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본질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
아기자기하고 분위기 좋은 동네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부터 여러 종류의 상품들이 소비자를 기다리는 편집숍과 복합몰까지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은 ‘장소’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 장소들을 삶의 일부분으로 항상 영위하고 있다. 그중에는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가고,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장소가 있는가 하면 별다른 감흥이 없거나 더 나아가 불편함을 느끼는 장소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공간(空間)’이라는 단어는 자고로 빌 ‘공(空)’ 자와 사이 ‘간(間)’ 자가 결합한 형태이다. 즉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간은 애초에 ‘사이가 비어 있는 곳’이다. 이 불완전한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채워져야 비로소 소임을 다할 수 있다. 이는 공간의 본질적 속성이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최종적으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경험은 공간과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인터랙션이 이뤄지거나 또는 공간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터랙션을 통해 간접적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처럼 궁극적인 경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을 공간 안에 채움으로써 ‘공간의 완전함’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공간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공간을 통한 경험은 크게 두 가지 접근법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과거의 경험을 통한 접근이며, 두 번째는 새로운 경험을 통한 접근이다.
직간접적인 매개가 있는 공간들
먼저 과거의 경험을 통한 접근은 이미 이전에 접해 본 적이 있는 자극이 만들어 낸 이미지 혹은 잔상이 다시금 떠오르면서 현재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공간과 연계하며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접해 본 적이 있는 기존의 자극은 자신이 과거에 직접적으로 겪어 본 것일 수도 있지만, 과거에 이미 있었던 부분들을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던 것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시각적인 부분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던 어떤 영상 매체가 될 수도 있고, 예전의 유행을 가늠할 수 있는 잡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시각적인 것을 넘어서,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던 음악이거나 이전에 맡아본 적이 있는 듯한 어떤 냄새일 수도 있다.
현재 패션 분야 쪽에서 구찌(Guzzi)의 레트로풍이 유행이라면, 공간 분야 쪽에서는 ‘레트로 동네’를 찾아 가는 것이 유행인 듯싶다. 많은 동네 중 요즘 대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 바로 북촌과 익선동이다. 강북의 한남동이나 이태원 혹은 강남의 가로수길 등도 여전히 많이 찾는 장소들이지만, 북촌과 익선동은 ‘과거의 흔적’을 구경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이 장소들의 이전 모습을 알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그들 과거의 경험 때문에 공간에 큰 감흥을 받을 것이다. 반면에 영상 매체나 잡지 등 과거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사람들은 전자에 비해 감흥이 적을 수 있다. 그래도 동네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수 있으며, 좋은 감정으로 그 공간들을 인지하게 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공간의 ‘지역성’일 것이다. 그 공간이 위치한 그 지역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공간 안에 적절히 녹아들어 있을 때 좋아 보이는 공간으로서 긍정적 경험을 제공하게 된다. 이때 지역성의 요소들은 그 지역의 역사, 문화, 커뮤니티, 음악, 미술 등 다양하다.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W호텔 디자인을 담당하는 필자로서는, 이는 콘셉트 발전 단계에서부터 매우 중요시하는 부분이다. 호텔이 위치하게 될 장소와 지역의 커뮤니티, 역사, 문화 등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공간이 조화를 이루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요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익선동
? flickr.com photo by yollstory.com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색다른 결합
두 번째, 새로운 경험을 통한 접근은 말 그대로 지금껏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형식의 자극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 공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새로움은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출해 낸다기보다는 기존의 것들이 새롭게 결합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20세기 초반 빅토르 시클롭스키(Victor Shklovski)를 주축으로 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개념의 일환으로, 자동화될 수 있는 인지의 부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미이다. ‘낯설게 하기’의 가장 적절한 예로는 소변기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 낸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Fountain)’이다.
현재 공간 디자인 분야에서는 문화 콘텐츠를 공간과 색다르게 결합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 마케팅 사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젠틀몬스터, 탬버린즈 등의 국내 브랜드들이 전시, 식음, 공연 등 기존의 타 공간 콘텐츠들을 상업 공간과 매칭하면서 지금껏 접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향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결합의 공간 마케팅 방식은 앞으로도 더욱 디테일하게 발전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이뿐만 아니라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창출해 내기 위해 계속해서 신선한 결합 방식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의 경험적 접근을 통한 공간의 이해는 공간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 또한 풍요로울 수 있게 해 준다. 그 공간만의 비밀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공간도 새롭게 보이게 될 것이다. 좋아 보이는, 좋게 느껴지는 장소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공간들이 자신을 만족시켜 주는 어떤 경험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 매장
? tambur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