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전 세계인을 상대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런 ‘국가 메가이벤트’는 통상 그 준비 기간이 2년 이상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라서 마치고 나면 긴 여행을 다녀온 듯합니다. 여행이 길어지면 동행한 사람들의 장점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본성을 새삼 자각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 작업의 속성도 그렇죠. 저를 비롯해 팀원들도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지만, 이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듭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성사된 평창동계올림픽과 제일기획의 인연이 각별합니다. 개최까지의 과정은 어땠나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첫 비딩이 2003년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있었는데, 당시부터 삼성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 것이 시작이었죠. 제일기획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와 함께 3번에 걸친 전 유치 과정에서부터 유치 전략 기획 및 프레젠테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 제작, 연출했습니다. 그래서 제일기획도, 또 저 개인적으로도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애착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사명감을 갖고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왔던 결실을 보게 돼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제일기획 TF팀과 연출 제작단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요?
제일기획을 주축으로 5개 회사가 컨소시엄을 이뤄서 ‘연출 제작단’을 꾸렸습니다. 제작단 인력 400여 명이 제작 총괄팀과 개폐회식 연출팀, T&A(Tech & Art)팀, 운영팀, 관리팀 등으로 세분화시켜 기획부터 제작?연출?운영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해 작품을 만들어 냈죠. 특히 제작 총괄을 맡은 제일기획 TF팀은 이벤트 연출 콘텐츠의 기획 제작은 물론 회계 관리와 법무 업무까지 포괄하면서 5,000명이 넘는 출연진 퍼포머들의 섭외 및 숙식에서부터 안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총괄 지휘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TF팀에 속했던 후배들을 보며 놀랐던 점이 있습니다. 올림픽 개폐막식 같은 국가 규모의 글로벌 이벤트에는 전 세계에서 스태프들이 모이기 마련인데, 어느 순간 보니까 우리 제일기획 후배들이 각 담당 파트에서 리더가 되어 그들을 지휘하고 있더군요. 물론 고생이야 됐겠지만, 그 경험을 통해 크게 성장하기를 바랐는데 정말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제일기획 TF팀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Dreams Come True’란 말이 있죠? 저희는 꿈을 실현시키는(Come True)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말이 쉽지, 주어진 예산 범위 안에서 전 세계에 산재한 전문업체 중 적임자를 찾아내 선정하고 발주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대작업이었습니다.
저희 역할을 또 다른 말로 비유하자면 ‘빙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개폐회식 당일 관객들이나 전 세계 시청자들이 최종적으로 보는 장면은 수면 위로 떠오른 빙산의 ‘일각’ 10%이었지만, 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백스테이지의 수많은 스태프들은 마치 바닷물에 잠겨 보이지 않지만 빙산의 일각을 떠 받치고 있는 90%의 거대한 아랫부분 역할을 해야 하지요.
메가 이벤트를 진행함에 있어 어떤 원칙과 콘셉트를 적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늘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준비하기에 앞서 단계별로 고민하는 3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개최국(대한민국)의 정체성(Identity), 둘째는 그 아이덴티티의 현대적이고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Value)화, 그리고 셋째는 그렇게 정리된 가치의 미래 비전(Vision)화 작업입니다. 프로젝트를 풀어가는 첫 번째 단추인 아이덴티티의 경우 저는 대한민국의 DNA를 ‘흥’이라고 봐요. 외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놀라는 대목이 있어요. IMF 구제금융 때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환경 재난이 발생한 현장에서 거침없이 달려가 자원봉사를 하며, 2002 월드컵 때는 어떻게 그렇게 전 국민들이 하나 되어 질서 있고 사고 하나 없이 응원 축제를 자발적으로 벌이느냐는 것이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움직이는 이 ‘흥’이 바로 우리만의 아이덴티티인 것이죠.
다음 단계는 이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가치화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저는 ‘전통이란 전하여져 통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의 전통을 현재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재창조한 뒤 재배치해야 공감의 설득력을 얻고 새로운 가치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전 세계인이 감동할 수 있는 비전으로 풀어내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화자찬에 그치고 마니까요. 이번 평창동계올림픽도 이 같은 원칙을 적용해서 ‘남북한의 평화’라는 키워드로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보편적 감성에 다가가려 했습니다. 이 원칙들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개최국(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 가능한 동시대의 비전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이번 개폐회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꼽는다면요?
첨단 IT Korea의 이미지를 인문학적 스토리로 풀어낸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다섯 아이들이 허공에 자신의 꿈을 낙서하고 퓨처게이트로 들어가서 자신이 꿈꾸던 미래를 살게 되는 장면이죠. 어릴 적 낙서를 즐겼던 저의 체험을 녹여낸 장면이라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그런 특정한 장면보다 새삼스럽게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몰랐던 사실은 아니지만, 이벤트의 완성은 ‘관객의 에너지’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았죠.현장에는 리허설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인터랙티브하는 상생의 기운이 있거든요. 당일 행사가 치러지는 장면마다 200%의 퍼포먼스가 나왔고, 그때마다 희열을 느꼈습니다.
함께 추위를 견디며 고생한 TF팀원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제가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이벤트에 참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이 있습니다. 시드니올림픽부터 아테네, 토리노, 베이징, 밴쿠버, 런던, 리우 등 올림픽 현장에서 개폐막식을 다 봤었거든요. 그를 통해 엄청난 경험과 학습이 축적됐죠.
마찬가지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후배들도 좋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평창올핌픽 개폐회식은 더 특별한 면이 있죠. 대개의 올림픽 개폐막식에선 자국 스태프보다 해외 스태프들이 더 많거든요. 그런데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은 우리 스태프가 90%였어요. 올림픽 개폐막식 참여 경험이 많은 외국 스태프들이 “자국(대한민국) 스태프들이 주축이 되어 이렇게 성공적으로 훌륭하게 치러낸 케이스가 없었다”며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제일기획 TF팀원들과 함께했던 전 제작단 이벤트 후배 스탭들에게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가까운 미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가 올해 초 브랜드익스피리언스 솔루션 본부의 본부장이 되었는데, 이제 본부원들과 함께그간 쌓은 경험들을 살려 갤럭시 관련 국내외 프로젝트 등 클라이언트를 위한 멋진 작품을 만들어 가야죠. 그리고 후배들이 진정한 전문가로 성장해 나가도록 작으나마 씨앗이 되어 제 힘을 보탤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