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우연히 광고 일에 접한 뒤 망설임 없이 25년을 꼬박 광고와 함께 살았습니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태양처럼 빛나던 CD를 꿈꾸었고, CD가 된 다음에는 좋은 광고를 향해 날마다 예술과 상술 사이에서 클라이언트라는 산을 넘고 있는데요. CD열전 여섯 번째 주인공인 CD를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이라고 바라보는 박인호 CD입니다.
박인호 CD를 설명하는 세 가지 광고
25년 절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꾸준히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최근 TV에 온에어되고 있는 ㈜LG의 옳은 미래부터 LG전자 프라엘, LG생활건강 후 비첩 자생 에센스, LG전자 올레드 TV 자연색 그대로 등 이름만 들어도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광고들은 모두 박인호 CD가 제작한 광고 캠페인입니다. 그 중에서도 박인호 CD가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광고 캠페인들은 어떤 것들일까요?
첫 번째는 ‘다시 만난 우리 문화유산전’ 프로젝트입니다. ‘어떤 광고지?’ 하는 분들 많을 텐데요. LG전자 OLED TV 자연색 그대로 편과 함께 최종 결승까지 올라간 콘티였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아쉽게 진행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입니다.
“해외 각지에 흩어져 있는 빼앗긴 우리 문화유산을 LG OLED TV로 생생하게 다시 가져오면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든 콘티입니다. 하지만 막상 촬영이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TVC로는 진행하지 못했어요.
대신 이를 아깝게 생각한 클라이언트분들이 있으셔서 다른 방법을 구했는데요. 결과적으로 문화재청, KBS와 함께 다큐멘터리 형태로 접근해서 촬영하고 그 문화유산들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했습니다.”
그가 뽑은 두 번째 광고 캠페인은 LG 옵티머스 G 광고 캠페인입니다. 화려한 애니메이션과 독특한 콘셉트와 딱 어울리는 BGM 등 보는 순간부터 빠져드는 광고 캠페인인데요.
“LG가 G 브랜드를 처음 런칭할 당시 G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이미지 광고 캠페인을 구상했습니다. 알파벳 G로 이루어진 세상을 한 소녀가 돌아다니면서 경험하는 2분짜리 애니메이션이었는데요. 제작 과정이 재미있어서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인호 CD가 꼽은 애착에 남는 광고 캠페인은 국가브랜드 위원회와 LG가 함께 한 ‘사랑해요, 코리아’라는 광고 캠페인입니다. 주제는 ‘글로벌 에티켓’으로, 당시 진행하고 있었던 LG 명화 캠페인에서 영감을 얻었는데요.
“외국에서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우리 국민들이 가져야 할 에티켓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책상 위 놓여 있던 명화들을 보게 됐어요. 순간, 이 외국 명화의 주인공들이 동양화에 들어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쇠라, 고흐, 마네, 고갱 그림의 주인공들이 김홍도, 신윤복이 그린 동양화로 들어오는 설정이었는데요. 에티켓을 알려줄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 가령 그랑자드 섬의 일요일 오후에 나오는 부부가 길을 헤매자 지도를 펴고 친절하게 가르쳐주거나, 피리 부는 소년이 피리를 떨어뜨릴 때 주워주는 상황 등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기업들과 다르다는 좋은 평도 받았고요.”
광고 제작 KEY POINT 1, 새로운 인상!
박인호 CD가 언급한 세 광고를 포함해 광고를 제작하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새로운 인상’입니다. 매번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박인호 CD의 생각인데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름을 위한 다름이 아닌, ‘새로운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광고일을 하다 보면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 레이아웃, 표현방법을 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하지만 사실 쉽지 않아요. 그래서 간혹 다름을 위한 다름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갈 방향은 부산인데, ‘다름’에만 집중하다 보면 도착지가 강릉이 되는 거죠.
그래서 막연히 새로운 것, 다른 것만을 찾을 게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최대한 새로운 길을, 안 가본 길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죠. 하다못해 자막 서체, 오디오 디자인, 카메라 앵글 하나라도 새로운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해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번에는 어떤 부분에 새로운 인상을 줘야 할까 가장 많이 고민합니다.”
프로젝트마다 다른 니즈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새로운 인상을 줄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박인호 CD는 광고인은 내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가 아니므로 클라이언트 니즈 사이에서 새로운 포인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광고 제작 KEY POINT 2, 생각 또 생각
그렇다면 새로운 포인트를 찾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사람마다 그 방법이 다르지만, 박인호 CD는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박인호 CD의 경우 먼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끊임없는 생각의 굴레에 빠지는데요. 걸어 다니며, 밥을 먹으며, 술 마시며, 샤워하며 최대한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투자합니다.
“생각도 진화합니다. 얼마나 집요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냐에 따라 다른 아이디어가 나와요. 3시간 생각한 사람이 10시간 생각한 사람의 생각을 보고 ‘우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거기까지 생각을 못 해봤기 때문이죠. 반대로 10시간 생각한 사람은 3시간짜리 아이디어가 보여요.”
오래 생각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만큼 희열을 주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안개에 쌓인 듯 가야 할 방향이나 길을 모르는 상태지만, 생각의 생각을 연결하고 팀원들과 회의를 거듭할수록 안개가 걷히면서 조금씩 눈에 잡히는 게 생깁니다.
“뭔가 딱 잡히는 걸 찾았을 때 희열이라 그럴까요? 그런 게 느껴져요. 사실 광고는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보다 우리가 조금 더 만족할 만한, ‘이거 좋다’하는 걸 찾는 일에 가깝죠.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그 희열 때문에 아직도 광고를 하는 것 같아요. 그 느낌이 마치 초등학교 때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거든요.”
CD = Creative DESIGN
박인호 CD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는 과정을 무려 25년간 계속 해왔습니다. 시작은 우연한 계기였는데요. 대학 시절 광고에 큰 관심이 없었던 박인호 CD는 친구를 따라 광고 회사 인턴시험을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해 두 달간 광고일을 경험했습니다.
“현장에서 실습하며 보니까 너무 매력적인 일이더라고요. 생동감 넘치는 필드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선배들이 엄청 멋있어 보였고요. 방 안에서 만들어진 생각과 아이디어가 실현돼 실질적인 매출로 연결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두 달이었지만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는 것도 좋았고요.”
그리고 광고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CD가 되기 위한 목표가 생겼는데요.
“신입사원 때 CD 님들이 태양처럼 느껴졌어요. 환하고 빛이 나는. ‘나도 여기서 CD가 되어야겠다’ 싶어 그걸 목표로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CD가 되고 보니까 태양 가까이 가서인지 뜨겁더라고요(웃음).
팀원으로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클라이언트와 비즈니스적 관계나 아이디어를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 등 막상 제가 그 입장이 되니 전혀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CD 경력 13년 차에 들어서며 박인호 CD는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CD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요.
“디자인은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는 광고일도 특별한 목적이 있고 거기에 부합하는 창작물을 실체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저는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으로 CD를 바라봅니다. 목적에 부합하게끔 생각을 조율해서 하나의 작업으로 실체화시키는, 결국 창의적인 생각과 생각들을 잘 디자인해서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쪽에 가깝죠. 디자인이 미적인 면과 기능적인 면이 조화된 실체여야 하는 것처럼, 광고 크리에이티브도 작품적인 면과 광고로서의 기능적인 면이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영향을 주는 광고를 향하여
CD를 꿈꾸었던 박인호 CD는 이제 CD의 자리에서 더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가 말하는 좋은 광고는 무엇일까요?
“영향을 미치는 광고가 좋은 광고라 생각합니다. 그게 매출이든, 다른 광고든, 자기 진로를 걱정하는 한 아이의 인생이든 작은 부분이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은 광고가 아닐까요? 무플만큼 안 좋은 게 없잖아요.”
영향을 줄 수 있는 광고가 중요한 이유는 광고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박인호 CD는 광고의 본질이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는데요.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광고의 본질이 있다면 소비자의 마음을 사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지 소비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가 달라질 뿐 근본적인 본질은 바뀌지 않죠. 환경이 달라졌다고 크리에이터가 하는 일이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한 현실적인 조언은 ‘취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머리를 주로 사용하고 몸은 상대적으로 덜 사용하는 광고일의 특성상 몸을 움직여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체와 정신의 밸런스를 중시하며 예술과 상술 사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온 박인호 CD. 앞으로의 여정에도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곧 만나게 될 옳은 미래 시리즈도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