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스타일과 관련된 유행어의 족보가 웰빙, 로하스, 킨포크에 이어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로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들(Hoarder)은 결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한 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이미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자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계점에서 시작된 대안적 생존양식
영미권과 일본에서 미니멀 라이프가 태동한 시점은 2010년경으로 유사하지만, 그 배경은 사뭇 다르다. 영미권에서는 “좋은 차에, 넓은 집, 명품을 소유했지만 더 많은 물건을 구입하는 것만으로는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는 철학적 반성을 배경으로 한다. 반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란 자연재해를 겪으며 공포에 휩싸인 일본에서는 ‘끊고, 버리고, 떠난다’는 뜻의 ‘단사리(斷捨離)’란 유행어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미니멀 라이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구체적 배경은 다르지만, 두 경우 모두 어떤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서 미니멀 라이프가 발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최근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해답을 공개하면 ①소유 개념의 변화와 ②저성장에 따른 지속적 장기불황, ③1인 가구 증가를 그 배경으로 꼽을 수 있겠다. 이 역시 한계에 부딪친 뒤의 선택이란 점에서 영미권이나 일본의 사례와 일맥상통한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현대인에게는 두 가지 생존양식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돈과 명예, 권력, 지식 등의 소유에 전념하는 ‘소유적(To Have)’ 양식이며, 다른 하나는 물질에 초연하면서 자유롭고 독립적 삶을 추구하는 ‘존재적(To Be)’ 양식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존재적 양식은 참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끊임없이 소유를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겐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생존양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니멀 라이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물건 정리에서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
2~3년 전부터 우리 서점가에도 ‘심플’, ‘정리’, ‘버리기’ 등을 키워드로 하는 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수납의 기술’을 강조하는 책들이 위주였다가, 나중에는 ‘버리기의 기술’을 강조하는 쪽으로 심화되었다. 어느덧 스테디셀러가 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저자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명언까지 탄생시켰다. 미니멀 라이프가 지혜로운 버리기에서 시작됨을 말한 것이다.
이런 책들은 공통적으로 구입할 물건의 리스트 대신 버릴 물건의 리스트와 당위성을 메모하라고 권한다. 버리기, 즉 소유물을 덜어낸다는 행위에는 철학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기도 하다. 무소유(無所有) 정신이나 붓다의 “가진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는 식의 교훈이 이면에 깔려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리기의 미학은 무소유의 실천이라기보다 새로운 구매를 위한 자기합리화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즉 새로운 것을 사서 소유하고 싶은 구매 욕망의 다른 표현이란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적극적으로 버리는 행위를 통해 ‘최소한의 삶’을 지향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줄이는 삶’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행위는 과잉된 삶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선택한 ‘소유 개념의 변화’다. 이 같은 변화가 급속도로 전개된 데에는 소유에 대한 강박이 이전 세대보다 덜한 젊은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집 한 채는 가져야 삶의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이전 세대와 달리 결핍을 체험하지 못한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집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단지 주거의 개념으로 바라본다.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곳’이라는 어느 건설회사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일상을 영위하는 경험적 공간으로 집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동차 역시 리스나 렌탈 방식을 선호하고, 때로는 카셰어링 등을 통해 합리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다양한 경험 욕구, 인스턴트 소비를 부르다
미니멀 라이프의 또 다른 양상인 ‘인스턴트 소비’는 지속되는 저성장 및 1인 가구의 증가, 전월세 증가라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그동안 인스턴트 소비의 주된 대상은 화장품이나 의류, 또는 생활용품 같은 일상적 제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가구나 인테리어 용품, 심지어 가전제품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방송 프로그램도 ‘쿡방’에 이어 인테리어를 다루는 ‘집방’을 선보이고 있다.
요즘 인스턴트 소비의 대표주자는 패스트 퍼니처(Fast Furniture)이다. 패스트 퍼니처는 패스트 패션에서 파생한 말로, 저렴하게 사서 사용하다가 부담 없이 버리는 가구를 말한다. 기성세대들은 열두 자 자개장롱을 마르고 닳도록 윤기 나게 닦아가며 평생을 사용했지만, 요즘 같으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왜?” 하고 의아해할 법한 일이다.
비록 집은 내 소유가 아니더라도 내가 거주하는 공간만큼은 오롯이 내 소유. 해마다, 철마다 내가 만끽하고 싶은 스타일로 공간을 꾸미고 싶은 욕구는 고가의 가구나 인테리어 용품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다양한 스타일의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저렴하고 트렌디한 디자인의 패스트 퍼니처가 안성맞춤이다. 국내 진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는 완제품이 아니라 DIY가구를 주로 취급한다. DIY가구 열풍도 가구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경험’하고자 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가질 것인가, 누릴 것인가
소비자들이 적당히 쓰다가 후회 없이 버릴 수 있는 인스턴트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하루에도 수백 종의 새로운 아이템이 쏟아지는 환경 때문이다. 또한 점점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지는 소비자들의 적극적 취향과도 관련이 있다. 때문에 이제는 기업이 제품의 교체 시기나 수요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그 시기와 수요를 결정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줄이고, 고매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다른 차원의 경험에 대한 갈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미니멀리스트들은 급기야 ‘경험’을 상품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소비자들은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능동적으로 소비할 준비가 돼 있다.
‘소유(所有)’의 ‘소’에는 ‘가지다’, ‘얼마’라는 뜻이 있으며 ‘향유(享有)’의 ‘향’은 ‘누리다’라는 뜻과 함께 ‘잔치’라는 의미가 있다. 가질 것인가 누릴 것인가. 이는 결국 정량화할 수 있는 ‘얼마짜리’ 소비에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잔칫상처럼 풍성하고 다양한 경험의 가치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한계점에서 시작된 대안적 생존양식
영미권과 일본에서 미니멀 라이프가 태동한 시점은 2010년경으로 유사하지만, 그 배경은 사뭇 다르다. 영미권에서는 “좋은 차에, 넓은 집, 명품을 소유했지만 더 많은 물건을 구입하는 것만으로는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는 철학적 반성을 배경으로 한다. 반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란 자연재해를 겪으며 공포에 휩싸인 일본에서는 ‘끊고, 버리고, 떠난다’는 뜻의 ‘단사리(斷捨離)’란 유행어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미니멀 라이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구체적 배경은 다르지만, 두 경우 모두 어떤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서 미니멀 라이프가 발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최근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해답을 공개하면 ①소유 개념의 변화와 ②저성장에 따른 지속적 장기불황, ③1인 가구 증가를 그 배경으로 꼽을 수 있겠다. 이 역시 한계에 부딪친 뒤의 선택이란 점에서 영미권이나 일본의 사례와 일맥상통한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현대인에게는 두 가지 생존양식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돈과 명예, 권력, 지식 등의 소유에 전념하는 ‘소유적(To Have)’ 양식이며, 다른 하나는 물질에 초연하면서 자유롭고 독립적 삶을 추구하는 ‘존재적(To Be)’ 양식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존재적 양식은 참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끊임없이 소유를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겐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생존양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니멀 라이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물건 정리에서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
2~3년 전부터 우리 서점가에도 ‘심플’, ‘정리’, ‘버리기’ 등을 키워드로 하는 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수납의 기술’을 강조하는 책들이 위주였다가, 나중에는 ‘버리기의 기술’을 강조하는 쪽으로 심화되었다. 어느덧 스테디셀러가 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저자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명언까지 탄생시켰다. 미니멀 라이프가 지혜로운 버리기에서 시작됨을 말한 것이다.
이런 책들은 공통적으로 구입할 물건의 리스트 대신 버릴 물건의 리스트와 당위성을 메모하라고 권한다. 버리기, 즉 소유물을 덜어낸다는 행위에는 철학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기도 하다. 무소유(無所有) 정신이나 붓다의 “가진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는 식의 교훈이 이면에 깔려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리기의 미학은 무소유의 실천이라기보다 새로운 구매를 위한 자기합리화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즉 새로운 것을 사서 소유하고 싶은 구매 욕망의 다른 표현이란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적극적으로 버리는 행위를 통해 ‘최소한의 삶’을 지향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줄이는 삶’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행위는 과잉된 삶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선택한 ‘소유 개념의 변화’다. 이 같은 변화가 급속도로 전개된 데에는 소유에 대한 강박이 이전 세대보다 덜한 젊은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집 한 채는 가져야 삶의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이전 세대와 달리 결핍을 체험하지 못한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집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단지 주거의 개념으로 바라본다.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곳’이라는 어느 건설회사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일상을 영위하는 경험적 공간으로 집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동차 역시 리스나 렌탈 방식을 선호하고, 때로는 카셰어링 등을 통해 합리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다양한 경험 욕구, 인스턴트 소비를 부르다
미니멀 라이프의 또 다른 양상인 ‘인스턴트 소비’는 지속되는 저성장 및 1인 가구의 증가, 전월세 증가라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그동안 인스턴트 소비의 주된 대상은 화장품이나 의류, 또는 생활용품 같은 일상적 제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가구나 인테리어 용품, 심지어 가전제품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방송 프로그램도 ‘쿡방’에 이어 인테리어를 다루는 ‘집방’을 선보이고 있다.
요즘 인스턴트 소비의 대표주자는 패스트 퍼니처(Fast Furniture)이다. 패스트 퍼니처는 패스트 패션에서 파생한 말로, 저렴하게 사서 사용하다가 부담 없이 버리는 가구를 말한다. 기성세대들은 열두 자 자개장롱을 마르고 닳도록 윤기 나게 닦아가며 평생을 사용했지만, 요즘 같으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왜?” 하고 의아해할 법한 일이다.
비록 집은 내 소유가 아니더라도 내가 거주하는 공간만큼은 오롯이 내 소유. 해마다, 철마다 내가 만끽하고 싶은 스타일로 공간을 꾸미고 싶은 욕구는 고가의 가구나 인테리어 용품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다양한 스타일의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저렴하고 트렌디한 디자인의 패스트 퍼니처가 안성맞춤이다. 국내 진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는 완제품이 아니라 DIY가구를 주로 취급한다. DIY가구 열풍도 가구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경험’하고자 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가질 것인가, 누릴 것인가
소비자들이 적당히 쓰다가 후회 없이 버릴 수 있는 인스턴트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하루에도 수백 종의 새로운 아이템이 쏟아지는 환경 때문이다. 또한 점점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지는 소비자들의 적극적 취향과도 관련이 있다. 때문에 이제는 기업이 제품의 교체 시기나 수요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그 시기와 수요를 결정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줄이고, 고매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다른 차원의 경험에 대한 갈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미니멀리스트들은 급기야 ‘경험’을 상품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소비자들은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능동적으로 소비할 준비가 돼 있다.
‘소유(所有)’의 ‘소’에는 ‘가지다’, ‘얼마’라는 뜻이 있으며 ‘향유(享有)’의 ‘향’은 ‘누리다’라는 뜻과 함께 ‘잔치’라는 의미가 있다. 가질 것인가 누릴 것인가. 이는 결국 정량화할 수 있는 ‘얼마짜리’ 소비에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잔칫상처럼 풍성하고 다양한 경험의 가치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