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Life is Orange> Editorial Dept PHOTOGRAPHY. RAMSTUDIO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정미 차장 (AE, INNOCEAN Worldwide)
장호준 차장 (Art Director, INNOCEAN Worldwide)
정필남 대리 (Copywriter, INNOCEAN Worldwide)
김무진 차장 (Art Director, SK플래닛 도어스)
우동수 차장 (Copywriter, SK플래닛 블랙앤컴퍼니)
진짜 이태백이 말하는 <광고천재 이태백>
에디터는 <스타일>을 보며 황당해하고, 의사는 <하얀거탑>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루하루가 격하게 흘러가는 그들의 실상은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틱하기 때문. 그렇다면 광고인이 보는 <광고 천재 이태백>은 어떨까? 다섯 명의 진짜 ‘이태백’이 솔직담백하게 털어놓는, 광고회사의 리얼 라이프.
" 드라마 제목과 비슷한
이름의 저자가 모티브라던데…. ‘광고천재’라니 좀
오그라들긴 한다. 근데
막상 드라마에서는 그 사람 스토리가 별로 두드러지진 않잖아."
의사는 <하얀거탑>을 보지 않아
장호준(이하 호준) 요즘 KBS에서 한창 <광고천재 이태백> 방영하잖아. 본 사람?
우동수(이하 동수) 광고회사 이야기라길래 궁금해서 한 네 편 봤나?
진짜 애쓰면서 봤어. 광고를 욕되게 하는 걸 떠나서, 재미가 없어서 화가 나더라고.
김무진(이하 무진) 캐릭터가 너무 작위적이야. 착한 사람은 착하기만 하고, 못된 사람은 못되기만 하고.
정필남(이하 필남) 의사는 <하얀거탑>을 안 본다잖아요. 똑같은 거 아닐까요?
이정미(이하 정미) 드라마 제목과 비슷한 이름의 저자가 모티브라던데…. ‘광고천재’라니 좀 오그라들긴 한다. 근데 막상 드라마에서는 그 사람 스토리가 별로 두드러지진 않잖아. 진구랑 박하선이랑 연애하기 바쁘지.
동수 무진이 너 엄청 찔리겠다. 필남이 인턴일 때 꼬여서 결혼까지 한 거 아냐.
무진 그런 면에선 현실을 잘 반영했지. 어떻게 회사에서 일만 하니! (웃음)
호준 그러고보니 너희랑 꽤 비슷한데? 진구가 아트 디렉터고, 박하선이 인턴 카피라이터잖아.
필남 근데 박하선은 재벌이고 난….
동수 나 참, 본부장(조현재)이 인턴을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되나? 옛날 같으면 신 상무님이 필남이 널 좋아했던 거야.
정미 오우, 말도 안 돼!
무진 난 그때 대리니까 괜찮았던 거지. 흐흐.
필남 그치만 우린 일을 열심히 하면서 몰래 연애를 했죠. 얘네는….
정미 갑자기 ‘그분이 오셨어요!’ 하면서 막 버스 창문에 카피를 쓰지 않나. 나 그 장면에서 진짜 오그라드는 줄 알았어.
호준 경쟁작인 <야왕>이 너무 재밌어. 권상우가 완전 크리에이티브해!
동수 1편에 보면, 광고주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어. 검은차 여섯 대가 촤르륵 서더니, 무슨 마왕(?)스러운 의자에 앉히는 거야. 옥외 전광판 보여준다고. 그러고는 아주 혁신적인 카피를 보여준다면서 나온 게 ‘New Revolution’. (웃음)
무진 음, 나는 한채영이 AE라는 게 이해가 안 가. 그렇게 호피 재킷에 가죽바지 입는 육감적인 AE가 어딨어? 정미를 봐봐, 이게 현실적인 AE지.
"월요일날 출근해서 목요일날 겨우 들어가던, 인턴 시절의 흑역사가 떠오르네요. 그래도 <광끼>를 보며 키운 광고인의 꿈을이뤘다는 기쁨하나만으로 정말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아요."
정미 나는 왜 걸고 넘어져!
동수 그래도 AE가 한채영처럼 CF감독의 뒷조사까지 하진 않잖아. ‘옛날 모델 누구랑 사이가 꽤 좋으셨던데 사모님이 알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이런 거. AE들이 보면 기분 나빴을 것 같아.
무진 에이, 그 정도는 극적 과장으로 이해해주자고. 난 더 황당했던게, 광고 모델한테 아트디렉터가 무릎을 꿇어. 스타의 환상을 방해했느니 어쩌니 하면서. 실제라면 내가 광고현장에서 모델한테 무릎을 꿇는거야. 이게 말이 돼? 절대 안 그러잖아.
호준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을 땐 사실 있었는데. (웃음)
필남 전 “광고인에게 식상함은 사형선고와 같습니다”처럼 밑도 끝도 없는 조현재의 대사에 공감이 안 가요. 특히 회의할 때 이런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광고인은 이런 이미지일까요?
동수 그게 바로 시청률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일 거야. 단순히 자막만 내보낸다고 카피라이터가 뭔지, 아트디렉터가 뭔지, AE가 뭔지 잘 알겠냐고. 혹시 <Mad Men>이란 미드 알아?
호준 어, 나 그거 알아! 엄청 재밌잖아.
동수 거기도 이태백처럼 ‘광고천재’가 주인공이잖아. 내가 제일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이, 하루는 후배가 자기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낸 거야. 그러곤 광고주에게 가는 길에 그 아이디어를 버려. 자기 것만 갖고 가서 광고주한테 파는 거지. 이게 더 현실적이지 않아? 광고천재도 이렇게 위기감을 느끼고 이렇게 비겁할 수 있다! 이 정도는 돼야 현직에 있는 사람들도 인정을 하지.
필남 일본 드라마 <사프리>도 광고회사가 배경이잖아요. 사실 검증도 검증이지만, 드라마 안에 나오는 광고가 실제로 ‘히뜩해야’ 재미가 있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사프리>는 작가가 광고회사를 다닌 적이 있거나, 검증에 굉장히 신경 쓴 것 같아요.
역주행 안 해봤음 말을 말어
정미 옛날에 EBS에서 했던 <극한직업>인가? 이노션에서도 촬영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차라리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그려냈으면 어떨까 아쉬움도 들어. 그걸 보면 광고하는 사람들조차 ‘야, 너 저렇게 일해?’ 하면서 놀랄 정도야. 라이브로 그려내면 격한 에피소드가 얼마든지 있을 텐데.
무진 우리 일이 그렇게 박진감 넘치는 일은 아니잖아?
일동 얼마나 넘치는데!
정미 광고주 보고 5분 전에 CD님 모시고 출발해봐. 역주행은 기본이고 총알택시가 따로 없지. 버스노선 활용은 당연하고!
무진 너 그렇게 일해? 우리 SK플래닛은 굉장히 안정적이라…. (웃음)
동수 너의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어. 역주행을 왜 해?
정미 왜 이래. 우리 솔직해지자고. 드라마처럼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님 오시기 5분 전입니다” 같은 건 비현실적이지만, 극한으로 시간 맞추는 건 정말 피말리는 것 같아.
호준 시안 다 만들어서 프린트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프린터가 고장 나고!
필남 맞아, 맞아! 꼭 그러더라.
동수 SK플래닛은 프린터도 아주 고급으로…. (웃음)
정미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까 동수차장님도 그랬지만, 내가 AE라 좀 속상한 게 있어. <광고천재 이태백>도 그렇고, <트리플>의 이정재도 그렇고, 드라마에서 AE는 항상 차갑더라. 다른 사람 막 쪼고, 싫은데 억지로 맡기고. 아무래도 제작팀과 광고주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이니까, 중간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는 걸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필남 나 진짜 궁금했던 거 있어요. 우리한테 스케줄 거짓말할 때 있죠?
정미 어머, 없어. 진짜 없어.
호준 어, 나 며칠 전에도 당한 것 같은데!
정미 우리끼리야 실제 작업에 드는 물리적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진 대충 알잖아. 그치만 광고주가 갑자기 스케줄을 바꾸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워. 각각 제작팀마다 성격이 다르니, 그때그때 맞춰서 노하우를 발휘하는 수밖에.
무진 당했다고 깨닫는 순간이 제일 괴롭지. 왠지 진 것 같고.
정미 제일 좋은 건, 내가 당해준 척하면서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것!
엄청 기뻐하면서 해주거든. 헤헤.
무진 우릴 그런 식으로 돌린 거야? 그런 거야?
호준 하루라도 시간 더 벌려고 광고주한테 얼마나 사정하겠어. 어쩔 수 없이, 막을 수 없어서 스케줄 꼬인 거 알지. 근데 가끔 알면서도 괜히 AE한테 화풀이할 때가 있어. 나중에 되게 미안하지.
정미 제작팀 입장에선 AE가 광고주니까.
동수 거기서 같이 욱하면 선배들 무용담처럼 날라차기 나오는 거고.
무진 난 내 뒤에 AE들이 나란히 모여서 이거 조금만 옮겨주세요, 저거 조금만 키워주세요, 이럴 때 진짜 화나.
" 사실 며칠 전에 광고에 족적을 남긴 분께 물어봤었어. 이태백이었네. 광고천재가 생각하는 광고천재란 무엇인가요? 바로 전활 끊으려 하시더라고. (웃음) 그분 말씀이, 천재가 어디 있느냐고. 본인이 광고를 쭉 해오며 깨달은 바 ‘광고는 천재가 아니라
팀워크가 만드는 것’이라며."
정미 개념 없는 짓이긴 하지. 근데 상황이 진짜 애매할 때가 있어. 광고주 요청으로 반드시 로고를 이만큼 키워야 하는데, 내가 끝까지 확인안 하고 자리를 떴다가는….
무진 아트에게 미완성인 컴퓨터 화면은 치부야, 치부. 벌거벗은 기분! 아마 아트의 모든 욕심은 과정을 들키지 않고 완성해서 정말 잘된 결과만 딱 보여주는 걸 거야.
필남 가만히 듣다보니 카피랑 아트 사이에도 이런 신경전이 있을 것같아요. 우리가 카피를 넘겨야 아트가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
호준 CD님 스타일에 따라 체감이 다를걸?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카피 베이스 CD님이면 어쩔 수 없이 카피 쓸 시간을 더 많이 주더라. 반대로 아트 베이스 CD님이면, 회의 끝나자마자 레이아웃이라도 잡아 놓게 당장 더미라도 달라고 재촉하시지.
동수 개인적으론 PD출신 CD님이 제일 좋더라. 카피도 아트도 공평하게 시간을 주니까. 단, 광고대행사에 PD가 잘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진짜 광고천재 본 적 있어?
호준 근데 실제로 ‘광고천재’를 본 적 있어? 광고에 천재가 가능할까.
동수 적어도 여러분은 확실히 본 적이 있어요.
일동 어우, 넌 아니야!
호준 사실 며칠 전에 광고에 족적을 남긴 분께 물어봤었어. 광고천재가생각하는 광고천재란 무엇인가요? 바로 전활 끊으려 하시더라고. (웃음) 그분 말씀이, 천재가 어디 있느냐고. 본인이 광고를 쭉 해오며 깨달은 바 ‘광고는 천재가 아니라 팀워크가 만드는 것’이라며.
무진 난 천재는 아니더라도 재능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요즘은 재능 없는 애들이 너무 많아. 만날 얘기해. 넌 광고하지 말라고. 하도 하니까 이젠 애들이 농담인 줄 알더라.
정미 프레젠테이션을 굉장히 잘하기로 소문난,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있어. 하루는 회사 복도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며 뭔가를 중얼거리시는 거야. 알고봤더니 머릿속으로 계속 프레젠테이션 리허설을 하고 계셨던 거지. 프레젠테이션 몇 년 했다고 ‘애드리브 치면 되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게 모르게 노력파들이 굉장히 많아. 스크립트 백 번씩 읽으면서 조금씩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동수 하긴. 어린 애들 중에도 보면, 열심히 하는 애는 또 엄청 열심히 해. 우리가 까는 아이디어 중에도 정말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지 않아? 얼마나 공들여 생각한 것인지가. 언젠가 나를 치고 올라올지 모르는 후배지만, 기특한 건 어쩔 수 없더라.
" 그러고보니 여기 앉은 사람 중 대기업 공채 출신은 하나도 없잖아? 소규모 독립대행사에서 대리 달고 만났으니까…. 이야, 남 얘기가 아니었네. 우리가 바로 사실 며칠 전에 광고에 족적을 남긴 분께 물어봤었어. 이태백이었네."
호준 사실 <광고천재 이태백>을 엄청 디스하긴 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어. 아이데이션하는 장면이었는데. 이태백이 속한 작은 대행사랑 다른 대기업 대행사가 아이데이션하는 모습을 교차로 편집해줬어. 노숙자 캠페인을 만들던 이태백이 직접 노숙을 해가며 갖은 수모를 당하고, 노숙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듣는 반면, 대기업 사람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그래프랑 차트만 보고 있더라. 그걸 보면서 ‘아, 이태백처럼 저래야 되는데…’ 하고 반성했었어.
필남 호준 차장님 말이 맞아요. 우리가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들어가면 보통 2주 정도 시간을 받잖아요.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총동원해서 패키징까지 끝낸 다음 광고주에게 ‘이게 최고의 길입니다’ 하고 제시해야 하죠. 근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과연 내가 얼마나 그 제품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했는지 뒤돌아보게 되네요.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데.
동수 나는 라면광고 찍는 장면에 진짜 공감 가더라. 맨 처음 신혼부부가 먹는 아이디어로 계약을 땄는데, 촬영장에 가니까 여자모델 혼자 먹는 걸로 콘티가 바뀌어 있고, 광고주가 와서 뭐라고 하니까 갑자기 커리어우먼이 먹는 걸로 바뀌고…. 사실 광고하다 보면 많이들 겪어봤을 거야.
필남 근데 <광고천재 이태백> 방영 이후에 회사에서 이런 유행어 생기지 않았어요? 한창 회의하다가 누가 ‘어, 나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 떠올랐어’ 이러면 다들 “광고천재 나왔네” 하는 거.
정미 우리 팀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광고천재 드립!
호준 그러고보니 여기 앉은 사람 중 대기업 공채 출신은 하나도 없잖 아? 소규모 독립대행사에서 대리 달고 만났으니까…. 이야, 남 얘기가 아니었네. 우리가 바로 이태백이었네. (웃음)
정미 우리가 바로 광고천재네!
동수 난 라임천재!
호준 난 퇴근천재.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하게 퇴근하는.
무진 그럼 난….
동수 넌 연애천재!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