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녁, 평소답지 않게 부부간에 제법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코로나19로 초등학교 입학부터 ‘싸강(사이버 강의)’을 시작하게 된 큰아이를 보며, ‘미래엔 어떤 교육이 가장 주목받게 될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래밍 연구가 주업인 남편은 기술이 대체하지 못할 인간의 깊이를 이해하는 인문학을, 마케팅에 종사하는 나는 인간의 이치를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로 풀어내는 AI를 탑픽으로 꼽았다. 서로 배우길 원했던 분야에 대한 갈망이었을까? 우선순위에 대한 의견 차를 좁히진 못했지만, 두 가지 교육 모두 중요해질 것이며, 우리 아이들이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엔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우리나라를 포함해, 코로나19를 비교적 빨리 겪은 아시아권은 최근 2차 감염의 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마스크와 생활 방역은 이미 일상의 영역이 됐고, ‘완전 종식’이라는 단어는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점차 대세가 되고 있다. 지난 20세기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준 교훈처럼 어쩌면 우리는 꽤나 오랫동안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이 불확실한 일상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일상의 불확실성은 곧 비즈니스의 불확실성으로 연결된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함께 정지되고, 그동안 풍족함을 누렸던 현대인들이 공급 부족을 경험하며, 소비자들은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에서 사재기 현상이 발생했고,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공유경제는 감염 위협에 가치가 하락하고, 수많은 오프라인 매장들이 도산 위기에 놓이는 등 기존 비즈니스의 지형도가 순식간에 바뀌고 있다.
▲재택 근무 중인 한 여성이 소독제로 손을 닦고 있다.
주 시드니의 한 슈퍼마켓 매장. 밀가루 선반이 텅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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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대다수의 클라이언트들은 단기 손실을 방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소비 최전선에 놓인 마케팅 비용을 삭감했다. 여기에 각국 정부의 규제가 더해지고 굵직한 오프라인 행사들의 취소가 맞물리며 마케팅 업계를 둘러싼 환경은 점차 열악해지고, 본격적인 여파가 나타날 2분기는 업계 전반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위기 상황을 적극 돌파하는 기업에겐 이후 더 큰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 역시 높다는 점이다. 위기와 극복의 역사는 늘 반복돼 왔으며, 그 와중에 수많은 기업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최대한 찾고, 소비자들에게 끊임없이 존재를 어필한 기업들은 위기가 종료된 다음에 오히려 더 높은 M/S와 수익을 창출하며 시장을 리드해 왔다.
그렇다면 팬데믹 상황에서 수많은 변수들의 셈으로 이뤄진 ‘불확실성 방정식’의 해를 찾고, 보다 더 견고한 비즈니스를 만드는 솔루션은 무엇일까? 다수의 전문가들은 비즈니스 위기의 원인도 해답도 결국 ‘소비자’에게 달려 있다고 공통적으로 답했다. 감염 추이, 사회적 제약 등의 복합적 영향으로 소비 패턴의 변동폭이 커지는 만큼 우선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소비자들을 세심히 분석하고 선제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결과론적으로 보여지는 소비 현상 뒤에 숨겨진 맥락을 찾아, 경제적·정서적으로 한층 더 취약해진 소비자들의 정서를 배려하는 기업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높아지며 재화를 통해 수익(Profit)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커뮤니티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이익(Benefit)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며, 소비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구매한 브랜드가 미사여구로 포장한 광고(Ad)보다는 진정성 있는 행동(Act)으로 보답하기를 바라며, 이런 높은 기대 욕구를 충족시키는 실천 중심의 기업이 팬데믹 이후의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전망한다.
▲나이키는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의료진들을 위해 맞춤형 운동화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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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의류 제조업체 아메리칸자이언트가
공장에서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는 모습. ⓒ american-giant.com
마지막으로 많은 것이 변화될 뉴노멀 시대에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 기존 업의 경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끊임없이 투자하고, 우리 안의 디지털 적응력을 키워야만 한다. 수년 전부터 이미 업계의 화두였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이번 사태를 거치며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데, 예전부터 지금 이 순간을 대비해 왔던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빠른 회복력을 보이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곧 ‘진화론적 도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예로 최근 급성장 중인 라이브커머스과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 보다 편리하며 나에게 최적화된 소비를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발빠르게 파악해, 자본력을 갖춘 기존 플레이어들을 중심으로 과감한 투자 행보를 보인 것이 성공의 주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카카오가 시범적으로 선보였던 라이브 커머스 ‘톡딜라이브’. ⓒ tv.kakao.com
특히 디지털 비즈니스 범위와 가능성이 무한하고, 세상과 시장의 규칙이 계속 바뀌는 만큼 기존 광고·마케팅 중심의 사고방식과 속도, 매뉴얼, 프로세스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세부적인 규칙(Rule)보다는 기업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등 원칙(Principle)을 바로 세우고, 그 원칙에 부합하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신속한 실행을 통해 우리의 근본적인 비즈니스 경쟁력, 생존력을 강화해야 한다.
다시 그날의 저녁 식탁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때부터 라이브 싸강을 듣고, AI 스피커와 거리낌없이 대화하고, 행글라이더 대신 드론을 날리는 아이들이 주도해 나갈 디지털 세상을 한번쯤 상상해 보자. 십 년 뒤, 그 아이들이 우리 비즈니스의 주 고객층이 됐을 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어떤 원칙을 세우고, 어떤 분야에 도전하고,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할지, 우리 앞에 놓인 고차 방정식의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