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멍게 그리고 모바일
글 | 박승욱 한컴 CR1그룹 CD
‘멍게’를 볼 때마다 우리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이게 도대체 뭐냐? 동물이냐 식물이냐?” 씹히는 맛이야 고기에 가깝지만 바위에 붙어있던 뿌리형태의 부위나 이목구비를 찾아볼 수 없는 흉악스러운 몰골은 괴이한 버섯에 가깝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이 멍게라는 녀석이 어린 시절엔, 시신경 다발로 이루어진 시각기관과 편모 같은 운동기관을 지닌 올챙이 형태의 동물이었다는 사실이다. 헤엄을 치던 멍게 유생이 먹이와 물살이 적당한 바위에 붙어 고착생활을 시작하면서, 필요 없어진 시신경과 운동신경은 퇴화되어 식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일종의 역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모바일의 사전적 의미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이동성이다. 동물과 식물을 구별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엄마가 멍게에 대해서 혼란을 가지셨던 까닭 역시 이 ‘이동성’이라는 동물다움의 결여에 기인했을 것이다. 똑같은 빛이라는 요소를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양분으로 전환시켰고 동물은 시각정보로 치환시켜 운동능력을 향상시켰던 것이다. 칸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 모바일 부문 심사위원에 선정되고 나서 스스로 던진 첫 번째 질문은 당연히 ‘무슨 기준으로 심사를 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모바일은 나 자신에게 정의가 분명하지 못한 분야였고, 사전심사를 통해 출품된 카테고리들을 들여다보아도 혼란만 더욱 가중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떠오른 것이 ‘멍게’다. 뭔 소리인가?
인간의 이동성을 퇴화시키는 모바일은 진정한 모바일이 아니다.
‘위험한 생각들’이라는 책에선 인류가 당면한 심각한 위험 중 하나로 운동의 소멸을 들고 있다. 가상의 섹스가 실제의 섹스를 대체하고 디지털 네트워크가 진정한 만남을 대체하는 것이야말로 결국 인간이라는 종의 소멸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피부에 와서 닿지 않는다면, 게임 속의 아이를 양육하느라 자식을 굶겨 죽인 부부 이야기나, 세간을 축내가며 사이버 아이템 장만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그 한 축에 모바일이 있다. 활동성을 ‘모바일’에 양도하면서 인간은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출품작 중에는 현란한 테크놀로지와 그래픽으로 무장한 아이디어들이 즐비했다. 한번 손에 쥐면 놓을 수 없게 만들어 타겟을 사로잡고 로그인을 유지하는 동안 마케팅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크리에이티브들. 이들은 ‘다운로드 할 필요가 없다’라든가 ‘애플리케이션이 없이도 구동된다’ 같은 것들을 꽤 큰 장점으로 소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사용자는 뭘 얻게 되는가?”가 나의 변함없는 질문이었다. 식구끼리의 대화를 대신할 재미? 게임스코어 같은 가상 성취감 덕택에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진짜 일상? 유용한 발기부전제 광고? (아! 이런 되지도 않는 생각을 가지고 심사에 임하였으니 얼마나 머리 속이 복잡했겠는가?)
모바일: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모바일은 이미 누구나 손에 쥐고 있고 어디든 연결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의 성향을 분석해서 관련된 정보를 내 동선을 따라 살포하는 것은 가능한 기술이지만, 나의 산책이나 수업을 방해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독성에 매우 취약한 인
간본성을 연구해서 반복적인 빛과 사운드를 이용한 게임으로 큰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약물중독과 같은 맥락에서 다뤄지게 될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맥락에서 “최고의 모바일 아이디어는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은 이것이었다.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하는 기관의 확장. 날도래의 유충이 모래알을 제 몸처럼 사용하듯 모바일이 인간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새로운 기관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모바일이어야 하면서도, 반드시 모바일을 넘어서는 무엇일 것’ 역시 중요한 기준이었다. 인간이 모바일과 분리되어 살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면 그 모바일은 진화적이어야 할 것이며 모바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사용자를 종속시키는 형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나는 이런 아이디어에 끌렸다.
Hearing Aid (Singapore Association for the Deaf)
2012년 일본에 쓰나미가 밀려왔을 때 수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집안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경보 시스템이 발달한 일본이었지만 대피 사이렌이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겐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이 모바일 앱은 이런 비극적인 현실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화재경보나 앰뷸런스, 소방차의 사이렌소리를 구별해서 진동으로 알려준다는 간단한 시스템이다. 기술은 단순하고 그럼에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으며 지극히 모바일적이다. 마치 이상적인 모바일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한 것 같았다. 몇 가지 구현상의 문제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지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새로운 방식으로 좀비를 사냥하는 앱보다 십만 배쯤 위대해 보였다.
Radar for good (Cocacola company)
자녀의 치아건강을 생각하는 엄마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음료를 만드는 회사가 어떻게 매번 이렇게 이타적인 캠페인을 만들어 가는지 놀라울 정도다. 코카콜라 루마니아에서 만든 ‘좋은 일을 찾는 레이더’라는 모바일 앱은 말 그대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찾는 레이더이다. 구청 홈페이지에 떠 있을 법한 이 내용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한 이 아이디어의 출발점 때문이다.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일 때 훨씬 실천에 옮길 확률이 높아진다”는 개발자의 인터뷰에서도 보여지듯, 발상이라는 것은 이처럼 매우 통계적인 근거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부숴진 선반에 못질을 하거나 보건소에서 약을 타오는 것 같은 일들, 매우 간단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겐 매우 요긴한 일들이 GPS기술 기반으로 보여진다. 모바일이기에 가능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있고 유익하다. 역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지만 무슨 상관인가? 루마니아 할머니들이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AVOID HUMANS
이 애플리케이션을 빼놓을 수 없다. Avoid Humans, 말 그대로 인파를 피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이다. South By Southwest 축제가 열리는 동안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모든 레스토랑이나 Bar들은 인파들로 미어터진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시끌벅적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한산한 곳을 찾고자 할 때 바로 이 앱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부분은 모르겠으나 왠지 소셜 네트워킹을 역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앱이 내 눈길을 끌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SNS는 부지런히 인간을 연결하는 것 같지만 정작 교류의 밀도는 매우 얄팍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제 사람들을 흩어놓기 위해서도 기능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바일을 통한 과잉연결과 과잉정보, 해결할 수 있는 열쇠 역시 모바일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곳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은 결국 어디 한 곳에 있을 수 밖에 없고 좀 그래야 할 필요도 있다.
내 나름의 그랑프리. Alvio: Respiratory App.
끝까지 경합을 벌였지만 금상에 머무르고 만 아이디어 중에 Alvio라는 천식환자 어린이를 위한 앱이 있다. 이것은 천식치료를 위한 운동기구와 게임을 접목시킨 엄연한 치료도구다. 천식엔 왕도가 없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크게 내쉬고, 이 단순한 운동이 약물을 복용하는 것보다 나은 치료효과를 보이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단순했다. 호흡을 통해 게임 속 캐릭터를 움직이는 것이다. 빨간 물고기가 심해어들을 피해 물방울들을 얻으려면 숨을 들이마시거나 세게 내뿜어야 한다. 엄마들은 좋아서 기절할 것이다. 애들이 가장 혐오하던 치료기구를 먼저 찾고 게임의 결과를 통해 개선효과를 체크한다. 더 놀라운 것은 호흡기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이 앱이 직접 병원에 연락한다는 것이다. 내가 Alvio를 대단하다고 생각한 점이 여기에 있다. 천식이라는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80%가 넘는 개선효과를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디바이스에 머무르지 않고 전문의와 직접 연결시켜주는 역할까지 한다. 이건 뭐 정말 끝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럿이 믿고 있다고 진리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그랑프리를 수상한 니베아 어린이 자외선차단제 광고, Protection AD 역시 매우 훌륭한 크리에이티브였다. 인쇄광고에 부착된 GPS팔찌를 아이에게 채워주면 부모로부터 멀어질 경우 앱을 통해 경고음을 보내는 시스템이다. 태생이 광고제였던 칸임을 생각하면 다양한 미디어가 융합되어 있으면서도 ‘자외선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한다는 컨셉과 깔끔한 결과물이 어우러진 멋진 크리에이티브다. QR코드, GPS, 잡지…. 절묘하게 융합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지만 갸웃거리는 고갯짓과 찌푸린 눈썹만으론 사람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렇다. 내가 들어본 가장 빠른 영어를 구사하는 심사위원장님과 괴성을 지르며 출품된 거의 모든 제출물을 구현해보는 젊은 CD들 사이에서 성문종합영어는 좌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진지한 내 성질머리도 대화의 걸림돌이 되었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그랑프리는 Alvio였다. CP+B의 CEO 척포터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Big Data만을 추종하다가는 어느 날 모두 같은 샌드위치만 먹게 될 것이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언젠가 이런 카피를 쓴 적이 있다. ‘여럿이 믿고 있다고 진리가 되지는 않는다.’ 구글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Fuck the QR CODE! Fuck the 20% Coupon! Fuck the Heart Pang Pang!
뭔가 돈 될 만한 시장들을 하나 둘씩 다른 나라에 내어 준 미국이 검색엔진이나 소셜네트워크 같은 플랫폼들을 개발하면서 역사상 유래가 없는 세계시민의 우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로를 독점하고 독점된 경로에서 읽히는 패턴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이윤화하고 또 다른 경로를 독점하고…. 빅브라더와 싸우며 시작한 애플이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빅브라더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편승보다는 이탈에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Unwired, Unmobile, Undigital, Unnetworked. 태어날 때 우리가 그러했듯이. 개인다움을 찾고 육신을 움직이고 맹신보다 의심의 미덕을 깨닫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 같다는 전혀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은 매우 동물적인 느낌이 든다. 콩 한쪽만도 못한 하트 몇 개, 결국 우리가 지불하는 돈에 불과한 쿠폰 따위에 근사한 미래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수상을 하지 못한 수많은 출품작으로부터 그런 가능성을 보았다. 디지털이 아닌 세상에서의 모바일을 생각하게 만든 인도의 이동통신회사의 기발한 발상, 영원히 연결이 끊길 염려가 없는 책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어떤 서점의 아이디어. 휴대폰 대신 대화에 집중할 경우 디저트를 제공하는 패밀리레스토랑. 단언컨대, 다음 번엔 이런 시도들 중에서 그랑프리가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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