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ㅣ제작본부장 전무 namoo.choi@cheil.com
최근 우리 업계의 화두(話頭) 한 가지는 '미디어가 크리에이티브'라는 겁니다. 정해진 미디어 안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어떻게 구사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미디어로 활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할까로 생각의 출발점이 달라지는 겁니다.
때로는 미디어로 치자 않았던 것들이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채널이 되기도 하는데, 크리에이티브를 담을 그릇이 다르니 그 안에 담는 콘텐츠는 더 큰 폭으로 달라집니다.
고미숙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는 책을 보셨는지요? 제가 지난 범에 '탐구'와 '독서일기'를 운운할 때부터 소개를 마음에 둔 책이었는데요, 그녀와 동료 지식인들의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새로운 장을 만들고 거기서 지식을 생산하고 전달하며 사회와 소통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업으로 치자면 콘텐츠를 커뮤니케이션하는 새로운 채널을 열어 젖힌 것이죠.
고전 평론가를 자칭하는 고미숙이 주축이 된 지식인 공동체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그녀 외에 이진경과 공병권 등 인문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요, 그들의 전공이 주로 인문학인 데는 사정이 있어 보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인문학 계통을 공부한 사람이 대학에 자리 잡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요? 얼마 전에 만난 소장 역사학자 한 사람은 1년에 3000만 원만 주면 참으로 행복하게 공부하고 가르치겠다고 토로하더군요.
사람들이 거두는 성과의 대부분은 어려움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들인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만들게 된 것도 실은, 대학엔 그들이 자리가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그 벽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습니다. '대학이 지식을 생산하고 소통하는 채널의 중심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꼭 대학에서만 그런 활동이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며, 대학 안에 자리가 없다면 바깥에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실험에 돌입한 겁니다.
같이 모여 공부하고 연구하며 소통할 뿐 아니라, 밥도, 일상도 나누며 그것으로써 밥 벌이도 하는 장(場)이자 채널... 그래서 탄생한 것이 '연구공간 수유+너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지식의 공유를 지식인 족속들로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인 대상으로 세미나와 클래스를 열어 사회와 소통했는데, 요즘 말로 '오픈 소스'를 일찍부터 시도한 겁니다.
저는 이들의 활동에서 '미디어가 크리에이트브'라는 우리 업계의 화두가 사회 이곳 저곳에서 대두되는 기운을 느꼈습니다. 기존의 장(場)과 무대, 채널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채널을 모색하는 도저한 움직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책제목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도 의미심장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실험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으나 열리지 않는 문을 마주하고, 길을 찾아 발을 내딛어 보니 뜻밖에도 활짝 길이 열렸고 아울러 기기엔 자유도 있더라는 메시지가 읽힙니다.
참고로 고미숙 그녀는 이 책 외에도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성의 유쾌한 시공간> <나비와 전사>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비평기계>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이 영화를 보라> 등을 썼습니다.저는 이 중에 이달에 소개해 드린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와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를 읽었는데, 괜찮았습니다.
그녀의 글은 사람으로 치면 좀 수다스러워서 자주 마주하기는 부담스럽지만, 생각은 올바른 곳을 향하고 있고 다행히 텍스트는 소리가 나지 않으니 책으로 대하기는 유쾌합니다.
우리 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초나 우리 업의 향방에 대한 이해를 광고 책이나 마케팅 책에서만 얻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광고 책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을 소개드릴 생각인데, 제 취향대로 고른 책이 여러분께 도움이 될지 궁금하네요.
그나저나 올해는 기온이 높아서 ?꽃이 빨리 핀다고 합니다. 드라마는 놓칠지 언정 벚꽃의 개화(開化)는 남도에 가서 감상하고 싶은데 잘 될까요....
봄입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