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의 그이는 시원스레 맥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고향이 땅끝마을이라고 대답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초면인 데도 체면치레를 좀 무디게 만들었나 싶어 아차 했지만, 질문은 던져졌고 다행히 부처님 같은 그이의 표정이 나의 소심한 걱정을 엿가락 녹이듯 녹여버렸다. 아 송정린가 송호리인가 지명이 그랬었는데, 전에 저도 한번 가본 적 있습니다. 거기서 완도로 가는 배를 탔지요. 맥주를 내려놓으며 고향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맞장구를 쳐댔다. 땅끝마을 사람을 만나다니 이건 마치 장벽 너머의 야인(요즘 뒤늦게 왕좌의 게임을 정주행하다 보니)을 만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너스레를 떨어대며 들뜬 기분이 되어 연신 맥주를 시켜 댔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분이라 주제는 자연스레 광고와 문학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술자리는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엄습해왔다.
해남까지 와서 땅끝마을을 들르지 않는다는 것도 왠지 거시기하다는 것이 아내의 의견이었고 나로서도 특별히 거부 할 거시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들러 완도까지 가는 배를 타게 됐고, 배 시간을 기다리며 잠깐 마을을 이리저리 둘러본 것이 전부였으니, 땅끝마을 사람을 만났다고 그렇게 아는 척하며 반색한 것은 사실 오버다.
그래도 여기가 대한민국 육지 최남단이라는 지표석을 볼 때의 감회는 야릇했던 것 같다. 혹시 지구가 진짜로는 둥글지 않고 평평한 건 아닌지 잠깐 걱정되기도 하다 이성을 되찾으면서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라는 말도 떠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처음 여기 도착한 사람의 심정이 궁금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땅끝까지 걸어와 처음으로 땅과 바다의 경계에 선 자는 불안했을 것이다. 아니면 황홀했을까. 이쪽 세상의 안도와 저쪽 세상의 경외가 부딪히는 지점, 경계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는 함민복시인의 시(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서처럼 대립하던 이질의 것들이 마침내 건배하며 서로를 환대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다분히 시인의 것이다. 하지만 어제의 것들을 이질화시켜야 살아남는 광고인들에게 경계는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이며 추앙해야 할 제단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땅끝까지 걸어가 본 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천국의 감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