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for Sports
스포츠에 흐르는 음악
스포츠에 흐르는 음악
웸블리 구장은 축구의 상징이다. 영국 뮤지션에겐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웸블리를 가득 채운 관중들은 축구든 음악이든, 푸른 잔디밭에 높이 솟은 이들의 행동과 소리에 열광했다. 스포츠와 음악, 모두 실시간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만난다. 많은 뮤지션이 자신이 사랑하는 팀을 음악으로 찬양했고, 많은 스포츠가 자신들과 어울리는 노래로 육체의 미학에 소리를 입혔다. 승리의 찬가가 있고 패배의 위로곡이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스포츠와 그 안에 흐르는 음악들을 살펴보자.
TEXT.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FOOTBALL
악틱 몽키스 <Whatever People Say I Am, Thant's What I'm Not>
축구처럼 단순한 구기종목이 있을까. 다른 스포츠들이 특정 부위나 도구로만 공을 건드려야 한다면 축구는 손만 쓰지 않으면 된다. 정해진 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심판의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늘어난다. 축구가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원동력은 그 단순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하기 때문에 원초적 쾌감을 주는 것이다.
야구의 '기록'과 농구의 '룰'이 주는 딱딱함 따위, 축구 앞에서는 한갓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일까. 훌리건 중에는 펑크 밴드가 많다. 훌리건의 트레이트마크인 프레드 페리 셔츠와 닥터마틴 부츠는 스킨헤드 펑크들의 유니폼이기도 하다. 섹스 피스톨스의 조니 로튼은 자타가 공인하는 아스날의 팬이었다. 70년대 펑크가 쇠한 90년대 이후의 영국 록계에서도 로커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을 음반 판매량 못지않게 중시했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아예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가 되기도 했으니 알 만하다.
2000년대가 배출한 영국 최고의 밴드, 악틱 몽키스의 데뷔 앨범은 한때 영국 훌리건드리 가장 사랑했던 음반이다. 매일 펍에 가서 축구 시합을 보고, 시즌권을 사기 위해 뼈 빠지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E M F < S c h u b e r t D i p >
1991년, 세상은 온통 전쟁이었다. 아버지 부시가 사담 후세인을 향해 스마트 폭탄과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쏴댔다. 너바나는 <Nevermind>로 80년대의 보수주의에 선전포고를 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Loveless>로 일렉트릭 기타의 상식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닉 혼비는 저서 <피버 피치>를 통해 그 해의 축구 열기는 전쟁마저 잊게 할 만했다고 회고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축제였다.
BASEBALL
B r u c e S p r i n g s t e e n < B o r n T o R u n >
야구를 빼고 미국을 생각할 수 있을까. 외국의 팬들이 메이저리그에 열광한다면, 미국의팬들에게 메이저리그는 일상이다. 주말이 되면 아들과 조카 손을 잡고 양키스 스타디움, 셰이 스타디움을 찾으며 인생을 보낸다. 마약 야구가 아니었다면 미국의 각 주는 몇 차례나 전쟁을 벌였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어쩌면 야구는 연방을 유지하는 접착제일지도 모르겠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미국인들에게 야구와도 같은 뮤지션이다. 그의 노래 'Born In The U.S.A'는 대선 때마다 모든 후보가 캐치프레이즈 송으로 쓰기 위해 러브콜을 보낸다. 본 조비, 펄 잼 등이른바 미국적인 울림을 들려주는 뮤지션들의 뿌리에는 그가 있다. 개척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미국의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을 구현하는 그의 앨범 중 <Born To Run>은 베트 소리와 함께 타자가 달려나갈 때 객석에서 터지는 뜨거운 함성을 연상시킨다.
< 날 미 치 게 하 는 남 자 > O S T
<날 미치게 하는 남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광적인 팬이 야구 때문에 겪는 사랑의 우여곡절을 그린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평생 팬인 패럴리 형제가 메가폰을 잡았다. 이 영화가 여느 야구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제작과정에서의 드라마다. 촬영이 끝난 2004년 말, 보스턴 레드삭스가 86년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것. 보스턴의 우승을 판가름 짓는 마지막 시합에 패럴리 형제는 드류 베리모어와 지미 팰런을 데리고 달려갔다. 촬영장비를 모두 싸매고, 그 현장에서 수정된 결말이 다시 만들어졌다. 역사의 현장에서 만들어진 영화인 것이다.
OST에도 그런 드라마틱함이 담겨 있다. 뉴 잉글랜드 출신이 주축이 된 참가팀 중 패럴리 형제만큼이나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으로서 감격했던 밴드는 누구일까. 의심의 여지 없이 펑크 밴드 드롭킥 머피스다.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Tessie'를 제공한 그들은 세 번째 앨범 <Sing Loud, Sing Proud>에서 'For Boston'이라는 레드삭스 헌정가를 부른 바 있다. 이 영화의 엔딩에 자신들의 노래가 쓰였다는 걸 아들과 손자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으리라. 언제까지라도.
W W E
V . A . < W W E : W r e c k l e s s I n t e n t >
스포츠의 매력이 각본 없는 드라마라느 데 있겠지만 프로레슬링은 각본 있는 드라마로 각본 없는 드라마 이상의 드라마틱함을 만들어낸다. 사나이들의 잘 단련된 육체가 벌이는 한 편의 연극인 것이다. 영화에서 영웅과 악당, 모두에게 메인 테마가 있는 것처럼 프로 레슬러가 입장하고 승리했을 때 울려퍼지는 노래들은 곧 선수를 상징하는 음악이 된다. <WWE : Wreckless Intent>sms WWE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메인 테마를 모아놓은 앨범이다. 바티스타의 주제가인 'I Walk Alone', 빅 쇼의 주제가 'Rank It Up' 등을 미국 메탈계의 스타들이 맡아 연주했다. 랜디 오튼의 'Burn In My Light', 롭 밴 담의 'Funy Of The Storm'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일만이천 레슬 마니아라면 한 곡 한 곡에 싯 아웃 파워밤, 쇼스토퍼, RKO 같은 피니시 무브먼트를 떠올리며 주먹을 치켜들고 있으리라.
M M A
킬 스 위 치 인 게 이 지 < E n d o f H e a r t a c h e >
이종격투기는 룰을 최소화함으로써 극강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런 이종격투기에 온순한 음악, 서정적인 사운드, 감성적인 가사는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다 강한 사운드, 보다 격렬한 울부짖음을 추구해온 헤비메탈의 역사는 수많은 격투기를 같은 링에 불러 세운 이종격투기와 닮아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메탈 코어 밴드, 킬스위치 인게이지는 헤비 사운드의 최종 진화형, 궁극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밴드다. 하드코어의 전통과 헤비메탈의 방법론을 긁어모아 피와 살점이 튀고 뼈와 근육이 조각나는 메탈 코어로 빌보드를 점령한 것이다. 울부짖는 보컬은 상대의 목을 조르는 비정한 표정이요, 오와 열을 맞춰 진격하는 연주는 한 소절 한 소절이 피를 튀기며 부딪히는 주먹이다. 여기에 믿을 건 오직 몸밖에 없는 격투가의 비정한 멜로디가 곁들여진다. 혼돈과 광기의 사운드가 폭력을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살육의 링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