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회청(回回靑)이라니? TV를 보다 이 뜬금없는 단어의 등장에 머리를 요리조리 굴린다. 아무래도 무슨 색깔 같은데… 뉴런의 추적이 회회국(回回國)에 가 닿는다. 회회국은 아라비아를 일컫는 한자식 표기라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지라-이슬람교를 회교라고 하는 것도 이런 연유고- 회회청(回回靑)이라는 단어의 유래도 이쯤 어딘가에 답이 있을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회회청은 요새 개념으로 말하면 중동지역에서 건너온 푸른색 물감 정도로 풀이되고 있다. 더 알아보니, 회회청은 조선 세조 무렵부터 청화백자의 안료로 귀하게 쓰이다 말기로 가면서 수입이 많아지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이 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 귀한 대접을 받던 이 회회청의 주성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코발트블루의 그 코발트다. 그런데 코발트는 청명한 푸른색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광물로서 대접받았음에도, 제련 과정에서 독성이 강한 비소 증기가 많이 발생해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처음 코발트석을 발견한 독일 광부들은 그런 이유로 그 광물을 코볼트, Kobold(Goblin, 도깨비, 마귀)라 불렀고, 그것이 우리가 쓰는 코발트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통계학적으로 코발트블루를 포함한 블루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푸른색이 살아온 역사를 들여다보면 금석지감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으로 푸른색은 인류가 가장 늦게 애정하게 된 색이다. 안료를 얻기도 어려웠지만 12세기 전까지 유럽에서 블루는 가까이해서는 안 될 불행과 금기와 천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존재했던 인디고블루 계열의 칙칙한 블루는 그다지 기분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해 푸른 옷은 장례식에나 쓰였으며, 푸른 눈의 여인은 부정하다는 비난마저 들어야 했다. 그러다 12세기 들어 색을 빛의 현현으로 본 생드니 수도원의 입장 덕에 블루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가 온다. 마침내 푸른색은 천상의 빛으로 여겨지게 되고 사파이어는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되며 청색은 신성한 색으로 성당을 채우게 된다. 실로 엄청난 신분 상승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끝내 프랑스는 그를 상징하는 세 개의 색 중 하나로 블루를 임명하게 된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블루의 성공드라마는 이렇게 완성된다.
이제 블루는 더 이상 불우하지 않다. 엄청나게 많은 블루형제들이 형제애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고, 코발트블루, 프러시안블루, 터키블루, 마린블루, 로얄블루, 미드나잇블루, 네이비블루, 티파니블루… 블루에 미친 화가 입스 클라인의 블루까지. 그럼에도 나에게 블루는 세인트루이스 뒷골목의 밤안개 속을 비틀대며 걸어가는 흑인 노인의 뒷모습 같다. 로얄의 지위까지 올라갔어도 블루의 열 겹 아래 저 밑바닥에는 아주 오래된 슬픔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팬톤이 지정한 올해의 색은 클래식 블루다. 물론 코로나 이전의 일이었지만 요즘의 경제 상황을 보면 ‘2020년 블루’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느껴진다.
캔맥주 하나 들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를 듣기에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