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뛰어넘는 크리에이티브
글 CS8팀 박수진 CⓔM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은 과연 모두에게 공평할까? 답부터 말하자면 아직은 아니다. 2020년에 발표된 구글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직원 중 흑인의 비율은 5.5%에 불과하며, 임원의 성비도 여성 26.7%, 남성 73.3%로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모양새다. 이에 구글 최고 경영자 순다 피차이는 엄청난 투자를 감행해서라도 포용성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니, 차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다양성의 최전방에 있어야 하는 구글의 사정이 이러하니 전 세계의 불평등 지수가 어느 정도일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2020 구글 다양성 리포트 / 클릭 시 이동
요즘은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노력 앞에 역차별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나 만연한 차별이 역전되기엔 드높게 쌓인 벽이 너무나 공고하다는 걸 구글의 현실이 우리에게 증명한다. 아늑한 성벽 안에 머물며 누군가 던지는 작은 조약돌을 향해 역차별이라 외치는 건 공정치 못한 태도 아닐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의 힘이라면, 세상의 당연한 불합리를 당연하지 않다고 외칠 때 가장 필요한 것도 크리에이티브다. 조약돌 하나가 잔잔한 수면 위에 파장을 일으키듯 세상에 깨우침을 주는 캠페인들. 이건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다.
IKEA : ThisAbles
Disable을 ThisAble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필요한 건 대단한 노력이 아니라 사소한 변화다. 이케아의 가구는 많은 사람의 일상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누군가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이케아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한 가구 구성품을 선보였다. Easy handle, Mega switch, Finger brush, Couch lift 등 보통의 가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해주는 ‘ThisAble’ 부품들. 이케아는 3D 프린트를 이용하면 누구나 ThisAble 부품소스를 만들어 쓸 수 있도록 공개했다. 모든 이의 생활을 배려하는 작고도 커다란 변화. 이케아와 이스라엘 비영리단체의 협업으로 시작된 이 사려 깊은 프로젝트는 2019년 칸 국제광고제 헬스&웰니스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VMLY&R : The Last Ever Issue
글로벌 마케팅 기업 VMLY&R은 폴란드의 포털 Gazeta.pl와 MasterCard, BNP Paribas와 함께 통 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들은 폴란드의 ‘Twój Weekend’라는 포르노 잡지를 인수해 폐간 전 마지막 한 권을 발간한다. 2019 국제 여성의 날에 발행된 Twój Weekend의 마지막 호는 가히 파격적이었다. 헐벗은 모델 대신 신인작가, 배우, MMA 월드 챔피언(Mixed Martial Arts)이 커버를 장식하고, 여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을 수 있는 칼럼과 폴란드 여성에 관한 이야기, 양성평등에 관한 컨텐츠를 실었다. 여성에 대한 편견에 일조하던 포르노 잡지사를 전 세계 여성을 위해 헌정한 대담한 아이디어. ‘The last ever issue’는 2019년 칸 국제광고제 유리사자상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Black & Abroad : Go back to Africa
‘Go back to Africa’라는 문장은 오랜 시간 동안 흑인 차별에 일조하는 공격적인 수사법이었다. 아프리카 여행사 Black & Abroad는 차별이 깃든 문장을 찬사의 표현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그리고 인종차별적인 트윗을 남기는 계정을 향해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경 이미지와 함께 ‘Go back to Africa’라는 문구를 되돌려주었다. 아프리카 본토를 착취의 땅이 아닌 환상의 대륙으로, 뼈아픈 비방 문구를 여행욕구를 자극하는 찬미의 언사로 바꿔놓은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2019년 칸 국제광고제 크리에이티브 데이터 부문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Ad Council : Love has no labels
Ad Council(미국 공익 광고 협의회)은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사랑스러운 프로모션을 선보였다.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에 설치된 커다란 대형 스크린에는 엑스레이 형상을 한 연인들이 애정행각을 벌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잠시 후 엑스레이 커플의 주인공이 공개되자 관중들은 뭉클한 박수를 보낸다. ‘Love has no gender. Love has no race. Love has no disability. Love has no religion.’ 눈에 보이지 않는 편견을 깨며 세상의 모든 사랑을 응원한 이 캠페인은 일주일 만에 유튜브 4천만 뷰 이상을 기록하며 2015년 다수의 해외 광고제를 휩쓸었다.
차별의 주체와 대상을 가리며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고민하고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따져 묻는 일. 어쩌면 그것 역시 권력을 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가해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나는 정규직이지만 한편으론 여성이고, 존중받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반도 밖에서는 아시아인으로 차별받을 수 있다. 오늘은 거울 앞에 서서 나라는 사람이 지닌 다양한 면모를 떠올려본다. 나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에서 타인을 포용하는 방법이 시작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