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ing star] #45 융·복합 스마트 예술 시대를 열다 # 사비나 미술관
펜타브리드 기사입력 2017.08.03 12:00 조회 5903


Q1. 한국 미술계 이례적으로 다른 분야와의 융·복합 기획전을 다양하게 시도해 오셨어요. 사비나미술관과 관장님을 자유롭게 소개해 주세요.

미술관 이름도 특이하고, 전시 스타일도 개성 있죠? 융·복합 기획전에 강한 미술관으로 차별화되어 있어요.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비영리 사립미술관이다 보니 거대 자본의 블록버스터가 아닌, 소자본적 감성의 ‘원스’ 같은 영화를 만드는 틈새 전략으로 접근해야 살아남아요. 아이템이 결정되면 단 몇 개월 만에도 해내는데, 괜찮은 영화 하나 만드는 작업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낸다고 보시면 돼요.

사립미술관은 설립자의 정신과 운영 방침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어요. 제 이름을 딴 사비나미술관은 개척자, 모험가 기질을 닮은 또 다른 저나 마찬가지예요. 시대 변화의 흐름을 앞서 읽고, 그들이 하기 힘든 트렌디한 전시를 다양하게 시도 중입니다.

 

Q2. 미술관이 올해로 20살이 되었는데,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신생 미술관의 느낌을 유지하고 있어요. 비법이 있을까요?

‘항상 벼랑 끝에 있는 마음’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사립 미술관이다 보니, 국가 기금이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미술관, 안정적 자본으로 운영되는 대기업 재단 미술관들과도 경쟁할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 같은 개인이 설립한 비영리 사립미술관은 수익모델이 없기에 오직 차별화된 전시로 승부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사재를 털든 기금을 끌어오든 매년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해요. 조금만 정신 팔면 문 닫아야 할지 모르니 매 순간 긴장 상태죠. 희한하게도 여기서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나와요. 쉽고 편안한 환경이었다면, 이런 에너지 안 나왔을 것 같아요.

Q3. 완만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의 치열한 작업이 사비나다움을 유지시켜 주는 동력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사비나미술관의 철학과 미션이 궁금합니다.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을 전시하고 미술관 교육을 통해 시민들의 창조성을 깨운다는 소명의식으로 운영합니다. 이왕 문을 열었으니 끝까지 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 같은 게 있어요. 작가들에겐 학력보다는 어디 전시장 거쳐 왔는지가 중요한데, 우리 미술관이 사라지는 건 우리와 함께 한 작가들의 커리어를 없애는 것이잖아요. 경영적 위기감 속에서 작가들의 경력을 관리하고, 융합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시민들의 예술성과 창의성을 길러주는 평생학교의 역할까지 수행해 내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Q4. 미술계의 구글로 불리는 아트시(Artsy)와 MOU 체결, 세계 최초 미술관 내 버튼 인터넷 모바일 도슨트 도입, 국내 미술관 최초 '버추얼 전시 감상 투어' 프로그램 개발, 미술과 수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 등 최초로 시도하신 것들이 많아요. 어디에서 영감을 받고 움직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기질이 도전하고 새롭게 시도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은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에너지가 잘 안 나와요. 제 안에 숨어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최초로 시도되는 사비나의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책 집필 작업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일상에서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다녀요. 신문, 잡지를 보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하나 딱 걸리는 게 있으면, 놓치지 않아요. 아트시(Artsy)의 경우도, ‘해외 사례를 국내에서도 한번 시도해볼까?’하는 생각과 동시에 움직여요.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는 도구들을 찾기 위해 ‘요즘 사람들은 뭘 원하지?’ ‘이 현상을 어떻게 예술로 표현할 수 있지?’에 몰두하다 보면 융·복합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고, 다음 전시로 연결되곤 하죠.





Q5.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들을 개척해 나가시며, 시행착오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지식이나 경험에 의존하기 보다는 직관력을 믿어요. 나름 이 분야의 빅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큰 흐름을 읽는 분석력이 생기고 예측 가능한 미래가 보이는 게 사실이에요. 물론 시행착오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 꽂히면 주저하지 않고 시도해요. 수학과 미술, 과학과 미술의 융합도 최초 시도할 당시, 미술은 감성, 수학과 과학은 논리, 이런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미술과 수학, 과학이 무슨 관련이 있지?’라는 반응이었죠. 그럴수록 고집스럽게 파고들며 작업하다 보니, 그것이 오히려 관객과 언론의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켰어요.

저희 미술관 큐레이터들은 죽을 맛이죠. 기존 모델도, 참고해야 할 자료도 없잖아요. 편하게 가려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편한데 우리 스스로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하니까. 작업에 완전 미쳐야 해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처럼!




Q6. 인증샷 시대에 맞게 기획된 ‘Selfie전_나를 찍는 사람들’, 8월 20일까지 연장될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요, 기획의도와 함께 어떤 점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봅니다.

젊은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식당에서도 거리에서도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더라고요. 분석을 해 봤죠. 미술관에서도 사진을 찍고 싶지만 저작권 침해, 관람 예절 문제 등의 이유로 ‘사진 촬영 금지’인 곳이 많더라고요. 그렇다면 ‘어디서도 사진을 찍어 SNS에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이 거대한 현상을 전시에 끌어들이면 어떨까?’ 하는 역발상에서 기획하게 됐어요.

이러한 현상을 탐구하는 10인의 작가들을 모으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교합 부분을 찾아내는 작업들을 거쳐 지난 4월 오픈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색의 반전 기법으로 현실과 환상의 영역을 믹스해 작품화하는 고상우 작가 외 작가 군도 탄탄하고 다양한 리서치 자료와 체험 콘텐츠들을 결합했어요. 이 흥미로운 현상 전체를 다각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전시라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아요.




Q7. 사비나미술관을 함께 만들어가는 멤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어떤 방식으로 창의성을 융합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미술을 공부한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자질과 창의성은 별개의 문제잖아요. 미션이 주어지면 고비를 하나씩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데,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숨은 능력이 나오고 세상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의 폭도 확장되는 것 같아요. 우리 직원들은 셀피전처럼 낯선 전시들을 진행해 오면서 굉장히 창의적이 되었어요.

거대 자본과 경쟁하려면 장애물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패의 위험 속에 있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뚫고 나가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플랜 B, C, D… 창의적인 생각의 회로들이 형성되거든요. 모든 게 주어진 편안한 환경에선 대안을 찾을 필요 없죠. 창의성이 나올 수 없어요. 잉어가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 에너지도 커지잖아요. 힘든 고비와 마주하면서도 성장하길 원하는 우리 직원들이야말로 뛰어난 융·복합 인재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Q8. 미술관 운영 외 기업 강연, 칼럼 기고, 책도 수십 권 집필하셨어요. 다양한 일에 에너지를 균형 있게 쓰며 사시는 관장님만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겉에서 보면 활기 넘치죠. 알고 보면 금방 에너지 방전되는 타입이에요. 체력이 약해 이것도 저것도 다 할 수 없기에 마치 수도승처럼 1순위, 2순위 중요도에 맞게 움직여요. 근데 번 아웃 된 상태에서도 미술, 영화, 책등 예술 속에 있어요. 일과 휴식이 하나에 다 들어와 있어서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휴식인지 경계가 없어요.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스트레스 받거나, 육체적으로 피곤할 땐 개봉관이든 집에서든 영화 보며 멍 때려요. 거의 하루 한편 보거든요? 마치 유체이탈 된 것처럼 캐릭터 안에 몰입하다 보면 머리가 싹 비워져요. 반려견인 ‘달리’ ‘모네’와 집 뒤쪽 야산으로 매일 밤 산책도 나가는데, 숲 공기 맡고 오면 몸 전체가 깨끗해진 느낌이에요. 매일 새벽엔 약 2시간 정도 글 쓰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해요. 저만의 명상 시간이에요. 매 순간 비움과 채움의 균형을 잡고, 나를 힘 빠지게 하는 불필요한 일은 잘 안 하려 해요.

 

Q9. 사비나미술관은 작가와 작품 고유의 가치를 유지하는 융합 전시를 선보임과 함께, 아이, 직장인, 소외계층 등 다양한 ‘관객’과의 소통, 교육 활동으로 미술계 귀감이 되어주고 계세요. 예술 교육을 중시하시는 이유는요?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보편화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엔 문화예술이 키를 쥐고 있어요. 다보스포럼의 ‘미래고용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72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지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은 창의성, 유연성, 편집력이 뛰어난 문화예술인들이에요. 지식체계가 현재는 먹힐지 몰라도 아이들이 크면 큰 의미가 없게 되는데, 우리는 여전히 지식을 쌓는 교육을 하고 있어요.

다양하게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하며 나아가야 하는데, 어릴 때 지식체계를 주입해 버리면 생각의 힘줄 형성이 아예 안되거든요. 지금 이 시점에서는 예술, 독서, 명상 등을 통해 매 순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필요가 있어요. 사비나는 현재의 교육 프로그램에 예술 속에서의 힐링, 명상, 소통 등 다양한 체험 요소를 도입한 아카데미 기능을 활성화시킬 계획입니다.




Q10. 미술계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 내시는 관장님 자체가 ‘융합의 아티스트’시란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을 만들어 나가야 할 크리에이터들이 일상 속에서 창의성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나눠 주세요.

우리가 지나치게 타율성에 갇혀 있잖아요. 제자들에게도 파격적인 내용의 인생 수업을 해요.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아직 무명인데 잃을게 없지 않니. 우리 같이 알려진 사람들은 잃을 것도 많고, 실수하면 금방 망신당하잖아. 아직 브랜드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왜 소심하게 몸을 사려’ 해요. 도전하고 실패하는데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자신을 공부하면 창의성을 기르는데도 타인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 잊지 마시고요.

<자신을 공부할 것>
현재의 삶이 괴로운 이유는 바로 자기다움과 무관한 일을 해서예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에너지가 막 나오죠. 일기를 쓰며 자화상을 그리며 자기 자신을 탐구하세요. 언제 가장 행복한지,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다 보면 지금 뭘 해야 할지 금방 알아요. 그중 가장 중요한 것부터 고르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우리 대부분은 남에게 관심이 많거든요. 자기다운 삶과 거꾸로 가는 거지. 자신을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가 되세요.

<자기 업무에 달통할 것>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경우 정통 미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 과학적 사고방식을 다 끌고 왔어요. 자기 걸 버리고 남의 것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피카소처럼 고유의 자기 것에 부족한 부분 끌고 오는 작업이 진정한 융·복합이에요. 내가 가진 재료에 새로운 것을 섞어보는 습관만으로도 융합의 황금비율로 만들어진 인재가 될 수 있어요.

<낯설게 하기>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등 초현실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서로 다른 사물들을 결합하고 낯설게 만들어 관객에게 시각적 충격과 혼란을 불러일으켜요. 상식과 논리를 뒤집잖아요. 사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힘, 남들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예술화하는 예술계의 거장들에게서 팁을 얻으세요.

<편견 깨기>
똑같은 걸 봐도 사람의 시선 차이가 다 다르죠.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삶의 철학은 지키되, 아이처럼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시선으로 타인을 대할 필요가 있어요. 하나의 인격보다 여러 인격을 이해하고 사는 것이 한 번뿐인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일과 삶의 융합 작업도 용이해지겠죠.

<인내와 희생>
최동호 시인의 ‘히말라야 독수리’ 읽어 보셨어요? 시 속의 히말라야 독수리들은 설산의 높은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 낡은 부리를 부숴버리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생명의 힘을 얻어요. 그런데 인간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열매를 거저 얻으려고만 하죠. 노력과 인내라는 희생을 치러야만 대가를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시길.

 

Q11. 모든 방향으로 뚫려있는 정신을 만난 느낌이 들어요. 미술계 ‘여자 조르바’라고 불리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혹시 최종의 꿈이 있으신가요?

나는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정직하게 나다운 모습으로 하루를 살기에도 벅차요. 오늘 계획한 일이 내일이면 바뀌는 일을 자주 경험하거든요. 나 자신이 어디로 갈지는 몰라요. 다만 살다 보면 흔적이 대단하든, 별 볼일 없든 달팽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럼 되는 것 같아. 결국 모든 길은 한 곳으로 통하기 마련이고…

미리 걱정해 봐야 될 일도 안돼요. 이 순간 영원하지 않으니. 지금 당장 중요한 것에 충실하고 싶어요. 의외로 렛 잇 비(Let It Be)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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