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NER NOTE] 멸종위기광고인프로젝트 Episode. 01
INNOCEAN Worldwide 기사입력 2016.08.05 11:54 조회 5755



TEXT. 석아영 팀장 (넥스트캠페인4팀. INNOCEAN World Wide)



넥스트캠페인4팀
 
2016년, '멸종위기 광고인 보호 프로젝트'를 위해 철없고 맥없는 과잉웃음장애 아영 팀장을 중심으로 광고인 5명이 모였다. 무결점 막내 Killer 아름, 유리멘탈 Lovely 하빈, 오지라퍼 Sweet 문희, 그리고 외장하드 Genius 진.


01 팀톡방 디톡싱
-
퇴근 후에도 울리는 팀 카톡방 때문에 퇴근 후에도 업무가 계속되는 느낌이다.
카톡방 사용 금지
(5월 5일~15일, 10일간 문자 메시지, 메일로 대체 활용)


얼마 전, Jtbc 뉴스룸에서 '휴일카톡'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보도하지 않았으면 했다는 손석희 사장의 솔직함이 귀엽기도 했지만, 아무리 손석희라도 윗사람의 마음은 비슷한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날의 보도에 따르면 퇴근 후 직장 상사의 카톡 지시는 번지점프나 배우자와 다툴 때 느끼는 것 이상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번지점프도 배우자와의 다툼도 해보지 않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데서 비슷함이 있지 않을까? 우리 역시, 디렉팅(directing)과 채팅(chatting)을 혼동하는 클라이언트와 리더들의 단체 카톡으로 인해 멸종의 길로 가는 의사 타진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있다.

프랑스에선 근무시간 외에 상사로부터 온 이메일, 메시지를 무시할 수 있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라는 것을 노동법에 반영했다고 한다. 이 기회에 우리도 '팀톡방 디톡싱'을 하기로 했다. 연휴와 경쟁PT가 있었던 10일간 팀톡방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업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팀톡방이 없어도 파일을 전달할 방법은 많고, 팀톡방이 없어도 우리는 아이데이션 중이었다. 매일 울려대던 팀톡방이 조용해지자 괜히 소원해진 느낌은 있었지만,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는 팀원들 간에 이 정도 거리는 필요한 것 같았다. 경쟁PT 뒤풀이 회식 후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단톡방에 "고생했어!"라는 한마디와 이모티콘을 보내는 대신, 한명 한명 정성스레 바리친(variation) 문자를 보내 1대1로 대화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면 나도 이제 30대 중반, 올드세대에 합류해서일까?



사실은 카톡만은 PPT파일로 더럽히지 않고, 사적인 공간으로 남기고 싶어 한동안은 카톡으로 파일받는 것을 거부하던 나조차도 팀원들에게 카톡을 열자마자 이상한 편리함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눈을 마주치고, 말을 하는 수고를 덜고 엄지손가락만으로도 팀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어느날인가는 회의를 끝내고 퇴근하던 중에 좋은 Tip이 생각나서 카톡으로 공유한 적이 있다. 한창 바쁠 때여서 도움을 주고 싶은 좋은 의도였음에도, 하마터면 팀원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일 생각만 하는 워커홀릭으로 오해받을 뻔했다. 내 의도와 달리 받아들여져 서운하기도 했지만,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주어지는 시간은 각자의 권리와 책임이 동반되는 것임을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었다. 그러니 잠시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어쩌면 나의 중요한 역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팀톡방 디톡싱 별점 리뷰
 
김진 ★☆☆☆☆
해보기 전까지는 가장 실효성 있고 좋은 프로젝트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웬열- 엄청불편했다. 무엇보다 우리 팀원들을 그렇게 애정한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웃긴 사진과 링크들을 볼 때마다 팀원들한테 그렇게 보내주고 싶더라. (그냥 하지 마라니까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해봐야 안다.

최문희 ★★★☆☆
단체 카톡방이 없다 보니, 문자메세지를 주고받더라도 '꼭 지금 해야 하는 말'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못하니, 대화가 살짝 정이 없어 보이는 건 왠지 모르게 아쉬움.

최하빈 ★★★★☆
수다는 내일 회사에서 해도 되고, 중요한 업무는 통화로 얼른 하면 된다. 퇴근했는데도 빨리 대답 안 하면 괜히 눈치 보이는 저연차 주니어들에겐 만족도 별 반 개 추가. 광고주가 만든 카톡지옥으로도 괴로운데, 우리끼리라도 덜 하면 서로가 편해진다.

길아름 ★★★★☆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왠지 적응된다. 문자로 중요한 말을 전달하다 보니,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 그리고 회사에서 만났을 때 더 반갑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일주일 미션기간이 끝난 후에 카톡방의 말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팀 카톡방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팀들은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다!

석아영 ★★★★☆
'카톡만은 팀원들로부터 지키고 싶었다'하면 웃을까? 카톡으로 업무파일을 받는 것만은 하기 싫었다'하면 믿을까? 내 카톡이 청정구역이 된 것 같아서 좋았다. '업무의 편리성을 위해서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1주일간의 카톡 디톡싱을 추천한다.




02 노트북이 꺼지면 집으로 꺼져
-
야근을 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면, 우리의 업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노트북이 꺼지면 집으로 꺼져- (오후 근무 시간부터 노트북 충전기 없이 업무 시작)


몇 년 전, 한 대선 후보가 내세웠던 캐치프레이즈인 '저녁이 있는 삶'은 대한민국의 많은 직장인의 마음을 움직였고, 대다수의 광고인 역시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그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광고인들이 서식지나 종을 바꾸기를 결심하게 되는 많은 원인이 '저녁이 없는 삶'. 고로 '내가 없고 광고만 있는 듯한 삶'을 느낄 때이다. 역사 이래 수많은 광고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보려 노력했으나 실패한 것이 외부 조건들 때문이라면 외부조건을 변경해보기로 했다.



오후 근무가 시작됨과 동시에 노트북의 전원을 뽑았다. 충전된 배터리의 용량만으로 오후 근무를 해내고, 노트북이 꺼지는 순간 미련없이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오후 1시부터 5시30분까지 정해진 업무시간 동안 누군가는 불안했고, 누군가는 태평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노트북이 꺼져도 꺼질 생각이 없는 사람은 노트북을 집에 가져가서라도 다시 살릴 일이다. 혹시, 외부의 요인이 아닌 스스로 불안해 집에 가지 못하거나, 자리를 지키는 농업적 근면성을 우선하는 가치관을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먼저 노트북이 꺼진 하빈이 처음으로 꺼졌고, 내 노트북은 꺼지지 않았지만 팀장 회식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두 번째로 꺼졌다. 아름은 세 번째로 꺼졌으나, 하지 않던 자리 정리를 하며 회사에 남아 있는 이상 증상을 보였고, 진과 문희는 둘만 남아 옥신각신하다 문희의 노트북이 마지막에 꺼졌다고 한다. 이날, 하빈은 가족과 저녁 식사를 했고(일찍 와서 어머님이 놀라셨다는 후문), 아름은 요가를 했으며, 문희와 진이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필 팀장 회식이 있던 나) 그날 우리의 저녁 시간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지만, 그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광고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가족과의 단란한 저녁 식사, 좋아서하는 취미 생활, 쉽지만 어려운 친구와의 만남, 그 외에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잃어가는 삶의 의미들. 그래서 제대로 살기 위해 스스로 멸종을 택하는 광고인들. 단 하루의 온전한 저녁을 통해 '나'를 찾을 수 있었는지는 각자가 알 일이지만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들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천대받는 것, 가족과 친구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광고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트북이 꺼지면 집으로 꺼져 별점 리뷰

김진 ★☆☆☆☆
대실패. 팀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전원을 뽑았음에도 삼성의 자랑'시리즈9'는 꺼질 줄 몰랐다. 일도 다 했는데 가장 늦게 전원을 뽑은 최하빈 대리가 제일 먼저 손을 흔들며 사라질 때는, 고성능 노트북으로 교체해달라고 노래 부르고 다녔던 과거를 순간적으로 후회하기까지 했다. 오후 내내 배터리 잔량만 보느라 일도 재대로 못했다. 타이틀만 재밌다. 왜 했는지 모르겠다.

최문희 ★★★★☆
'노트북이 꺼지기 전에 업무를 다 완성해야 해!'라는 의무감 때문에 예상보다 업무를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걱정이 너무 앞서서 노트북 전원을 '절전모드'로 설정한 게 문제. 일은 끝났지만 전원이 꺼지지 않아, 오히려 퇴근을 더 늦게 하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했다ㅠ.ㅠ <노트북이 꺼지면 집으로 꺼져->를 또다시 하게 되면 전원을 꼭 '고성능'으로 설정할 것이다!

최하빈 ★★☆☆☆
일종의 마감 효과로 전원이 꺼지기 직전에 업무효율이 극적으로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일회성 이벤트로는 할 만하지만, 현업에서 실행하다가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노트북 화면 밝기를 최대로 하면 조금 더 일찍 퇴근할 수 있다.

길아름 ★★★☆☆
업무효율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하지만 그와 비례하여 불안도 상승한다. 현업이 많은 날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지만 팀 내에서 한 번쯤 재미로는 시도해볼 만하다. 업무 보존량의 법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멸종위기의 광고인을 구해줄 방법이 아닐까?

석아영 ★★★☆☆
노트북이 꺼져도 꺼질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도, 노트북이 꺼지거나 말거나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사람에게도 소용이 없다. 중요한 건 노트북의 전원이나 사무실의 전등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On/Off를 얼마나 잘 조율할 수 있는가이다. 혹시 편의점같이 24시간 켜져 있기를 스스로 혹은 주위사람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자.

03 Hot place에서 Hot working
-
뱅뱅사거리를 벗어나면 더 creative해질 수 있다
Hot Place에서 일하기
(5/25 성수동-카우앤독 & 대림창고카페)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C사는 이태원, T사는 가로수길. 다들 핫플레이스에 있는데 우리만 뱅뱅사거리라니. 우중충한 뱅뱅사거리를 벗어나면 아이디어도 핫해지지 않을까?'' 누군가 사람은 결심을 변하지 않는데 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사는 장소를 바꾸는 거라고 했다. '그래. 장소라도 바꿔보자'라는 생각으로 어느날, 우리는 성수동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몇 해 전부터 성수동 공장지대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린다는 곳. 뚝섬역 7번 출구에 도착해서 출근 시간 인증샷을 찍은 후, '카우앤독'으로 갔다. '카우앤독'은 개나 소나 일할 수 있다는 코워킹(co-working) 카페로 1인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위한 열린 오피스이다. 1층의 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각자의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밖에 없었으나 어느새 '카우앤독'의 공간은 사람들로 꽉 찼는데 젊은 창업자들로 보이는 그들과 함께 있으니 우리도 뭔가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항상 파티션이 만드는 자리간의 경계가 대화에도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 내심 불편했는데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으니 경계가 사라지는 것 같아 좋았다.

정해진 점심시간이 없으니 배가 고프기 시작한 오후 1시쯤 나와 20정도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우콘카레'라는 곳으로 가 밥을 먹고, 대림창고를 개조한 '갤러리 컬럼'으로 장소를 이동해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대림창고로 가는 길목 곳곳에 재미난 것들이 많아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코드를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었다. (#갤러리컬럼 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을 테니 성수동에 갈 일이 있을 때 꼭 한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장소가 너무 좋아 어디서라도 영감을 얻을 태세였지만, 간만의 핫플레이스 방문에 마음이 설레어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평소보다 더 빨리 다가온 듯한 퇴근 시간, 지하철역으로 가던 길목에 발견한 한국산 수제맥주집인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곳에서 맥주 한 잔씩 하며 우리의 어메이징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에너지가 넘치는 하루를 보낸 것 같았으니.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변하는 세상 속에서 도태되는 광고인의 모습에 불안해하기보다 자연스레 진화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작용은 신기한 것이 많아 집중력 부족 현상을 보였던 것인데 핫플레이스로 매일 출근하다 보면 이 증상은 완화될 것 같다. 광고인은 다양한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건 아이디어의 단초로 사용하는 것이 숙명이다. 그래서 광고인은 노는 게 노는 게 아닌데, 못놀게 되니까 불행하다. 비광고인들이 우리보다 더 잘 노는 것 같을 때 좌절한다. 그러니 휴가에 여행을 가기도, 주말에 핫플레이스에 가기도 어려운 우리를 차라리 노는 사람들 한복판에 두었으면 좋겠다.



Hot place에서 Hot working 별점 리뷰
 
김진 ★★★★☆
분명히 불편한 점은 엄청나게 많다. 프린트도 안 되고, 자리에 두고 온 노트가 필요하기도 하고, 낯선 이의 불규칙한 숨소리에 엄청나게 집중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은 어수선한 하루였지만, 그 하루가 주는 만족감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익숙지 않은, 제법 괜찮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리프레시가 된다.

최문희 ★★★☆☆
더 creative해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 대신, 색다른 곳에서 일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양한 것을 구경하니, 일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을 덜 느끼는 것 같았고, 압박을 덜 느끼니 일이 더 재미있어지는 기분이었다.

최하빈 ★★★☆☆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는 것이 한계이지만, 머리가 조금은 말랑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이데이션에는 도움이 되지만, 현업이 많은 날 가게 되면 괴로움이 가중될 듯. 출력도 안 되고 관련 부서 미팅도 안 된다. 그래서 좋으면서, 그래서 불편하다.

길아름 ★★★☆☆
아이데이션이나, 아이디어 미팅만 있는 날에는 유용한 방법인 것 같다. 한 테이블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일하니, 어쩐지 구글인 것 같기도 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좋기도 하다. 'Cultural Afternoon'이 왠지 부담스럽다면 뱅뱅사거리에서 벗어나 핫플레이스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석아영 ★★★★☆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좋을 수밖에. 답답한 공간과 지루한 생활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딱이었따. 고층빌딩에 가려져 만나기 힘들던 햇살과 바쁜 건 같을지라도 회색의 강남역 직장인과 달리 다양한 빛깔의 활기찬 사람들을 보니 아이디어가 막 샘솟을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들떠서 샘솟는 아이디어에 집중을 못한 건 내 탓.

카카오톡 ·  노트북 ·  핫플레이스 ·  카페 ·  디톡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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