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적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적당한 불편이 주는 가치는 무엇일까? 뭐든지 즉시 해결되는 세상에서 편리함과 효용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손을 직접 놀려 지속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핸드메이드 라이프스타일로 살펴보는 가치 소비 트렌드.
본능의 결핍 해소를 위한 핸드메이드
일상에 소용되는 모든 도구를 우리가 직접 만들 수는 없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물컵 한 번 만들어 본 사람이 적다. 당연한 일이라고? 아니다. 인류는 자신이 쓸 도구를 직접 만드는 ‘지능적 손’을 가진 덕분에 오늘에 이르렀다. 다만 공장과 제품으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이 ‘생각하는 손’을 빼앗은 것뿐이다.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새로운 제품이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지금, 뜬금없어 보이는 ‘핸드메이드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인류의 원형질이 복원되려는 자연스런 반작용이다. 공장에 위임했던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속성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핸드메이드 열풍이 불기 전, 사람들은 ‘명품’에 먼저 열광했다. 같은 가방이라도 타인과 다른 제품을 얻기 위해 과감하게 지갑의 출혈을 감수했다. 아직도 유효한 그런 경험과 함께 등장한 방식이 ‘스페셜 에디션’을 향한 집착이다. 하지만 그런 차별적 경험을 통해서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느껴지자 사람들은 ‘핸드메이드’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핸드메이드는 세계적 트렌드
굳이 차를 몰고 마트에 가지 않아도 클릭 몇 번으로 자신이 원하는 온갖 채소가 현관문까지 배달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번거롭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낑낑대며 물조리개를 들고 도시농부를 자처하는 이들의 심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왜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패스트패션이 유행하는 요즘, 거실에 재봉틀을 들여 먼지를 풀풀 날리며 홈패션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비교적 손쉬운 이불이나 커튼 따위를 직접 만들다가 노하우가 축적되면 아이들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을 입히는 열정을 보인다. 아이들이 만족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30~40년 전엔 흔한 일이었으니, 일종의 복고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 과거에는 근검절약의 일환이었지만, 지금은 개성의 표출이 된 홈패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전문가 영역에 속하는 인테리어 영역까지 넘보는 ‘셀프 인테리어’도 유행이다. 주방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개조하거나 작은 가구 정도는 뚝딱(?) 손수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물론 공사에 준하는 이런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려면 적절한 눈썰미와 솜씨가 전제돼야 한다. 솜씨가 없는 이들은 도배 대신 가구와 냉장고에도 칠할 수 있는 기능성 페인트를 구입해 셀프 페인팅에 도전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오프라인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문고리나 페인트 등 인테리어 자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인너넷 쇼핑몰이나 쿠션, 리빙 소품, 가구까지 파는 토털 인테리어 편집숍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 문고리닷컴의 셀프인테리어숍 ?moongori.com
이런 흐름은 소득이 늘고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형성된 세계적 트렌드다. 게다가 1인 가구의 증가와 삶의 질에 대한 보편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나만의 유니크한 공간을 직접 만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수제 맥주, 수제 구두, 수제 쿠키 등 다양한 수제품들의 인기몰이에 대해 영국 BBC는 ‘수제 혁명(Handmade Revolution)’이라는 평가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산업혁명의 반동 수제 혁명
제4차 산업 발전의 혁명이 도래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생산 주체가 아닌 세상이 온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런 상황에서 불고 있는 핸드메이드 열풍은 퇴행적 혹은 역설적 현상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편리를 버리는 대신 불편을 선택하는 것일까? 기계로 찍어 낸 천편일률적 대량생산품보다 투박하지만 멋스럽고 정감이 가기 때문일까? 정교한 제품 대신 투박한 작품을 선호해서일까?
공산품에 대한 반발과 반동은 이미 19세기 후반 영국의 비평가와 미술가들에 의해 시도됐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수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전반적으로 쇠퇴하자, 이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던 것. 그들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상품 대신 양심적이고 가치 있는 수제품이 자리를 되찾길 꿈꿨다. 미술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이 일어났고, 중세의 고딕 예술을 높이 평가했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은 기계 제작품보다 수제품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로써 산업화의 기계적 생산으로 인한 제품의 질적 하락과 인간으로부터 노동의 기쁨을 앗아간 슬픔에 대한 윤리적 저항 운동이 전개됐다.
노동의 지속적 즐거움을 되찾는 이웃들
핸드메이드 열풍은 백화점 문화센터의 커리큘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전에는 도자기나 홈패션 등 포괄적 강좌만 개설됐지만, 이제는 계절과 연령대 등을 고려한 가죽공예, 셀프 인테리어, 힐링 도자기, 옷 수선, 한글 캘리그래피, 꽃 액자 만들기 등 다채로운 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가방, 향수, 비누, 빵 등 직접 만든 물건과 음식은 자급자족을 넘어,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아트마켓이나 도시장터에서 유통되기에 이르렀다.
▲ ‘마르쉐@혜화’의 프리마켓. 핸드메이드 제품은 아트마켓이나 도시장터에서 유통된다. marcheat.net
화장품이나 비누를 직접 만들어 쓰면서 화학제품을 거부하거나, 2G폰을 고집하거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합리적 이유를 들어 자발적인 불편을 선택한 이들이다. 소비자들이 적절한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행복 때문이다. 동시에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고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함이기도 하다.
뭐든지 즉시 해결되는 세상에서 한동안 절대적 가치처럼 여겨져 온 ‘편리성’과 ‘효용성’을 포기하고, 새로운 경험 속에서 지속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이웃’들이 늘고 있다. 이제 기업은 이런 소비자들을 위해 얼마나 ‘매력적인 불편’을 생산할 것인지 고민해 볼 차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