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처음 열린’ 칸 라이언즈
해마다 6월 셋째주면 프랑스의 휴양도시 칸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광고인들과 광고주들로 북적댄다. 원래 일년 내내 여러 행사를 치르며 잠시도 조용할 틈 없는 도시지만, 칸 라이언즈(칸 국제광고제)는 칸의 최대 행사인 칸 국제 영화제 다음 가는 큰 행사이다.
도대체 왜 칸인가? 프랑스 수도인 파리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이상 가야 하는 지중해의 작은 도시가 어째서 영화제와 광고제, 그리고 그 외 수많은 국제행사로 일년 내내 호황을 누리는 걸까? 지금이야 할리우드의 공세로 주춤하긴 해도 처음으로 ‘활동사진’. 즉 영화를 만들어낸 뤼미에르 형제는 물론, 누벨바그(Nouvelle Vague) 등 영화에 있어 프랑스는 과거 분명 선진국이었다. 칸 영화제가 국제영화제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여러 이유 중 하나도 아마 60여 년 넘게 프랑스가 영화계에서 차지하던 위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올해부터 공식명칭을 ‘칸 라이언즈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이하 칸 라이언즈)’라고 다소 장황하게 변경한 이 세계 최고, 최대의 국제광고제 역시 프랑스가 갖고 있는, 바로 그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래 영화용 광고필름들의 경연장이었던 칸 라이언즈는 사실 칸이라는 이름을 갖고 시작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칸에서 시작하지도 않았다. 영화광고 관련자들의 모임이었던 SAWA가 칸 영화제에서 영감을 얻어 조직한 최초의 ‘국제 광고제’ 제 1회는 1954년 베니스에서 열렸다. 제2회 역시 칸이 아닌 모나코의 수도 몬테카를로에서 열렸으며, 제3회가 되어서야 비로소 칸에서 열렸다. 이후 칸과 베니스에서 교대로 열리던 이 ‘국제광고제’는 1984년부터 칸을 단독 공식 개최지로 정했다.
광고에서 대중문화까지 변화를 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칸 라이언즈는 클리오광고제 · 뉴욕 페스티벌과 더불어 세계 3대 광고제라고 흔히 불렸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칸은 명실상부한 최고 · 최대의 국제 광고제로 부상했다. 칸 라이언즈가 월등한 것은 출품작 수나 참관단 수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칸 라이언즈는 업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광고는 브랜드만의 것도 소비자들만의 것도 아니다. 광고를 제작하는 사람들만의 더더욱 아니다. 광고는 그 모두가 향유하는 일종의 대중예술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작자와 공급자 · 소비자를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가 발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전까지 광고주의 메시지 전달이 광고의 핵심이었다면, 언제부턴가 광고는 기업과 소비자들 사이의 ‘상호소통’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 상호소통, 다시 말해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가 업계의 화두로 대두되면서 광고매체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칸 라이언즈가 일찍이 간파했던 것도 바로 이런 업계의 변화였다.
초창기 영화광고만으로 이뤄졌던 경쟁 부문이 텔레비전에서 포스터 · 인쇄물로 세분화되면서 지금은 무려 13가지 부문에서 경쟁한다. 단순히 광고계의 양적인 팽창을 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칸 라이언즈는 업계의 변화를 그저 수용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도한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칸 라이언즈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이라는 명칭 역시 칸 라이언즈가 업계의 변화를 주도하고 촉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사실 업게에서는 ‘누가 잘 하나’뿐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에도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칸 라이언즈는 그런 업계의 바람을 잘 알고 있다. 올해의 경우 칸 라이언즈에서는 일주일 동안 57개의 세미나와 워크숍이 진행됐다. 여타 국제광고제들이 전시와 상영 및 시상식을 위주로 진행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칸에서는 이런 세미나와 워크숍이 시상식 못지않게 중요시되며 참관단들의 참여 열기 역시 대단하다. 인기 있는 사치&사치(Satchi&Satchi)의 행사 때는 이미 두 시간 전부터 행사장 2층부터 5층까지 수 천 명의 참관단들이 구불구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을 정도다. 대게 앞서가는 광고회사 네트워크나 매체에서 진행하는 이런 세션들은 회사의 자존심이 걸린 행사이기도 하다. 자기 회사가 현재의 트렌드를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어떻게 미래의 트렌드를 제시할 것인지 발표하는 일종의 경연장이기 때문이다.
칸 라이언즈의 세션들은 단순히 캠페인 소개나 소비자 트렌드를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브랜디드 콘텐츠(Branded Contents)와 같은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제시하고 주도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칸 라이언즈는 광고가 이제 대중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세계 광고계를 제대로 즐기는 곳, ‘72번가’
칸 라이언즈의 일주일은 힘겹고도 즐겁다. 주 행사장인 팔레데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은 아침 8시 30분에 개장하며, 이때부터 전시와 영상이 시작된다. 9시부터 시작되는 세미나 및 워크숍은 하루 종일 이어져 저녁 6시 정도는 되어야 끝난다. 일주일 중 나흘은 시상식이 있다. 오픈 갈라(open gala)와 클로징 갈라(closing gala)라 불리는 공식 파티가 두 번 있다. 업체들이 각자 진행하는 비공식적 파티도 날마다 이어져 하루도 쉴 틈이 없다.
하지만 진짜 알짜배기는 그 유명한 ‘72번가’이다. 행사장에서 해변도로를 따라 동쪽에 위치한 바(Bar) ‘72번가’는 세계 유명 광고인들이 서로 섞어 마시고 떠드는 곳이다. 칸 곳곳에 그럴듯한 식당과 술집도 많이 있지만 유독 광고인들은 이곳을 즐겨 찾는다. 많은 유명 크리에이터들이 ‘칸 라이언즈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 바로 이 72번가에서 보낸 시간’이라고 회상하곤 한다.
실제로 밥 그린버그 · 데이비드 드로가와 같은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터들이 어울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크리에이티비티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그랑프리 수상자가 트로피를 자랑스레 끌어안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곳이 바로 이 ‘72번가’바이다. 광고인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자정이 넘으면 가게 안은 80년대 우리나라의 만원버스를 방불케 한다. 앉을 자리는 당연히 없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물결은 차도까지 넘치다 못해 건너편 마르티네즈 호텔 바와 정원까지 이어지지만 비켜달라고 경적을 울리는 차량은 없다. 축제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시간이다.
칸의 마지막 밤, 호화 요트가 불을 밝히며 떠 있는 바다를 향해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상을 탄 사람이나 타지 못한 사람이나 지중해의 흰 모래시장 옆 파티장에서 하얗게 밤을 지새운다. 칸은 진정한 축제이며 배움의 장(場)이다.
당신이 크리에이터라면, 마케터라면, PR맨이라면, 디자이너라면 언젠가는 꼭 한 번 칸 라이언즈에 참가해보기를 권한다. 당신이 거대한 세계 광고산업 조류에서 어디쯤에 위치했는지 가늠하고 크게 발돋움할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