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달라지는 세상을 위해
김은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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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영 차장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장르물의 대가로 한국 드라마의 다양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 김은희.
분야는 다르지만 세상의 마음을 움직일 메시지를 강렬한 한 줄의 카피로 보여주는 이노션의 카피라이터 강태영 차장.
쓰고자 하는 것이 16부작의 드라마든, 단 한 줄의 카피든 두 사람의 글은 맥을 같이한다. 쓰디쓴 소주 한잔이 아닌, 기분 좋은 술잔을 기울이며 환하게 오늘을 이야기할 그날을 위해, <시그널> 포스터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INTERVIEWER. 강태영 차장 (Copywriter, INNOCEAN Worldwide)
TEXT. Life is Orange 편집팀 ILLUSTRATION. 임성구
강태영 차장(이하 강):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인터뷰가 나갈 때쯤엔 <무한상사>가 방영된 후일 텐데요. 각본을 담당하신 건 부담스럽지 않으셨어요?
김은희 작가(이하 김): 제가 <무한도전> 팬이기도 하고요. 한 작품이 끝나면 작가는 금치산자 수준으로 정신이 나가 있을 때가 있거든요. 애 낳고 나서 여자들이 힘들었던 걸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처럼요. 딱 그때쯤이었던 거죠. 모든 대본이 끝나서 너무 시원하고 뭐든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럴 때쯤 마치 짠 듯이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서 해맑게 "네, 할게요!" 한 건데. 일이 너무 커져버려서.(웃음)
강: (장항준) 감독님과의 호흡은 어떠셨어요?
김: 이번에 하고 나서 남편이랑은 일하는 게 아니구나를 느꼈죠.(웃음)
강: 저는 아니지만, 광고 업계에도 함께 일하는 부부가 많거든요. 같은 계통의 일을 하면 서로 도움받을 일도 많을 텐데요. 대화는 많이 나누시죠?
김: 대화는 잘 통해요. 모니터는 잘 안 해주지만요. 남편도 글 쓰는 작가이고 제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도움이 될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남편과 같이 일을 안 한 지 꽤 오래됐잖아요. <싸인> 이후부터는 따로 일했고 저도 머리가 많이 컸고... 그리고 이번에 제작 여건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거든요. 다들 너무 바쁘신 분들이라 스케줄 맞추기도 힘들고 제작비도 그렇고요. 예능이라고 해도 명색이 영화팀이 모여서 만드는 건데, 영화다운 퀄리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았죠.
강: 재능기부를 하신 거죠.
김: 저희가 무한도전을 한 거죠.(웃음)
강: 처음에 예능 작가를 하시다가 드라마 작가가 되신 거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드라마 족으로 옮기시게 된 건가요?
김: 예능을 할 때 남편을 만났어요. 선후배로 일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때는 시나리오를 원고지에 직접 썼거든요. 그걸 제작사에 넘기려면 파일로 만들어야 해서 제가 대신 타이핑을 해줬죠. 이런 게 시나리오 작가한테는 큰 도움이 돼요. 남이 쓴 글을 옮기면서 내가 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남이 쓴 게 아니더라도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명작들 있잖아요. 흔히 '복기'라고 표현하는데, 작품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 들어온 영상을 시나리오로 한번 써보는 거죠. 넋 놓고 그냥 보는 거랑 영상화된 걸 다시 글로 써보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강: 저희도 후배들한테 15초 광고를 컷으로 다 쪼개서 커트된 걸 다시 스토리보드로 바꾸는 작업을 시키곤 해요. 그렇게 하면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김: 네, 그런 비슷한 작업을 처음에 의도치 않게 해본 거죠. 그러다가 재미를 느낀 거고요.
강: 글 쓰는 직업이 다양하긴 하지만 저희가 쓰는 글이랑 작가님이 쓰시는 글이랑 맥이 맞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의 역할은 청사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김: 네, 맞아요. 작가는 작품의 설계도를 그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처음부터 기획을 같이하시는 분이 계시고 아닌 분도 계세요. 이를테면 대본이 1, 2부 정도 나온 상태에서 편성을 받게 되는데 그때부터 감독님이 붙게 되는 경우죠. 어쨌든 기획부터 촬영 끝날 때까지 감독님과 계속 같이하면서 필요한 수정도 하고, 끝날 때까지 밑그림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람이 바로 드라마 작가인 것 같아요.
강: 감독님들과는 처음에 어떻게 만나서 작업하시는 건가요?
김: 그게 상황에 따라 다른데요. <싸인>의 경우는 남편과 제가 처음부터 같이 기획했던 거고요. <유령>은 <싸인> 후반부를 같이 해주신 인연으로 김형식 감독님과 작업했죠. <쓰리데이즈>의 신경수 감독님처럼 처음부터 방송국에서 매칭해주는 경우도 있어요. 작가 쪽에서 'NO'라고 하는 경우 아니면 거의 그런 식으로 매칭이 되죠.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님은 공중파에서 tvN으로 옮기면서 만나게 된 경우이고요.
강: 드라마 한 작품을 준비하는 기간은 보통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해요.
김: 그것도 작품에 따라 달라요. 편성을 제때 받는다고 하고 준비해도 최소한 1년 반은 걸리는 것 같아요. <시그널>이 올해 초에 끝났으니까 다음 작품은 내년 하반기가 되겠죠? 16부작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준비기간이 최저인 것 같아요.
강: 작품 간의 조율도 가능하신가요? 꼭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감독님이 있거나 내가 생각하는 스케줄이 있는데 갑자기 외부에서 작업이 들어올 때는 어떻게 정리하세요?
김: 두 개를 동시에 진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요, 제가 꼭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외부의 어떤 압력도 안 듣죠. 그건 다른 분 찾아서 하시라고 하고.(웃음) 작가 스스로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
강: 그러게요, 저희는 그게 잘 안 돼서.(웃음) 마감 스케줄이 있는데도 동시에 다른 일도 해야 하고 그렇죠.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늘 답이 없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요. 질문이 좀 식상할 수 있겠지만, 작가님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는지...
김: 그냥 살다 보니까 얻어지는 것들이에요. 창작하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예를 들어 내가 지금까지 봤던 책도 도움이 되고요. 읽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건데도 어떤 아이템에 잡히면 '아, 그때 봤던 그걸 잘 엮으면 될 것 같아.' 이런 식으로 굴비 엮듯이 이어지는 거죠. 매일 보는 신문 기사라든지 그때 받은 감정이라든지.
강: 막상 영감이 떠올라도 그걸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대화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설득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힘든 건 없으세요?
김: 저는 제일 우선으로 작품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의라서요. 아이템이 재미없으면 안 돼요.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기본적으로 아이템에 대한 동의는 있는 상태에서 들어가죠. 그 안에서 상대방이 '이런 건 어때요?'라고 제안했을 때, 그게 재미있으면 받고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는 식이에요.
강: 저희 광고 업계는 그렇거든요. 일단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 아이디어가 최종 광고로 나가기까지 수많은 공격이 있어요. 작품으로 치자면 투자자의 의견이 있을 수 있고, 만들다 보면 촬영 여건이 안 될 때도 있고, 비용이 문제가 될 수 있고요. 우리나라 제작 시스템에 대한 바람 같은 것 있으세요?
김: 시간 촉박한 건 다들 똑같으니까 방송국에서 해달라는 건 웬만하면 맞춰주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려면 그 환경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시그널>은 그런 게 잘 들어맞았어요. 타이밍도 좋았고 방송사와 잡음이 하나도 없었죠. 감독님과는 너무 잘 맞았고,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작업할 수 있었고요. 앞으로도 이런 좋은 환경을 계속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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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2016)
tvN 최고의 웰메이드 장르 수사물 드라마.
주연은 이제훈, 김혜수, 조진웅.
<성균관 스캔들>, <미생> 등을 연출한 김원석 PD가 메가폰을 잡았다.
과거로부터 걸려온 간절한 신호로 연결된 현재와 과거의 형사들이
오래된 미제 사건들을 다시 파헤치는 스토리.
유령(2012)
소지섭, 이연희, 엄기준 주연의 사이버 수사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사물. 드라마 제목인 '유령'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잠재적 위험요소인 해커들을 지칭한다. 소재가 사이버 수사이다 보니
악플과 입시위주 교육 등 현실 속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강: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된 작품이기도 해서 <시그널> 얘기를 계속하게 되는데요, 여담이지만 저희도 드라마 덕을 좀 봤거든요.(웃음) 조진웅 씨를 광고 모델로 썼는데 그 타이밍에 <시그널>이 잘돼서 광고도 결과가 좋았어요. 혹시 배우 선정 과정에 작가는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나요?
김: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작가의 성향이 100% 반영되는 경우도 있고요, 대체로 많은 부분이 반영되긴 하죠. 하지만 저는 어떤 배우가 좋다고 우겨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시그널>의 경우는 감독님과 딱딱 맞아떨어진 것도 있어요.
강: 제 친구 중에도 작가가 있는데요, 캐릭터를 쓸 때 어떤 배우를 딱 정해놓고 쓰더라고요. 작가님도 지금가지 쓰신 작품 중에 실제 모델을 염두에 두고 쓰신 캐릭터가 있었나요?
김: 처음부터 캐릭터를 완전히 정해놓고 쓰진 않아요. 그 배우가 안 될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그때그때 처한 환경이 있고 배우 스케줄이 있고 제작비 문제도 있는데. 그런 걸 생각 안 할 수 없으니까요. 물론 좋아하는 배우는 있죠. 꽃미남 쪽은 아니고요, 일단 저는 쌍꺼풀을 싫어합니다.(웃음)
강: 아, 그래서 작가님 작품의 남자 주인공들은 쌍꺼풀이 없었던 거군요.(웃음) 혹시 <시그널>의 '이재한'이라는 캐릭터는 조진웅 씨 말고 머릿속에 떠올리신 분이 있으세요?
김: 처음에 박해영과 이재한. 투 탑으로 생각했거든요. 현재 형사도 중요하지만 과거 속 형사도 제겐 굉장히 중요했어요. 좀 더 감성적인 부분을 맡아줬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걸 커버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갖춘 나이대의 배우를 생각했죠. 조진웅은 그전부터 좋아하던 배우였고 한 번쯤은 같이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tvN으로 편성이 난 후 소원을 푼 거죠. 쓰고 싶은 대로 다 써도 된다고 하니까 김원석 감독님과 회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진짜 1순위였어요.
쓰리데이즈(2014)
대통령 암살을 소재로 한 정치 스릴러 드라마.
사라진 대통령을 찾아 사건을 추적하는 한 경호원과 대통령의
긴박한 내용을 그린 스토리로, 사흘간 발생한 일을 그린다.
대통령 역엔 손현주, 그의 경호원으로 박유천이 출연.
<뿌리깊은 나무>로 유명한 신경수 PD가 연출했다.
싸인(2011)
법의학을 소재로 한 메디컬 수사 드라마.
남편인 장항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박신양, 김아중, 전광렬, 엄지원, 정겨운 등이 출연.
시신을 부검하여 사인을 밝혀내는 법의관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있는 숨은 권력과 부조리함을 고발한다.
강: 장기 미제 사건을 다루는 만큼, 공소시효 이슈가 작년에 있었잖아요. <시그널>은 그 이후에 집필하신 건가요?
김: 집필은 훨씬 전부터 해왔어요. 재작년 여름부터 기획한 거니까 5부쯤 쓰고 있을 때 공소시효법이 다시 개정된 거예요. 그래서 이미 써놓은 대본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죠.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는 8월 1일 이후부터 적용되는 거니까 그전에 일어난 사건의 안타까운 상황을 위해서 윤정이 사건을 여름으로 하고 날짜도 7월 29일로 했죠. 현실적으로 고작 하루 때문에 범인을 못 잡나 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요. 그런 식으로 바꾸느라고 계절이 여름이 됐고, 이재한 형사는 한겨울에도 계속 반팔을 입고 촬영할 수밖에 없었죠.(웃음)
강: 배우는 고생했지만 작가님께서 전달하고자 하신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된 건가요?
김: 법이 개정된 건 정말 잘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태완이법인데 태완이는 구제를 못 받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있죠. 2000년 이전의 사건은 소급이 안 되는 거잖아요. 법조인들도 더 이상 개정할 생각은 없는 것 같고, 그전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이제 무죄가 되어버렸죠. 살인죄에 어떻게 공소시효가 있을 수 있겠어요? 법적으로 무죄를 선고한다는 게 저는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드라마에서라도 사건을 풀고 범인을 잡고 싶었죠.
강: 그런 작가님의 의지가 작품에 담긴 거군요. 많은 사람이 <시그널>을 웰메이드라고 이야기해요. 작가님 스스로도 그렇게 평가하세요?
김: <시그널>은 모든 합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특히 김원석 감독님은 연출력이 엄청나신 분이에요. 심지어 장르물을 한 번도 찍은 적이 없는 분이셨거든요. 감독님은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조금만 아리송해도 다 물어보세요. 대본을 캐치하는 센스도 대단하시고, 배우분들은 물론이고 모든 스태프가 자리 드라마처럼 생각해줘서 정말 손발이 척척 잘 맞은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강: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대본은 많이 나와 있을수록 좋은 거죠?
김: 아무래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저희는 장르물의 특성상 사건사고를 다루게 되잖아요. 살인사건 이야기라면 배경이 일단 야산이나 공장인 경우가 많고, 더구나 시대가 80년대라면 CG작업이 들어가는 게 많으니까요. 이런 걸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작가가 아무 생각 없이 쓴 한 줄에 스태프들이 죽어나는 경우도 있고요.
강: 작은 설정 하나라도 정말 잘 생각해서 써야겠네요.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실제의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오신 거로 아는데요. 어떻게 보면 상당히 민감한 소재들이잖아요. 소재 선정에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김: 제가 그동안 느꼈던 감정에서 이런 사건의 범인은 꼭 잡혔으면 좋겠다 싶은 사건들이었어요. 하지만 너무 아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는 못 쓰겠더라고요. 제가 썼던 사건들도 최대한 많이 각색하려고 노력했어요. 사건의 범인이 잡히는 카타르시스를 다들 한번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들 있잖아요. 조금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감정의 것들이 차곡차곡 들어갔던 것 같아요.
강: 사실 장르물이 이만큼 주목받고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케이블의 역할도 큰 것 같은데요. 공중파는 아무래도 보수적인 부분이 있죠?
김: 그렇죠. 모든 방송국이 시청률에 목숨을 걸고 있는데, 공중파에서는 가장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대할 수 있는 게 로코 같은 장르니까요.
강: 작가님께서는 절대 안 하신다고 하신...(웃음)
김: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거죠. 이재한이 차수현을 안는 장면이 있었는데, 딱 그 정도예요. 사랑이 어디 있어요? 이 세상에.(웃음) 케이블은 채널마다 타깃 시청자층이 있고, 확실히 젊죠.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요. 제가 쓰고 싶은 것도 전작보다 좀 더 새로운 거예요. 안 그래도 장르물이 너무 어렵다고 공중파에서는 기피하시는데, 심지어 저는 거기서 더 새로운 장르물을 하고 싶어 하니까 아무래도 힘들겠죠. 계속 똑같은 수사물을 쓸 수 없고 뭔가 새로운 걸 넣으려다 보니까, 그래서 판타지를 차용했던 것도 있어요.
강: 웹툰 콘텐츠가 드라마화되거나 영화화되기도 하는데요. 혹시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있으신지, 아니면 드라마에만 집중하실 생각이신가요?
김: 글쎄요, 영화 쪽은 약속한 것도 있고 뭐 하나는 쓰지 않을까 해요. 사실 드라마는 하고 나면 나를 다 비우는 작업이라는 느낌인데, 영화는 나를 채우는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이번 텀이 지나면 영화를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강: 요즘은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요, 그만큼의 대우를 못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거든요. 우리가 내는 아이디어나 그걸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너무 대우를 못 받는 것 같고, 아무렇지 않게 도영되기도 하고요. 또 취업이라는 현실 때문에 문과생들이 배제되기도 하고, 최근에 읽은 기사 중에 충격적이었던 건, 시인들이 고료를 5만 원밖에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김: 적어도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들끼리는 상도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의 양심이 있다면 판권을 사든지 그에 상응하는 저작권료를 지금해야죠. 시인들의 고료 문제를 지적하셨지만, 서점에 가봐도 순수문학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큰 문제라도 생각해도 당장에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이건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문제점을 제기해야 하는데 현실을 살기 각박하게 만들어놓고 순수문학에 관심을 가지라고 얘기한다는 것 자체도 사실 문제예요.
강: 친한 친구가 있는데요, 극작가학과를 나와서 연극 대본을 쓰다가 영화 시나리오를 팔러 다니고, 방송작가도 하다가 카피라이터도 하고, 지금은 또 웹툰 작가를 하고 있어요. 저도 원래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는데, 어떻게 보면 광고라는 현실적인 것과 타협해서 이 직업을 선택한 것도 있죠. 이런 사회에 대해서 불만은 없으세요?
김: 왜 없겠어요? 드라마 작가는 굉장히 대우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직도 대우 못 받고 고생하시는 분이 훨씬 많거든요. 자기 창작물을 도용당하는 경우도 많고요. 신인 작가라는 이유로 기획안을 기성 작가들한테 뺏기는 경우도 있고, 고료도 사실 그렇게 많지 않고요. 경쟁에 내몰리는 사회는 너무 싫은데, 경쟁력을 가지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도 참 슬프네요.
강: 작가님, 혹시 술은 좋아하세요?
김: 없어서 못 먹죠.
강: 이런 건 소주가 당기는 이야기라서...(웃음)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영화 시나리오도 꼭 한 번 봐주세요. 그럼 마지막 질문으로, 혹시 따님이 같은 걸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김: 그거야 자기 마음이니까,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얘기해야겠죠.(웃음)
그렇게 두 사람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아쉬운 인사를 나눴다. 물론 강태영 차장은 김은희 작가의 핸드폰 번호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언젠가 시나리오를 봐달라는 약속까지 야무지게 하고서 작가의 작업실을 나섰다. 작가와의 대화 중에 유독 머릿속에 남는 얘기가 있었다. "배철수 선생님이 라디오에서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마흔 전에는 사회를 욕할 수 있는데 마흔이 지나면 욕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저도 이제는 기성세대이고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드라마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런 사회의 문제점이나 고쳐야 하는 점들이에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문제들을 생각하고 뭔가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것으로 김은희 작가가 그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해졌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늦어도 내년 하반기쯤엔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