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나, 라는 생각이 든 건 설민석의 강의를 봤을 때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뼈 아픈 역사적 사실을 되새겼던 건 무한도전을 봤을 때입니다.
역사를 예능으로 배우고, 영화로 역사적인 인물을 만나고, 드라마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나아가 광고가 세상을 바꾸자고 얘기하는 시대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만나는 콘텐츠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동시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철학과 생각이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더 당연한 듯합니다. 브랜드가, 광고가 ‘세상의 변화’를 말하는 일. 모든 브랜드들이 매출과 상관없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쓰진 않지만, 일부는 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더 좋은 세상’을 말하는 브랜드가 있었고, 난민 문제가 큰 이슈가 됐을 때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는 광고장이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광고는 꿈이 큽니다.
당신은 그녀의 월급을 강탈했습니다
UN Women. 그들은 왜 뉴욕에 구두 닦는 의자를 놓았을까요? 왜 행인들의 구두 닦는 일을 시작했을까요?
3월 중순, 뉴욕 플랫 아이언 스퀘어엔 구두 닦는 의자가 두 개 놓였습니다. 한쪽은 구두 닦는 데 1불이지만 한쪽은 77센트입니다. 1불 쪽은 남자가 닦아주고, 77센트 쪽은 여자가 닦아줍니다. 하지만 구두 닦는 실력은 같습니다. 그런데 왜 가격 차이가 날까요? 여자가 더 장사를 잘 해서일까요? 사람들은 대부분 가격이 저렴한 여자에게서 구두를 닦았습니다. 하지만 77센트가 아닌 기쁘게 1불을 지불하고 떠났습니다. 그들은 구두를 닦으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던 거죠. 실력이 같아도 여자는 남자보다 23%나 적은 보수를 받고 있다는 걸. 그들은 구두를 닦으면서 남녀 연봉 격차에 대해 듣게 됐습니다. 게다가 단순한 연봉 격차가 아니라 공공연한 ‘강탈’이라는 얘기도 듣습니다. 그 격차를 줄이려면 70년의 시간이 든다고도 얘기하죠. 같은 여자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놀란 그들은 여자에게 77센트가 아닌 1불을 지불한 겁니다.
같은 능력을 지닌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은 연봉을 받는다는 건 세계적으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평균 연봉 격차는 23%라고 합니다. 하지만 더 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스웨덴과 프랑스는 31%를 더 적게 받는다고 하니, 소위 말하는 선진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UN Women은 이 점을 환기시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23%의 차이라고 고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여성에게서 23%의 연봉을 강탈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23%robbery라는 사이트도 개설했습니다. 이 사이트에 들어와 ‘연봉 강탈’에 대한 메시지를 트위터에 공유하면 23%의 메시지가 가려집니다. 23%의 격차를 알리기 위한 일환입니다.
UN Women은 공공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남녀 임금격차에 대해 ‘강탈’이라는 프레임으로 얘기합니다. 강탈은 빼앗는 사람도 나쁘게, 빼앗기는 사람도 기분 나쁘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결국 임금 격차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개선돼야 할 큰 사회악이라는 얘기죠. UN Women의 이야기는 힘이 세졌습니다.
‘여성’을 위해 광고대행사가 할 수 있는 일
광고대행사는 대부분 클라이언트와 협력해서 콘텐츠를 만듭니다. 하지만 때론 대행사만의 메시지를 만들기도 합니다.
DDB는 광고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3월 8일은 달랐습니다. DDB & R로 이름을 바꿨으니까요. 바뀐 이름은 간판, 회의실, 이메일 서명, 웹사이트에도 적용됐습니다. 그것도 단 하루 동안만. DDB는 왜 굳이 이름을 바꿨을까요? 세계 여성의 날, 그들은 그들의 첫 번째 여성 카피라이터였던 필리스 로빈슨을 축하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대표작 중 여성 카피라이터들이 쓴 광고를 선정해 소셜 캠페인도 벌였습니다. 오리지널 광고와 함께 ‘여성을 위한’ 메시지로 카피를 바꾼 광고를 집행한 거죠.
“Levy’s를 즐기기 위해 유태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라는 카피는 “광고를 바꾸기 위해 남성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로, “폴라로이는 선물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라는 카피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광고를 여성이 만들었다고 밝히는 것과 같다”로 바꿨습니다. 유명 카피를 여성의 가치를 알리는 카피로 바꾼 겁니다.
DDB & R로 이름을 바꾼 건 일시적이지만, 그들은 북미 사무실 미팅룸에 필리스 로빈슨이 했던 말을 영원히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Do the kind of work nobody else is doing.”
또 다른 대행사 Goodby, Silverstein & Partners는 “A Day Without a Woman”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 A Day Without a Woman은 여성들에게 하루 동안 일을 하지도 말고, 쇼핑하지도 말고, 연대의 의미로 붉은 옷을 입으라고 권합니다. 이에 맞춰 굿비실버스타인 앤 파트너즈는 ‘A Day Without a Woman Is a Day Without Creativity’라고 얘기하며, 웹사이트의 콘텐츠들이 지워지도록 했습니다. ‘여성이 없는 날’이니, 여성의 힘이 더해져서 만든 광고도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사무실 창문을 모두 레드로 바꿔, 직원들이 모두 쉬도록 했습니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 출발하는 여성 행진 운동. 360i는 이 운동에 동참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먼저 ‘Equal Voices’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참석 못하는 이유와 이름, 사는 주를 등록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360i가 플래카드로 만들어 대신 행진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이날을 기념할 수 있는 포스터를 만들도록 권했습니다. 사이트에 적힌 여성들의 이유는 다양합니다. ‘하루 쉬면 하루 일당을 못 받아서’, ‘보스가 해고하겠다고 경고해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모두 여성이 직면한 어려움이 느껴지는 이유들입니다.
광고 대행사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많은 남성도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를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이렇게 쓸 수 있다면 클라이언트와 함께 수익은 낼 수 없어도 직원들의 신뢰를 비롯해 좋은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겠지요.
당신이 사랑하는 그것, 난민에 의해 만들어진 겁니다
난민 입국 허용 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된 미국. 마이애미 애드 스쿨 학생 두명은 작지만 큰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들이 만든 건 작은 스티커에 불과합니다. 누구나 웹을 통해 다운받고 부착할 수 있는 평범한 스티커. 이 스티커엔 ‘made by refugee’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 스티커로 뭘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이 스티커를 각종 물건에 붙였습니다.
자마이카 난민이었던 밥말리의 레코드에, 독일 난민이었던 아인슈타인에 책에, 역시 독일 난민이었던 안네 프랑크 책에, 중국 난민이었던 14대 달라이 라마에게, 오스트리아 난민이었던 프로이드에게, 또 다른 오스트리아 난민이 쓴 밤비 동화책에, 동아프리카 난민이었던 프레디 머큐리 음반에, 그리스 난민이었던 자동차 미니 디자이너에게도... 모든 위대한 작품들에 그들의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위대한 뮤지션인 줄만 알았던 그들이, 위대한 철학자였던 그가, 위대한 과학자였던 그가 모두 난민이었다니, 이 스티커 작업은 매우 설득적입니다.
그들은 난민이 얼마나 많이 북미 사회에 기여했는지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물론 위인이 아니어도 난민은 모두와 같이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스티커를 보면 우리가 도와주지 않았던 난민이, 무관심했던 난민이, 세상에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피부에 와닿습니다. ‘그들도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또 다른 난민에 대한 고정관념과 생각도 바뀌겠지요. 작은 스티커에서 시작된 크리에이티브의 큰 힘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크리에이티한 이들의 힘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나며 자라왔습니다. 감동을 주는 우화에서 시작해, 아름다운 자장가, 외계인을 상상하게 만드는 영화,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 여우와도 우정을 나눌 줄 아는 소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크리에이티브한 세상을 만나면서, 꿈도 갖게 되고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게 되고, 실현할 수 있는 힘을 키웠습니다. 좋은 콘텐츠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힘을 잃었던 적이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발명한 뛰어난 기술 또한 영화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고 하니, 아이디어를 내고 만드는 일은 이렇게 큰 일입니다.
그러니 광고도 더 큰 꿈을 꿉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꿈, 난민이 따뜻한 안식처를 만나게 하는 꿈... 당신이 만들고 있는 광고는 이렇게 꿈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