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트렌드를 잘 알아야 하죠. 그런데 트렌드를 무조건 좇아가는 게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트렌드도 생물처럼 성장기와 쇠퇴기가 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잡는 게 중요하죠. 트렌드 관리는 어떻게 하냐고요? 각 채널마다 타깃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만 집중해서는 전체적인 트렌드를 읽어 내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다양한 채널, 다양한 장르를 살펴보려고 노력해요.”
최근 불고 있는 ‘홈컬처’ 문화를 정리해 본다면?
예전에는 ‘홈컬처’라고 할 만한 문화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요리를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해지고 세분화됐다. 맥주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트니스센터를 방불케 할 만큼 집에 기구를 들여놓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학원에 등록하는 대신 집에서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공부할 수 있도록 온라인 교육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또한 과거에는 집에서 시켜 먹는 음식이라고 해 봐야 고작 짜장면, 탕수육이었지만 최근에는 홈딜리버리 서비스가 고급화, 전문화되는 추세다.
이런 변화의 요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홈컬처 문화가 확산되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이른바 ‘가성비’를 들 수 있다. 밖에 나가 비싼 돈을 지불하느니 집에서 저렴하게, 또한 편하게 즐기겠다는 소비 형태가 늘고 있다. 두 번째는 IT 기술의 발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다 보니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이를테면 VR 서비스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집에서도 누릴 수 있게 됐다. 세 번째는 내면에 대한 탐색이다. 남들에게 과시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소비를 넘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스마트한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광고 속에는 홈컬처 문화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집’을 배경으로 하는 광고는 언제나 존재했다. 과거에는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나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모습 등 주로 가족의 일상생활이 주로 묘사됐다. 그런데 요즘에는 KT 기가지니 광고처럼 혼자 살면서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혼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는 네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가 된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카스라이트 <가볍게 즐기자> 캠페인은 자기주도적인 ‘혼족’의 모습이 잘 반영돼 있다. 이 캠페인은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카스라이트는 일반 맥주에 비해 칼로리와 도수가 낮다. 그래서 이전에는 칼로리에 초점을 맞춘 캠페인을 주로 진행했다. 그런데 소비자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단순히 칼로리 때문에 라이트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었다. 헤비 드링커들이 가볍게 마시고 싶을 때 선택하는 주종이 바로 라이트 맥주였다. 그래서 우리는 ‘칼로리’라는 기능적 측면 대신 ‘가볍게’라는 심리적 측면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했고, 그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게 <가볍게 즐기자> 캠페인이었다.
<가볍게 즐기자> 캠페인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욕구가 굉장히 강하며, 윗세대에 비해 그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여가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남들에게 이끌리기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가볍고 편안하게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러니 풀메이크업에 정장을 차려 입고 나가려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카스라이트를 ‘캐주얼 비어’로 포지셔닝했다.
슈트 대신 추리닝, 구두 대신 슬리퍼를 신은 채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발길을 옮긴 주인공 모델이 도착한 곳은 친구의 자취방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홈파티는 클럽의 파티처럼 화려한 조명은 없지만, 소박한 대화와 공감대가 있다. 그곳에서는 일부러 꾸밀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 편안함 속에서 즐거운 힐링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캐주얼 비어’가 소구하는 포인트다. 이 캠페인은 아직 라이트 맥주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국내에서 라이트 맥주가 뿌리를 내리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양한 소비자 트렌드 중 특별히 공감되는 트렌드가 있다면?
지난해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서서히 붐이 일고 있는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정보와 물질의 과잉 속에서 살고 있다. 이는 인간관계까지 포함된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쌓아 놓고 살다 보니, 때로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겪는다. 그것이 지속되면 염증을 느끼고, 변화를 찾게 된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가 공유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온갖 물건이 가득했던 저자의 방에는 달랑 책상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창에서 들어온 햇빛이 방 안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그 햇빛을 보는 순간 나는 ‘버린 게 아니라 햇빛을 들여놨구나’ 하고 생각했다. 미니멀리즘이 내세우는 모토는 ‘사치를 버리고 가치를 찾자’이다. 그런 점에서 미니멀리즘은 본질에 대한 회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