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느니 차라리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자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바쁘게 젊은 시절을 살았고, 지금은 노후 설계에 숨가쁜 기성 세대들은 걱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태의 변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형 뽑기방을 드나들고, 어떤 물건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물건을 사며 호기심과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에는 어떤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환경과 가치관이 달라지다
휘발성이 강한 재미를 추구하는 데는 대략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주어진 환경에서 오는 현실적 원인 때문이다. 일단 인생이 너무 길어졌다. 당장 10년 뒤의 삶을 예측하기도 어려운데, 100세까지의 삶을 계획하기란 쉽지 않다. 그 긴 시간 동안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 직업을 가늠하고 선택하는 일도 어렵다. 그뿐인가. 유산의 ‘축복’이 없다면,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한다 해도 집 한 칸 구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래 왔듯, 인간은 환경이 열악하다고 절망하지는 않는다. 해서 사람들은 대중적 희망이 쪼그라든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천 원짜리를 들고 인형을 뽑으며, 희망의 대체제인 ‘행운’에 기댄다.
소비자들이 가능성 있는 재미로 시선을 돌린 두 번째 이유는 가치관의 변화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종교인 수가 늘지 않고 있다. 내일의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내세에 대한 믿음도 소멸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단 한 번뿐인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해졌고, 그 귀한 시간을 만끽하려는 욕망이 증폭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재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마케팅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능동적 참여 유도하는 행운 마케팅
희망의 자리를 행운이 대체한 지금, 행운 마케팅 붐이 일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요행 심리에 기댄 이 고전적 기법이 전과 다른 패턴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제 소비자는 더 이상 로또처럼 나와 무관한 듯 보이는 행운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소소하지만 나도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프로모션에는 관심을 보인다.
편집숍 29센티미터는 2015년에 “천만 원을 드리면 한 달 안에 쓸 수 있는 분을 찾는다”는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다. 29센티미터는 감성을 자극하고 재미를 주는 콘텐츠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곳으로, 당시 이 이벤트에 소비자들은 “한 달이 뭐냐, 하루면 다 쓸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어 “하루도 길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댓글이 이어지는 등 폭발적 반응이 일어났다. 총 3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 이벤트는 소비자와 함께 스토리텔링을 완성해 간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재미는 덤, 제품에 대한 신뢰까지
온라인 구매는 쇼핑 시간 절약과 함께 택배를 통해 물건을 전달받는 순간 마치 선물을 받는 듯한 착각, 즉 ‘감성’을 자극하는 매력을 지녔다. 여기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명 ‘복불복 박스’라 불리는 럭키 박스는 뷰티 제품은 물론 이미 의류와 공연 티켓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돼 있다.
그런가 하면 재미와 정보를 연결지어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언박싱(Unboxing) 마케팅도 한창이다. 제품이 든 박스를 개봉하는 순간부터 사용기까지 디테일한 정보를 전달하는 언박싱 동영상은 MCN(Multi Channel Network)의 1인 크리에이터들이 경쟁적으로 제작하면서 각광받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8년 초창기 스마트폰 모델 옴니아로 언박싱 영상을 선보인 바 있다. 소포로 배달된 제품을 열면 밴드가 나와 제품을 소개하는 내용의 이 영상은 이듬해 칸 국제광고제에서 인터넷 부문 은상을 수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고, 이후로도 꾸준히 언박싱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단순한 형식의 언박싱을 벗어난 색다른 시도도 있다. 독일의 이동통신사 T모바일은 2016년 삼성전자 갤럭시 S7을 수중에서 개봉하는 영상을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언박싱을 통한 흥미 유발은 제품의 방수 기능을 강조하는 효과를 거뒀다. 언박싱 마케팅은 생산자의 의도가 과도하게 개입되지 않는다면, 구매 전 타인의 체험을 통해 제품에 대한 신뢰를 얻고자 하는 소비자들에게 상당 기간 유효한 콘텐츠로 애용될 것이다.
소통의 도구이자 장난감이 된 이모티콘
대면 대화를 꺼릴 정도로 SNS에 익숙한 세대에게 이모지(Emoji)만한 장난감도 없다. 이모티콘은 관계의 친밀도를 표시하기 위한 도구이자 문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축약된 언어의 빈칸을 채워줄 수단이 되고 있다.
게다가 하고 싶은 말을 이모티콘으로 전환시켜 주거나 자신의 얼굴을 이모티콘으로 생성해 주는 앱들도 등장하면서 점차 개인화되고 있는 이모지는 소통에 ‘재미’를 얹은 일종의 놀잇감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Z세대는 재미를 찾되 8초 안에 승부를 내는 ‘울트라 퍼니(Ultra Funny)’를 찾는다. ‘ㅇㄷㅇ?(어디야?)’ 같은 자음 언어를 탄생시킨 게 바로 이들이다. ‘8초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프랑스 의류 브랜드 베트멍(Vêtements)의 비상식적 스타일을 유행시키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과장되게 큰 사이즈에 비옷과 소방복 등 비일상적 컬렉션으로 패션에 대한 상식을 뛰어넘은 베트멍의 파격이 이 세대에겐 재미의 코드로 읽힌 것이다.
자음만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수식어가 빠진 해시태그로 문장을 완성하는 8초 세대의 뇌는 집중력 전환이 빠르도록 훈련됐다. 따라서 이들의 집중력이 유지되는 시간인 8초 안에 재미를 제공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 마케팅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