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랑이 불가능에 대한 사랑이듯, 청춘을 향한 욕망도 그러하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기꺼이 원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으니, 젊음을 탐하는 욕구는 유행보다 본능에 가깝다. 본능이 욕망이 될 때, 그 본능을 드러낼 수 있는 스타일은 유행이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스타일이다. 우리는 어떤 스타일로 청춘을 탐할 수 있을까?
청춘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청춘은 봄꽃처럼 문득 피었다가 급히 진다. 개화의기간은 너무 짧은데 성장의 열병을 앓느라 청춘의 당사자는 그 순간을 누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청춘의 독점적인 아름다움은 항상 과거 시제로 말하게 된다.‘나도 그땐 괜찮았는데’라는 문장을 말하는 이들은 더 이상 청춘이 아님이 확실하다. 즉 청바지에 티셔츠만으로도 세상의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었음은 정장이 익숙해진 나이가 되어야 알기 마련이다. 내년 봄을 기약하며 목련은 겨울을 견디지만, 겨울을 보낼수록 우리의 청춘은 점점 더 아득히 멀어질 뿐이다. 그러니 청춘에 대한 탐닉은 멈출 수 없는 욕망이자 치유되지 않는 향수이다. 그래서 놓쳐버린 그때를 지금 다시 체험하고 싶은 마음은 쉽게 이해된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대학에서 140여 명의 1학년 여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다. 봄 꽃이 동시에 피어나듯이 아침부터 강의실은 재잘거림과 웃음으로 분주하다. 끊임없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에너지가 청춘을 증명한다. 성장통을 갓 치러낸 그들이 내뿜는 뜨거운 에너지에 물드는 내 몸은 기쁘나, 더 이상 나 스스로는 그런 에너지를 생성하지 못하리란 현실은 슬프다. 이럴 때, 내 몸은 더욱 간절히 청춘을 갈망한다. 청춘을 다시 불러오는 가장 보편적이며 쉬운 방법은 그들의 패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다. 32살이 24살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24살처럼 보일 수는 있다.
그러려면 캐주얼 룩과 클래식 룩을 이해해야 한다. 클래식 룩은 정장과 구두, 캐주얼은 청바지와 스니커즈로 대표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클래식과 캐주얼 사이의 완고했던 벽이 무너지고 있다. 이유인즉슨 이러하다. 김연아부터 소녀시대에 이르기까지 요즘 10대는 예전의10대가 아니다. 어리다고 놀렸다가는 큰일난다. 나이는 어릴지라도 생각은 미숙하지 않다.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세상과 부딪히며 제 꿈을 개척한 자의 당당함이 배어 있다. 무대 뒤편의 참혹한 훈련이 있겠지만, 무대 위에서 그들은 꽃처럼 피어 그 당당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매혹한다. 그들이 입고 나온 옷, 들고 나온 가방, 신고 있는 구두, 착용한 액세서리는 방송과 잡지를 통해 퍼져나가며‘~ 스타일’이라 불리며 유행을 선도한다. 걸그룹의 컬러스키니 진과 핫팬츠, 파스텔 톤의 샤방한 걸리시 룩이 열병처럼 휩쓸었다. 그들의 스타일을 추종하는 연령대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실, 한국의 20대는 10대, 30대는 20대, 40대는 30대 등등으로 지나간 시대를 악착같이 그리워하며 동경하는데, 10대는 더 이상 어려 보이고 싶지 않기에 어설프게라도 20대의 스타일을 추종한다. 이렇듯 기준 집단이 서로 맞물리면서 결국 20대스타일을 참조한 10대 아이돌이 10대부터 40대까지 한국의 패션 스타일을 주도하게 되었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성복의 최근 스타일 중 눈에 띄는 부분은 확연히 짧아진 재킷 길이다. 교복을 극단적으로 줄여 입었던 남고생들의 스타일은 닐 바렛의 엉덩이를 덮지 않는 짧은 재킷과 디올 옴므의 슬림 룩과 분명 맞닿아 있는데, 기존 정장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젊어진 분위기다. 이는 캐주얼해진 클래식룩이라 할 수 있다. 클래식은 안정감은 있으나 답답하다.
청춘은 답답함을 거부하며 자유를 갈망하는데, 격식을 갖추면서도 자유로움을 풍기고자 하는 30~40대도 은갈치 정장을 벗어 던지면서 클래식 슈트의 캐주얼 열풍에 동참했다. 이렇듯 청춘은 남들과 다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와 비슷한 또 하나의 사례. 패션 피플이라면 서너벌쯤 갖고 있을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소재와 패턴은 차이가 날지언정 디자인은 단색 바탕에 가로 줄무늬로 똑같다. 남들과 다르고 싶은 젊음은 자딕 앤 볼테르의 록 스피릿이 가득한 컬러풀한 프린트나 아방가르드한 꼼데가르송의 하트 아이콘이 새겨진 디자인을 선호한다. 세상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패션 빅 하우스, 예를 들어 라코스테, 발렌시아가, 디올, 세린느의 수석 디자이너 연령대는 급격히 낮아졌다. 특히, 26살의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책임진 발맹의 이번 시즌은 기존 발맹 색깔에 그만의 젊고 밝은 기운을 불어넣으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렇듯 주요 브랜드 리노베이션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더욱더 젊어지자’이다. 여기에는 산업적인 이유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에 걸쳐 급속도로 성장 중인 H&M과ZARA등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거의 매달 새로운 스타 일을 출시하며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1년에 두 번 컬렉션을 발표하던 기존 브랜드들은 깜짝 놀랐으나,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바뀌는 최신 유행을 따라잡을 수 있기에 환호했다. 오래 입을 필요가 없으니 디자인이 가장 중요했고, 품질을 낮추어 충동구매를 자극하는 수준의 가격대를 유지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패션 산업은 크게 패스트패션 브랜드와 고급 명품 브랜드로, 혹은 아이돌 룩과 청담동 룩으로 양분되었다. 딸에게 자라를 입히고 싶지 않은 엄마와 조카처럼 에이치앤앰을 입고 싶어 하는 이모들의 욕구를 눈치 챈 고급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상대적으로 어린 연령대를 타깃으로 다소 저렴한 가격대의 세컨드 브랜드를 론칭하며 나이대에 따른 패션 스타일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제 30대는 30대답게, 40대는 40대답게 입어야 한다는 말은 폭력이다. 물리적 나이가 패션 스타일까지 정하던 시대는 갔다. 나이보다 세계관이 스타일에 더욱 큰 역할을 하게 되었고, 40대도 20대와 같은 패션 스타일을 추구함으로써 청춘으로 살아간다. 이런 변화로 인해 10대후반에서 20대까지를 지칭하던 청춘의 폭은 확실히 넓어졌다. 너무 빨리 늙어가기를 요구하던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이런 변화는 대단히 긍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