할 일이었다.
“이런 것만 보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말이 돼?” 내가 묻자 후배가 대답했다. “얼굴 알고 키 알고 학교 알고 돈 많은지 알면 뭘 더 알아야 돼?” 그러네, 맞는 말이었다. 성격은 일단 만나봐야 아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학교도 지방대를 나왔고 돈은… 마음이 아주 부자이며, 키는 평균이며, 얼굴이 조금 많이 잘 생긴 정도다.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 거 같기도 하네.
데이트 어플을 사용하는 건 이성 관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연애나 해보자는 마음. 주말에 시간 보내는 정도의 상대를 찾는 마음. 연애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고, 당연히 나이가 어릴수록 더 그렇다. MZ라고 불리는 친구들. 걔들은 어쩌다, 어떡하다 그런 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깊게 생각하면 알 것도 같은데 그러고 싶지 않다), 그들 세대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비혼주의자가 많거나 비혼에 관대하다는 것이다. 결혼은 청춘의 화두가 아니다. 취업, 부와 성공, 워라밸, 섹스라면 모를까. (물론 이런 인식도 밀레니얼과 Z세대를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굳이 결혼할 것도 아닌데 진지하게 만날 필요 있어? 이런 생각이 기저에 존재한다고 봐도 되겠지. 이런 마음이 어플을 다운 받게 만들었고, 그게 트렌드의 물결에 올라타면서 너도나도 호기심에 한 번씩 사진을 등록해보는 거고.
사진 매칭을 기반으로 한 데이트 어플이 발달해서 AI 기능을 갖추게 됐다.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거 넷플릭스 같던데. 취향 체크하면 영화 추천해주듯이, 사람도 그렇게 추천해주는 거야.”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넷플릭스가 전 여자친구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아니까. 하지만 당연히, 나는 못한다. 내 나이 43세, 아직 길거리 헌팅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바보 아저씨라서. (웃기려고 적는 건데, 내 나이 들으면 다들 놀란다. 30대 후반 정도로 밖에 안 보인다고!) 좋아하는 친구는 이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나는 싫어. 새로운 장르의 영화도 보고 싶은데, 매번 비슷한 것만 추천해. 의외성, 변수 같은 걸 고려하지 않아.” 운전하는 중이었는데 정말로 핸들을 잡고 있던 손으로 무릎을 쳤다. 누구나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는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운명은 의외성과 변수가 섞인 단어다. 종소리와 다방의 추억 같은 것들. 결과가 어찌 됐든 운명에 가까운 기억들.
‘듀오’에 대한 새삼스런 감상을 적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결혼정보업체 듀오. 엄청나게 진보적인 회사였던 것이다. 진작에 ‘결혼’과 ‘정보’를 나란히 적는 지적 우월함을 선보였다. 국정원도 아닌데! AI든 초보적인 알고리즘 형태의 사진 매칭이든 핵심은 정보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정보의 교환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로 바꾸는 게 동시대적일까? 아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명에 기대던 시대가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런 시절을 살아온 게 현실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사랑할 사람을 AI 따위에게 추천받고 싶지 않다. 감히 기계가 내 운명을! 그럼 어떻게 만나지? 나이 들었다고 소개팅도 안 해주던데. 아, 그래서 다들 하는 건가? 데이트 어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