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수범(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가상광고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실제 현장에는 없는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프로그램에 삽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제품이나 브랜드, 로고 등을 광고하는 방송 기법을 의미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반화된 광고 형식이며, 원칙적으로 운동 경기 중계 프로그램에 제한돼 있다. 국내에서도 2010년 1월 19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됨에 따라 가상광고가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는데, 광고 시장의 규제 완화 및 시장의 파이 확대를 지원하는 정부의 방송통신 정책 기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가상광고가 허용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야구, 축구, 농구 등의 프로 경기 및 국제 경기 중계방송에서 가상광고를 볼 수 있게 됐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한 에비앙 가상광고.
가상광고 허용 범위가 비교적 넓은 미국에서는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 외 드라마,
쇼 프로그램 등에도 허용한 사례가 있다
가상광고는 1995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이후 급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가상광고 시행과 관련해 현재 가상광고를 시행하는 해외 주요 국가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요 국가로는 미국, 영국, 독일, EU 등이 있으며, 월드컵을 관장하는 FIFA도 가상광고에 대한 세부 규정을 마련해 운용하고 있다.
미국 [ United States of America ]
미국의 가상광고는 스포츠 경기를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1995년 중부지역의 한 은행이 마이너리그 야구 경기장에 900달러를 들여 시작한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팀의 홈경기에 노출된 도요타 자동차 광고가 메이저리그의 첫 번째 가상광고다.
미국의 경우, 가상광고는 광고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경기 침체기 방송국에 새로운 재원을 창출해주었다. 중간광고를 허용하여 혼잡(Clutter) 현상이 심각한 미국 방송광고 시장에서 가상광고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적으로는 녹화방송뿐 아니라 생방송 스포츠 중계방송 시 경기장, 링크, 트랙 등에 브랜드나 제품을 넣을 수 있다. 주요 방송사들이 현재 가상광고를 시행하고 있으며, 가상광고를 규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가상광고의 실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자유로워, 그 활용 범위가 스포츠 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TV 프로그램에까지 확대되었다.
미국 스포츠 시장에서 가상광고가 이용되는 대표적인 분야는 MLB(Major League Baseball)로 기업 로고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각 이닝 중간에 펜스나 포수 뒤에 위치한 플레이트를 이용해 가상광고를 삽입하고 있다. 또한 NFL(National Football League)은 한 쿼터가 끝난 후 또는 경기가 멈춘 휴식 시간을 이용해 가상광고를 송출하고 있다. 해당 경기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크리에이티브로 가상광고를 효과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NHL(National Hockey League) 정규 시즌의 마지막 주에는 뉴욕 지역에서 서브웨이의 가상광고를 노출하기도 했다. 뉴욕 레인저스와 워싱턴 캐피털스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서브웨이 로고가 대시보드에 자연스럽게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유럽방송연합 [ EBU, European Broadcasting Union ]
유럽 여러 나라들은 유럽방송연합의 가상광고 규정을 근간으로 가상광고를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는 일반 방송광고 대비 약 35~40%의 광고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경기장 펜스 광고의 경우 가상광고 업체가 사전에 A보드(펜스)를 확보해 광고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EBU와 FIFA 규정에 따라 주로 축구 중계방송 시 가상광고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그밖의 스포츠 중계에서도 가상광고 기법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2000년 유럽방송연합은 가상광고를 둘러싼 법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규약을 제시했으며 그 규약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상광고는 경기장 표면에 삽입할 수 있는데, 경기 이외의 시간에 그리고 경기장에 선수들이 없을 때에만 허용된다. 둘째, 사람들이나 그들의 장비에 삽입하는 가상광고는 허용되지 않는다. 셋째, 중계권을 갖고 있는 방송사의 사전 동의 없이 이벤트 주최자, 대행사, 혹은 다른 제3자에 의한 가상광고의 삽입은 허용되지 않는다(EBU, 2000).
영국 [ United Kingdom ]
영국에서는 2000년 11월 ITC(Independent Television Commission)가 가상광고에 대한 지침인 ‘Virtual Advertising Guidance Note’를 공표했다(ITC, 2000). 이는 단지 가상광고 시행을 위한 지침일 뿐이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주의 관여에 대한 규정뿐 아니라 가상광고의 기법과 그 사용에 대한 설명도 담고 있다. 지침서에는 경기장 내 실제 존재하는 일반 광고판과 동영상 광고판을 대체할 때만 허용하며, 모든 방송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에 시청자들에게 가상광고가 포함돼 있다는 것과 가상광고 시스템의 목적을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ITC는 가상광고에 대한 또 다른 지침으로 이벤트 중 전자영상 시스템은 광고 신호판을 대체하기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이벤트 현장에 있는 광고를 추가적으로 배치하기위해 이 시스템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사용한 적이 없는 빌보드 광고판이나 다른 위치에 광고를 집어넣기 위해 사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움직이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실제의 버추얼 A보드 위에만 사용될 수 있다.
독일 [ Germany ]
디지털 기술의 변화와 새로운 광고 형태에 대한 수요 변화가 고려되면서 독일에서는 2000년 4월부터 미디어법에 따라 가상광고를 허용하고 있지만, 다음 2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공영방송인 ARD와 ZDF 그리고 민영방송사 역시 광고와 프로그램의 분리 실행 및 스폰서링에 관한 자체 가이드라인을 통해 가상광고를 규정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의 시작과 종반에 가상광고의 사용을 명시해야 한다는 것과, 이미 존재하는 광고 공간만을 가상광고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경기 중계 시 펜스 광고처럼 중계 장소의 광고가 기존에 위치한곳에만 가상광고를 삽입할 수 있고 새로운 광고 영역은 만들어낼 수 없다.
또한 경기 장소(그라운드) 표면에 삽입하는 것은 경기 종료 후 경기장에 선수가 없을 때만 가능하며, 프로그램의 시작 또는 끝에 가상광고 시행에 관한 고지를 반드시 실행하도록 했다. 독일 방송광고 규제의 핵심은 광고와 프로그램의 엄격한 분리이며, 가상광고 역시 광고로 명시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가상광고 위배시 방송사업자가 규제를 받는다. 일례로 독일의 스포츠 TV 채널인 DSF는 2005년 7월 다른 유료 채널인 프리미에르가 이미 생중계한 경기를 요약해 방송하던 중 기존 경기에 삽입되었던 가상광고에 대해 아무런 고지 없이 방송해 위반고지와 함께 벌금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이 경우는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에 고지할 경우에만 가상광고가 가능하다는 방송국가협정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주요 방송사들은 가상광고를 활발하게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에 대한 법률적 기준을 수립한 것을 볼 때 스포츠 경기에서 가상광고의 사용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독일 방송사들이나 기업들은 가상광고에 관한 일반 원칙을 규정한 독일 법을 준수하며 가상광고를 시행하고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상광고는 미국, 영국,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페루, 오스트리아, 호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FOX, CBS, UPN, ESPN 등의 방송사에서 코카콜라, 펩시, 오피스데포, 아디다스, 세비트럭, 버드와이저, 비자, 게이트웨이, 도요타 등이 이미 가상광고를 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는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 광고의 3분의 1 이상이 가상광고일 정도로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또한 스포츠 중계 이외의 장르, 가령 CBS의 <그래미상 시상식>, 미국 드라마 <베이워치> 시리즈, CBS <얼리쇼>, UPN <세븐데이즈>, CBS 뉴스에서도 가상광고를 한 사례들이 있어 국내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다만 이 경우처럼 사회 규제 없이 완전한 자율로 이어질 경우 기존 방송 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므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