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하게 웃는 발리 여인, 푸른 바다에 뛰어드는 벌거숭이 아이들, 끝없이 펼쳐지는 원시림, 용암을 내뿜는 활화산, 거대한 불교 사원 보로부두르 등 전통 그대로의 모습 속에 갇혀 있던 인도네시아가 미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와도 달리지 않던 인도네시아인들이 신용카드 광고 속에서 달린다. 여자 친구의 생일 축하를 위해 트위터와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동통신 광고도 눈길을 끈다. 인도네시아가 놀라운 속도로 급변하고 있다. 글 신성철(<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dailyindonesia.co.kr)
인도네시아는 1만7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로 국가 면적 크기로는 세계 15위다. 인구는 2억4000만 명으로 세계 4위이고, 전체 인구에서 어린이와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생산과 소비 활동이 모두 왕성하다. 전체 인구의 86%가 이슬람교도로서 세계 최대 이슬람 인구 보유국이지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비교적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된 국가라서 전 세계에서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2011년 인도네시아 경제성장률은 6.5%, 국내총생산(GDP)은 83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3180달러였다. 올해도 경제는 6%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산층 인구는 4000만여 명으로 추산되며, 계속 증가 추세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내수 소비 비중이 60%가량으로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발 경제 위기의 타격이 다른 국가보다는 적을 것으로 낙관하는 의견이 우세하다.
동남아 5개국 중 광고시장 성장 속도 1위
자카르타 중심가에 세워진 입간판 광고를 보면, 인도네시아가 대중 소비 시대를 맞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세계은행(WB)은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제조업체들이 수출시장에서 내수시장 공략으로 마케팅 전략을 변경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해외업체들이 적극
적으로 진출하면서 제품의 품질도 고급화되고 있다. 유니레버, P&G, 네슬레 같은 소비재 다국적 기업들은 해외 유명축구 선수나 셀러브리티를 등장시켜 다양한 물건을 소비하라고 부추긴다. 공항에서 자카르타 시내로 들어오는 고속도로에는 해외 브랜드의 휴대폰과 TV 등 전자제품과 자동차 그리고 금융 상품광고가 즐비하다.
시장조사기관 닐슨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5개국의 2011년 3분기 광고시장을 조사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가 규모와 성장 속도 면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동 기간 인도 네시아 광고지출은 21억1000만 달러로 전체의 41.9%를 차지했으며, 광고시장 성장 속도는 24%로 가장 빨랐다. 광고를 가장 많이 한 업종은 이동통신이었고, 이어 모발 관리 제품, 정부와 정당 순이었다. 매체별로는 텔레비전 광고 지출액(14억 달러)이 가장 컸고, 이어 신문과 잡지 순이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사용자 세계 3위, 온라인 광고 잠재력 높이 평가
인도네시아 페이스북 사용자는 2011년 말 기준 약 4000만 명으로 인구의 20%이며, 미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다. 트위터 이용자는 620만 명으로 인구의 2.6%로 세계 3위다.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2011년 말 현재 인구수보다 많은 2억4610만 명(중복가입자 포함)이고, 2013년에는 인도네시아가 중국, 인도 및 미국에 이어 세계 4위 스마트폰 사용자 보유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온라인 광고의 성장세가 이웃 국가에 비해 뒤처져 있지만 향후 잠재력은 더욱 클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링크드인(LinkedIn)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광고지출은 연간 50억 달러 규모지만 대부분이 TV광고에 몰리고, 광고예산의 1% 정도만 온라인 광고에 할당된다. 다른 국가들이 온라인 광고에 전체 광고예산의 10% 정도를 지출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세계화에 따라 인도네시아 광고의 언어가 자국어가 아닌 영어로 바뀌고 있다. 담배광고는 금연 운동의 영향으로 직접적인 광고보다는 이미지 광고가 대세인 반면, 의약품과 식품 광고는 상품을 설명하는 직접적인 광고가 많다. 우리나라처럼 계절이 바뀌지 않는 대신 독립기념일에는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내용, 이슬람 교리에 따라 1개월간 단식하는 라마단에는 이슬람 교리를 강조하는 내용,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둘 피트리에는 귀성길 안전과 가족애를 주제로 하는 내용 등으로 광고가 바뀐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공익광고가 많지 않다. 대신 정당과 정치인의 홍보성 광고가 전체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4년에 총선과 대선을 치를 예정이라 향후 정치 광고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1. 인도네시아 2위 이동통신 회사 인도삿(Indosat)은 선불요금카드 광고로 저렴 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도로변 주택의 외벽과 지붕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서 특정 상품을 광고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이동통신 및 타이어와 윤활유 같은 자동차 관련 품목이 이런 방식의 광고를 선호한다.
2. 버스 정류장에 설치한 섬유 유연제 몰토(Molto) 광고로, 향기가 진하고 오래간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는 고온 다습한 날씨 탓에 빨래를 해도 불쾌한 냄새가 가시지 않을 때가 많아서 섬유 유연제의 인기가 높다.
3. 예금 계좌를 개설하면 자동차, 휴대폰, 아이패드 등의 경품을 준다는 내용의 민영 소다라 은행의 광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직도 예금 통장이 없는 사람이 많은데, 개인 소득 3천 달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산업이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영업을 확대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이 부
분의 광고가 급증했다.
4. 모바일 뱅킹을 홍보하는 민영 센트랄아시아 은행(BCA)의 광고로, 온라인 지불 방식이 편리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문구가 쓰여 있다. 유선 전화와 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인도네시아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뱅킹 이용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5.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의 영부인 아니 유도요노 여사가 도심에 개방 녹지를 조성해 빗물을 모으고 수원을 확보하자고 촉구하는 내용의 광고다. 아니 여사는 지지율은 낮지만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고, 자카르타는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과 도시화로 인해 수원 고갈과 지반 침하 등
의 상태가 심각한 상황이다.
6. 저가 스마트폰 넥시안(Nexian)의 광고로, 인기 있는 애플리캐이션 스토어를 즐기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0달러 전후의 저가 스마트폰의 인기가 높으며, 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이용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구입하므로 광고도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7.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달려온다. 그는 누군가 내민 신용카드로 커피를 사고, ATM에서 현금을 찾고, 버스를 타고,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자동차를 구입한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도 함께 뛴다. 마지막 카피는 ‘만디리는 원하는 바에 모두 응답한다’이다.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인은 성품이
느긋해 비가 와도 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서둘러서 무엇인가를 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광고에서는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뛴다.
8. 남학생 마르완이 여자친구 생일 파티에 늦었다. 화가 난 여자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자, SNS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Maafin Marwan(마르완을 용서해)’라고 전하고 화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방영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저가 스마트폰 보급과 이동통신 네트워크의 확대로 SNS가 사회적 소통의 수단이 되었다.
9. 아잔(Azan :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 아랍 음악, 손님을 환영하는 북춤, 인도네시아에서 축제 때 먹는 원뿔 모양의 볶음밥과 라면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르바란 풍경. 라마단은 이슬람교도가 1개월간 낮 시간에 단식하는 기간이며, 해가 지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 기간에는 이슬람 신앙을 강조하는 내용의 광고와 방송이 증가한다. 라마단이 끝나면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인 르바란이 시작된다.
10. 꼬마가 집에서 키우는 닭들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에 간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닭들이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가 끓여준 스답(Sedaap) 닭고기 맛 라면을 맛있게 먹던 꼬마는 라면에서 진짜 닭고기 맛이 느껴지는 순간 키우던 닭들이 죽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할머니는 닭들을 한곳에 몰아놓았다며 다 먹고 가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라면은 진짜 닭고기 맛이 난다고 말한다. 스답은 인도네시아 메이저 라면 브랜드 가운데 하나이고, 닭고기는 인도네시아인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교복을 입은 단정한 초등학생은 인도네시아인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