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이오진 국장
세상에 자신을 다 내어 주지 말라, 세상의 기준에 당신을 맞추지 말고 당신이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좀 도발적입니까? 어쩌다 제가 교육이라는 것을 하게 될 때에, 빼놓지않고 하는 말들입니다. 세상이 어느 쪽으로 굴러 가는지, 좋은 말로 해서, 트렌드를 먼저 읽고 그에 맞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 세상을 따르지 말고 자기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시대 착오적 생각입니까? 하지만 저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지키며 사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계속 고민입니다만, 그래도 앞으로 바뀌지 않을 부분은, 부드러운 타협보다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법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 입니다. 그래야 결과가 좋지 않을 때에 깨끗이 승복할 수 있고 오래도록 잘 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다! 중요한건 오래도록 꾸준히 잘 하는 것입니다. 광고를 만들면서 보람을 느끼십니까? 선생님이나 의사 같은 직업에는 사람을 가르치고 키우고 생명을 구한다는 원초적인 보람이 있습니다. 광고는 우리에게 어떤 보람을 줄까요? 물론, 보람이 무엇이든 가치가 있든 없든, 그 일을 하는 것이 재미가 있고 좋으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엔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를 물으며 답을 얻어야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미와 가치를 따지는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할 가능성이 적지만, 저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부류의 사람인지라, 그 물음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광고인의 보람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답을 찾으셨는지요? 평소엔 잊고 살다가도 사이클이 처지고 일이 잘 안 풀릴 땐, 어김없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라와 저를 헤집어 놓고 가는 아직도 풀지 못한 제 광고 인생의 화두입니다. 광고의 첫째가는 역할은 광고주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니 만큼 ’’팔리는 광고’’를 만드는 것을 보람으로 삼아봅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은 작가의 보람이 뭐냐는 물음에 베스트셀러를 쓰는 거라는 답과도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런 역할은 나를 유능한 광고인으로 만들어 줄지언정 제 마음이 꽉 차도록 제 ’’존재의 이유’’를 제공해 주는 건 아니어서 정신이 여전히 헛헛합니다. 이러던 차에 저의 눈이 ’’브랜드’’에 가 닿았습니다. 그래, 앞으론 브랜드 싸움이다. 파워 브랜드를 키워낼 수 있다면 보람이겠다... 브랜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광고주의 물건을 팔아 주는 일과 그리 다른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금전등록기 소리만 요란하게 하는 것보다는 덜 허허로울 것 같다... 브랜드의 가치를 올리고 파워 브랜드를 만드는 일. 이런 긴 생각이 있어서, 이 달에는 ’’한국타이어’’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타이어가 진행중인 ‘Enjoy Driving’캠페인 신규 TV-CM ‘Half Pipe’ 편이 그것.
감성까지 적신다. Enjoy Driving
스케이트 보딩(Boarding)의 Half Pipe가 웅장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Half Pipe위를 탄력 있게 오르내리는 3000cc Convertible에 온몸을 맡긴 채 십자가 자세로 서있는, 극히 위태로운 상황. 하지만 그의 모습과 영상으로 느껴지는 것은 편안함과 운전을 만끽하는 즐거움입니다. 조금은 과장된 듯한 상황과 느낌이지만 감성적인 즐거움이 충분히 전달되는 듯합니다. Enjoy Driving, 한국타이어. 최근 소비자들의 기존 틀이나 상식을 깨는 시도들이 광고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타이어 광고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고 있어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타이어 광고하면 흔히 생각되는 속도감 있는 질주 장면이나 섹시한 여성의 성적인 어필 등이 완전 배제되어 그 신선함이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수단으로서의 타이어가 아닌, 운전자에게 감성적인 즐거움까지 전달하는 브랜드의 가치를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보여졌던 질주하는 자동차와 섹시한 여성모델이 아닌, 타이어 브랜드의 리더로서 줄 수 있는 자신감, 여유, 새로움.. 이를 통해 젊고 역동적인 브랜드 한국타이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젊고 액티브한 브랜드로 거듭나고자 대대적인 CI Renewal 작업단행을 단행하고, "Enjoy Driving"이라는 새로운 광고 Campaign을 전개하는 한국타이어. 잘 만든 광고를 보면 ’’어디 광고야’’, ’’누가 만들었어’’를 묻게 되는 우리의 일, 광고야 말로 브랜드 Up 이라는 생각, 그런 일을 하면서 잘 된 브랜드 하나를 키워낼 수 있다면 보람의 반은 찾은 거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브랜드를 키우는 일이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닌 만큼 우선은 오랜 동안 잘리지 않고 그 브랜드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이 브랜드는 이 사람이라야 해’’가 통할 만큼의 필연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얘기가 이렇게 풀리고 보면 보람도 결국은 유능해야 찾을 수 있는 게 됩니다. 보람이라는 것은 Survival이 해결된 후에야 찾게 되는 정신적인 가치이고 보면, 유능한 광고인이 되는 것이 보람을 느끼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겠습니다. 또 하나 이 광고를 보면서 느끼는 것. 그것은 Different & Better. 공모전에 임하는 대학생과 실제 광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들의 자세는 어느 점이 달라야 할까요? 저는 Different & Better 라는 말로 제 생각을 대신 전하겠습니다. 대학생들에게 크리에이티브란 발상의 다름, 상상력의 풍부함이 전부여도 무방합니다. 그들은 브랜드를 책임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일선의 크리에이터들에게는 늘 브랜드에 대한 책임이 따라 다닙니다. 매출, 브랜드 선호도, 브랜드 자산... 모든 크리에이티브 작업은 브랜드와의 관련 하에 진행됩니다. 그러니 Different 하다는 것은 필요조건이긴 하나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필요충분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Different & Better! 이 광고는 Better라는 기준에 미달이라고 본 겁니다. 혹시 우리나라의 튀는 광고 중엔 다르기는 하지만 Better Output을 내는데 는 실패한 것들이 꽤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느끼는 마지막 한 가지, Relevance 잘 찾기 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작업은 사실은 둘, 혹은 그 이상 사이에 Relevance 찾아주기이며, 짝 짓기에 다름 아니니까요. 둘 사이의 절묘한 ’’관계’’를 찾아내는 눈... 둘 사이의 새로운 관련성을 찾아내는 눈이야말로 Creative로의 開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981년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Absolut Vodka캠페인, 미국 시장에서 싸구려 술로 통하던 보드카의 이미지를 일신해서 오늘날의 Absolut Vodka로 만든 일등 공신이 바로 광고 캠페인들. 클라이언트의 파워 브랜드를 만드는 일 못지 않게 우리 스스로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일에도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파워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쉽습니다.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것입니다. 광고를 잘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