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의 시대에 감히 딴지를 걸겠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일종의 ‘광고 회귀 본능’이랄까…. 기본기가 탄탄한 광고들을 만날 때마다 막연히 새로운 것, 눈에 번쩍 띄는 것들을 좆아 사상누각 같은 광고를 만들던 제 어린 시절이 자꾸 오버랩 돼서 말이지요.
오늘 소개해 드릴 아트와 카피가 행복하게 별거를 선언한 두 편의 캠페인을 보시면, 아마 이런 반응을 보이실지도 모르겠군요. “뭐야? 너무 심플한 거 아냐?”, “저 정도쯤은 나도 얼마든지 만들겠다”.
하지만 광고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곱씹어볼수록 콘셉트를 표현하는 데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가장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스위스생명(Swiss Life)이라는 생명보험사의 광고는 흰 종이 위에 검은 헤드라인만으로 무대 위에 서는 용기를 제게 보여 줬습니다. ‘21세기에 누가 저런 식으로 광고를 만든 거야?’라는 마음으로 다가선 순간, 정말 코끝이 짜릿해지는 전율을 느꼈어요. 네이티브도 아닌 제가 영어 카피 몇 줄에 이토록 감탄하는 이유는 ‘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 없고, 사람들은 모두 변한다’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진리를, 인사이트를 가장 뾰족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버리고 생략하는 용기입니다.
‘그녀는 나 의 전부였 는데, (이젠) 뭔가 잘 못된 걸 느낀다’든지, ‘당신은 내가 사랑하 는 유일한 여자였는데 (이젠) 남자를 사랑하게 됐다’는 것처럼 정말 알 수 없는 방식으 로 풀릴 수 도 있 는 게 인생이니 생명보험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위트 있고 심플하게 보여 줍니다.
운전중에 문자 메시지를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는 광고는 무수히 많지 만 인쇄광고라는 틀에 옮겨놓은 작품 중에는 단연 최고라고 꼽고싶은 광고가 바로 우측의 캠페인입니다.
말이 필요 없는, 그야말로 운전자의 POV(Point of View) 관점에서 잠깐 휴대폰에 눈길을 주는 사이 펼쳐질 끔찍한 결과가 소실점에 보이시죠 ?
참 영리하고 위트있는, 그러면서도 오래 여운을 남기는 비주얼 광고라 생각합니다 . 이 두 캠페인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칸 수상작 전시회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 었습 니다 . 칸 실버 와 골드 라이언을 하나씩 붙이고 말이지요.
젊은 날은 더하고 보태고 덧칠하는 일에 집중했다면, 이젠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있어 뭘 덜어내야 하는지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나…. 작년 여름 칸에서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전문가란 자신의 분야에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질러 본 사람이다.”
올해는 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길로 겁 없이 들어선 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제가 저지른 수많은 시행착오들, 제 손을 거쳐간 수많은 허점 투성이 광고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득하나 또 어쩌겠어요. 10년간 쌓아온 실수의 힘이 이제 서서히 발현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번 믿어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