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이희복 상지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재미 한인 과학자가 노벨상위원회의 실수로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놓쳤다고 합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김필립 교수가 쓴 논문이 학술지 네이처의 같은 저널 같은 호에 실린 비슷한 다른 연구에 우선 수여되어 공동수상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 더 배출할 기회를 잃게 되었군요.
그러나 매년 수상을 기대하는 또 한 명의 노벨문학상 후보, <만인보>의 고은 선생에게 머지않아 메달이 수여되리라 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문학의 힘을 세계에 다시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되겠지요. 고은 선생의 시집 <개념의 숲(2009)>에 실린 “커뮤니케이션”은 광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광고를 보는 사람들에게 몇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위 영감을 주는 시라고 할까요? 일본의 하이쿠(俳句)처럼 간결한 몇 줄 시가 압축된 의미를 전달하는 힘을 갖는데, 카피라이터라면 이런 카피 욕심 낼만하겠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과 저것사이 언제나 오고 가는 나그네가 있다.
그렇습니다. 광고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므로 소통해야 합니다. 이것인 광고와 저것인 소비자, 그리고 둘 사이를 나그네처럼 오가는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뿐이 아닌 ‘언제나’여야 합니다. 미디어가 빅뱅하고 제 아무리 스마트해진다 해도, 소비자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져간다 해도 크리에이티브라는 배가 있는 한 그 둘 사이를 빠르게 오갈 것입니다. 2010년 한 해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의미가 광고와 소비자 사이를 오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움과 사랑을 삼키다
‘제약(製藥)광고는 제약(制約)이 많다’ 약품이나 의료광고를 경험한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명제입니다. 그래서 유명모델 띄워서 효능효과 또는 브랜드 인지를 강조하는 게 기본적인 제약광고의 공식입니다. 물론 ‘before & after’를 보여주는 것도 기본이고요. 훼스탈의 경우는 이런 룰을 벗어나려고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그림 1].
‘피부의 상처가 아닌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연고나, 쉽게 열 받는 요즘 아이들을 위한 해열제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이렇게 몸이 아닌 아픈 마음의 치료는 감성마케팅을 제약광고에 활용한 예입니다. 훼스탈의 경우는 배우 김갑수를 광고모델로 데뷔시켰다는 의미 외에도 까다로운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입맛에 들어 우수광고로 뽑혔다는 점에서 인정할만 합니다.
연인과 이별하거나 큰 실패를 맛 본 20~30대에게 ‘삼키기 힘든 사랑을 삼키고’, ‘인생을 소화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소화제 훼스탈을 젊은 층에게 효능•효과가 아닌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공감 가는 이야기가 소비자의 머리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감, 어렵다 < 어렵지 않다
훼스탈의 예처럼 공감 가는 이야기로 접근해서 머리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이번에는 머리를 움직이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로고스(logos)입니다. 논리는 흔히 딱딱하고 어려운 것으로 압니다만 캐논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그림 2]. 부등호(<)까지 카피에 활용한 걸 보니 카피라이터는 수학에 능한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논리는 수학입니다. 그리고 과학입니다. 기존의 아날로그 카메라를 디카가 대신하면서 휴대성과 고화질, 그리고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디지털 카메라의 장점으로 꼽아왔습니다.
조관우의 노래 <겨울이야기>와 어우러진 전지현의 ‘마이 디지털 스토리’는 이런 생활양식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DSLR을 선택하기에 너무 늦어버린, 아니 너무 어려워서 포기해 버릴 수 밖에 없는 30대의 주부, 그리고 40대의 직딩남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어렵지 않아”, “늦지 않았어”, 그리고 “무겁지 않아” 20대의 대학생들이 들고 다닐만한 크기와 무게, 그리고 다양한 기능의 버튼이 압도하는 디카의 부담감을 한 방에 날려 버립니다.
1등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단점을 극복해서 장점화하는 “demerit의 merit화”가 돋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이전과 달라집니다.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방법, 어렵다 < 어렵지 않다.
말하기 보다는 보여주다
개인적인 취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리모컨을 돌리다 정지하는 채널은 드라마 보다는 다큐 쪽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문서’라는 뜻이지만 영상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며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은 ‘막장’을 헤매는 이야기와 격이 다릅니다. 내말하기 보다는 보여주다 개인적인 취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리모컨을 돌리다 정지하는 채널은 드라마 보다는 다큐 쪽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문서’라는 뜻이지만 영상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며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은 ‘막장’을 헤매는 이야기와 격이 다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자연 다큐의 경우 일단 화면의 스케일과 감동의 크기가 다릅니다. 15초의 짧은 순간에 그것을 모두 표현하기는 힘듭니다만 올림푸스는 다큐형식의 기업PR로 새로운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림 3].
세계최초로 내시경을 만들었고 점유율 세계 1위라는 이야기를 다큐처럼 녹여냈습니다. 몸 속 탐험이 바로 대자연 탐험이라는 시각적 은유는 디카 제조회사로만 알았던 올림푸스에 대한 인식에 제대로 한 방 먹인 광고였습니다. 프리우스(prius), 막시무스(maximus), 옵티머스(optimus). 그리스에 콤플렉스를 가진 로마는 최초, 최대, 최고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광고인들도 혹시 그리스콤플렉스를 가진 것은 아닐까요? 올림푸스는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말하기 보다 보여주기, 그것도 시각적인 은유로 격이 있게. 공감은 강요가 아닌 함께여야 합니다.
이름 보다 더 큰 응원은 없다
안타깝게 2022년 월드컵 개최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동에서 최초로 월드컵을 열겠다는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한국축구는 큰 획을 남겼습니다.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은 원정 16강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올린 것입니다. 물론, 650억원이라는 월드컵광고를 남겼습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엄청난 광고비를 써준 광고주와 그 광고를 만드느라 애쓴 광고인들 덕분에 많은 상반기 월드컵광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공식 스폰서십 광고나 매복광고를 가릴 것 없이 그다지 수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이 아직도 남아서 일까요? 스폰서십인 현대자동차의 ‘샤우팅’과 SK텔레콤의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귓가를 때렸지만 커다란 반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 2022년 월드컵 개최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동에서 최초로 월드컵을 열겠다는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한국축구는 큰 획을 남겼습니다.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은 원정 16강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올린 것입니다. 물론, 650억원이라는 월드컵광고를 남겼습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엄청난 광고비를 써준 광고주와 그 광고를 만드느라 애쓴 광고인들 덕분에 많은 상반기 월드컵광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공식 스폰서십 광고나 매복광고를 가릴 것 없이 그다지 수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이 아직도 남아서 일까요? 스폰서십인 현대자동차의 ‘샤우팅’과 SK텔레콤의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귓가를 때렸지만 커다란 반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선수들의 이름 하나 하나를 불렀던 KT의 ‘황선홍 밴드’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림 4]. 이 캠페인 중에서도 제품을 판 것은 아니지만 ‘용영지운, 이기이, 안남재정, 오정성, 동기보영, 강조형, 승리’ 등 암호처럼 이름의 한 글자씩을 불러 국민의 지지와 선수들의 기운을 북돋게 했습니다.
전쟁구호처럼 캐치프레이즈를 반복하는 것은 2002년의 성공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침만 있고 감동이 없는 주입식 광고에는 더 이상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없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커다란 힘입니다.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 역시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커다란 힘이 됩니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그 만큼 어려운 것이니까요. 벌써부터 2014년 삼바의 정열이 있는 브라질 월드컵이 기다려집니다.
스캔들 없이 비주얼 스캔들을 만들다
광고에서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모델료로만 산정한다면 특급모델의 경우 수억원을 호가하니 웬만한 기업 광고비와도 맞먹을 만큼 커다란 금액입니다. 이 경우에는 신뢰도나 매력성, 카리스마, 리더십 등과 같은 요인들을 잘 살펴서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광고모델의 경우 사람인지라 연애도하고 결혼도 하고 때로는 스캔들도 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온에어중인 광고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게 되죠. 이런 스캔들 걱정없이 모델을 활용할 수 있는데 바로 캐릭터입니다. 수십년째 모델자리를 꿰고 있는 외국 캐릭터들도 있지만 올해 우리 광고에도 적잖은 캐릭터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림 5]. 대표적인 것이 SK텔레콤의 마스코트 안드로보이(Androboi)입니다.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작고 동그란 눈, 더듬이와 T자가 새겨진 초록색 둥근 몸통으로 광고에서 코믹한 연기로 사랑받았습니다.
LG전자의 휘니(Whini)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에어컨’의 캐릭터답게 첨단 기능으로 인간과 교감을 시도했습니다. 감정이 풍부한 휘니는 스키점프에서 국가대표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통신서비스나 전자제품에 등장하는 로봇캐릭터 외에도 금융에서 사용되는 동물캐릭터 역시 이채롭습니다. 바로 우리투자증권의 파란문어, 옥토(Octo)입니다.
미국 메트라이프생명의 스누피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캐릭터는 기존 만화캐릭터를 차용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우리투자증권의 옥토는 순 국산으로 광고를 위해 개발된 캐릭터로 보수적인 금융업의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시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소비자에게 친숙하게 다가와서 공감대를 형성,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젊음에게 이야기하다
오늘날 고용 없는 성장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오로지 취업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희망도 없고, 꿈꿀 여유도 없는 청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광고에 더욱 눈길이 갑니다. 두산의 “사람이 미래다” 캠페인은 원씬 원컷의 롱테이크 기법으로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림 6]. 기차여행, 실내야구장, 회의실, 서점,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청년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합니다. 클로즈업 되는 화면과 이야기의 클로즈업도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라고 하지 않아도, 좋은 실패를 해도, 실수를 인정하는 그들은 그리는 재주가 없어도, 공을 맞추는 재능이 없어도 기회를 찾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박용만 회장의 트위터(@solarplanet)를 통해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진 이 캠페인은 젊은이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건네준 하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960번 사랑하다
대한민국의 할머니가 뉴욕타임즈, 로이터통신, 시카고트리뷴지에 실렸다면 아마 김밥을 팔아서 대학에 수십억 기부한 사연쯤으로 예단하기 쉬울 것입니다. 미 대통령 오바마도 인정한 대한민국의 교육열이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아닙니다. 960번 도전해 꿈에 그리던 운전면허를 따고 광고에도 출연했던 차사순(69)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그림 7].
필자가 속한 학회의 ‘올해의 모델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가까이서 뵌 적이 있는데 아주 작은 체구의 충청도 할머니셨습니다. 그런데 960번의 도전, 그리고 성공이라는 강력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광고는 그 분의 힘을 잠시 빌렸습니다. 현대자동차 ‘달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캠페인에 출연, 캠페인 블로그 사이트(www.gift-car.kr)에서 네티즌의 열렬한 응원댓글 덕분에 소울(Soul)의 오너드라이버가 되셨습니다.
작은 거인, 차 할머니는 쉽게 도전하고 더 쉽게 좌절하는 현대인에게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현대차는 차 할머니를 비롯해 역도부 5총사, 승가원 천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3편의 광고와 함께 농부들로 이뤄진 ‘파머스밴드’, 다문화가정 아이들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예은이를 응원하는 광고 등을 내보냈습니다. 캠페인의 장점은 ATL인 TV와 BTL인 블로그를 활용해 시너지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소셜미디어 시대의 소셜이펙트(social effect)를 잘 활용했다 하겠습니다.
스마트한 시대, 광고의 역할을 생각하다
최근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600명, 트위터 사용자 300만명 시대가 열렸습니다. 내년엔 스마트폰만 2천만대를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이른바 “TGiF(Twitter, Google, iPhone, Facebook)”의 혁명을 실감하게 됩니다. 광고 역시 이러한 미디어의 빅뱅에서 빗겨나 있지 않습니다. 필연적으로 녹록하지 않은 다매체 다채널은 다접점과 다선택을 소비자에게 선물했습니다. 더욱 똑똑하고 까다로운 그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에서 스마트폭탄이 필요하듯 스마트폰과 스마트TV로 무장한 소비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우리나라 광고들은 마음을 움직여 왔고 어렵지 않게 공감을 얻는 방법을 알았으며 말하기보다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이름을 불러주었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으며 젊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960번 이상 사랑했습니다.
세상과 소비자, 그리고 미디어가 스마트해지는 2011년 광고를 통한 더 많은 연결(connected)과 사귐(social)이 필요합니다. 연결은 감정의 연결이며 사귐은 지속적인 관계입니다. 광고에서도 ATL, BTL을 뛰어넘는 CTL(Cross, 또는 Cultural The Line) 전략이 필요하겠습니다. 미디어 중심이 아닌 콘텐츠 중심의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릇의 모습은 바뀌겠지만 그 안의 요리는 바뀌지 않습니다. 훌륭한 셰프가 그릇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광고 크리에이터들은 콘텐츠 크리에이터, 문화 크리에이터를 자처합시다. 2011년 스마트한 광고의 조건, 연결과 사귐입니다.
그러나 매년 수상을 기대하는 또 한 명의 노벨문학상 후보, <만인보>의 고은 선생에게 머지않아 메달이 수여되리라 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문학의 힘을 세계에 다시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되겠지요. 고은 선생의 시집 <개념의 숲(2009)>에 실린 “커뮤니케이션”은 광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광고를 보는 사람들에게 몇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위 영감을 주는 시라고 할까요? 일본의 하이쿠(俳句)처럼 간결한 몇 줄 시가 압축된 의미를 전달하는 힘을 갖는데, 카피라이터라면 이런 카피 욕심 낼만하겠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과 저것사이 언제나 오고 가는 나그네가 있다.
그렇습니다. 광고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므로 소통해야 합니다. 이것인 광고와 저것인 소비자, 그리고 둘 사이를 나그네처럼 오가는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뿐이 아닌 ‘언제나’여야 합니다. 미디어가 빅뱅하고 제 아무리 스마트해진다 해도, 소비자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져간다 해도 크리에이티브라는 배가 있는 한 그 둘 사이를 빠르게 오갈 것입니다. 2010년 한 해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의미가 광고와 소비자 사이를 오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움과 사랑을 삼키다
‘제약(製藥)광고는 제약(制約)이 많다’ 약품이나 의료광고를 경험한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명제입니다. 그래서 유명모델 띄워서 효능효과 또는 브랜드 인지를 강조하는 게 기본적인 제약광고의 공식입니다. 물론 ‘before & after’를 보여주는 것도 기본이고요. 훼스탈의 경우는 이런 룰을 벗어나려고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그림 1].
‘피부의 상처가 아닌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연고나, 쉽게 열 받는 요즘 아이들을 위한 해열제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이렇게 몸이 아닌 아픈 마음의 치료는 감성마케팅을 제약광고에 활용한 예입니다. 훼스탈의 경우는 배우 김갑수를 광고모델로 데뷔시켰다는 의미 외에도 까다로운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입맛에 들어 우수광고로 뽑혔다는 점에서 인정할만 합니다.
연인과 이별하거나 큰 실패를 맛 본 20~30대에게 ‘삼키기 힘든 사랑을 삼키고’, ‘인생을 소화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소화제 훼스탈을 젊은 층에게 효능•효과가 아닌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공감 가는 이야기가 소비자의 머리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감, 어렵다 < 어렵지 않다
훼스탈의 예처럼 공감 가는 이야기로 접근해서 머리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이번에는 머리를 움직이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로고스(logos)입니다. 논리는 흔히 딱딱하고 어려운 것으로 압니다만 캐논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그림 2]. 부등호(<)까지 카피에 활용한 걸 보니 카피라이터는 수학에 능한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논리는 수학입니다. 그리고 과학입니다. 기존의 아날로그 카메라를 디카가 대신하면서 휴대성과 고화질, 그리고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디지털 카메라의 장점으로 꼽아왔습니다.
조관우의 노래 <겨울이야기>와 어우러진 전지현의 ‘마이 디지털 스토리’는 이런 생활양식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DSLR을 선택하기에 너무 늦어버린, 아니 너무 어려워서 포기해 버릴 수 밖에 없는 30대의 주부, 그리고 40대의 직딩남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어렵지 않아”, “늦지 않았어”, 그리고 “무겁지 않아” 20대의 대학생들이 들고 다닐만한 크기와 무게, 그리고 다양한 기능의 버튼이 압도하는 디카의 부담감을 한 방에 날려 버립니다.
1등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단점을 극복해서 장점화하는 “demerit의 merit화”가 돋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이전과 달라집니다.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방법, 어렵다 < 어렵지 않다.
말하기 보다는 보여주다
개인적인 취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리모컨을 돌리다 정지하는 채널은 드라마 보다는 다큐 쪽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문서’라는 뜻이지만 영상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며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은 ‘막장’을 헤매는 이야기와 격이 다릅니다. 내말하기 보다는 보여주다 개인적인 취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리모컨을 돌리다 정지하는 채널은 드라마 보다는 다큐 쪽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문서’라는 뜻이지만 영상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며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은 ‘막장’을 헤매는 이야기와 격이 다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자연 다큐의 경우 일단 화면의 스케일과 감동의 크기가 다릅니다. 15초의 짧은 순간에 그것을 모두 표현하기는 힘듭니다만 올림푸스는 다큐형식의 기업PR로 새로운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림 3].
세계최초로 내시경을 만들었고 점유율 세계 1위라는 이야기를 다큐처럼 녹여냈습니다. 몸 속 탐험이 바로 대자연 탐험이라는 시각적 은유는 디카 제조회사로만 알았던 올림푸스에 대한 인식에 제대로 한 방 먹인 광고였습니다. 프리우스(prius), 막시무스(maximus), 옵티머스(optimus). 그리스에 콤플렉스를 가진 로마는 최초, 최대, 최고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광고인들도 혹시 그리스콤플렉스를 가진 것은 아닐까요? 올림푸스는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말하기 보다 보여주기, 그것도 시각적인 은유로 격이 있게. 공감은 강요가 아닌 함께여야 합니다.
이름 보다 더 큰 응원은 없다
안타깝게 2022년 월드컵 개최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동에서 최초로 월드컵을 열겠다는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한국축구는 큰 획을 남겼습니다.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은 원정 16강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올린 것입니다. 물론, 650억원이라는 월드컵광고를 남겼습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엄청난 광고비를 써준 광고주와 그 광고를 만드느라 애쓴 광고인들 덕분에 많은 상반기 월드컵광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공식 스폰서십 광고나 매복광고를 가릴 것 없이 그다지 수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이 아직도 남아서 일까요? 스폰서십인 현대자동차의 ‘샤우팅’과 SK텔레콤의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귓가를 때렸지만 커다란 반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 2022년 월드컵 개최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동에서 최초로 월드컵을 열겠다는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한국축구는 큰 획을 남겼습니다.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은 원정 16강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올린 것입니다. 물론, 650억원이라는 월드컵광고를 남겼습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엄청난 광고비를 써준 광고주와 그 광고를 만드느라 애쓴 광고인들 덕분에 많은 상반기 월드컵광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공식 스폰서십 광고나 매복광고를 가릴 것 없이 그다지 수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이 아직도 남아서 일까요? 스폰서십인 현대자동차의 ‘샤우팅’과 SK텔레콤의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귓가를 때렸지만 커다란 반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선수들의 이름 하나 하나를 불렀던 KT의 ‘황선홍 밴드’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림 4]. 이 캠페인 중에서도 제품을 판 것은 아니지만 ‘용영지운, 이기이, 안남재정, 오정성, 동기보영, 강조형, 승리’ 등 암호처럼 이름의 한 글자씩을 불러 국민의 지지와 선수들의 기운을 북돋게 했습니다.
전쟁구호처럼 캐치프레이즈를 반복하는 것은 2002년의 성공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침만 있고 감동이 없는 주입식 광고에는 더 이상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없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커다란 힘입니다.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 역시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커다란 힘이 됩니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그 만큼 어려운 것이니까요. 벌써부터 2014년 삼바의 정열이 있는 브라질 월드컵이 기다려집니다.
스캔들 없이 비주얼 스캔들을 만들다
광고에서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모델료로만 산정한다면 특급모델의 경우 수억원을 호가하니 웬만한 기업 광고비와도 맞먹을 만큼 커다란 금액입니다. 이 경우에는 신뢰도나 매력성, 카리스마, 리더십 등과 같은 요인들을 잘 살펴서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광고모델의 경우 사람인지라 연애도하고 결혼도 하고 때로는 스캔들도 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온에어중인 광고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게 되죠. 이런 스캔들 걱정없이 모델을 활용할 수 있는데 바로 캐릭터입니다. 수십년째 모델자리를 꿰고 있는 외국 캐릭터들도 있지만 올해 우리 광고에도 적잖은 캐릭터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림 5]. 대표적인 것이 SK텔레콤의 마스코트 안드로보이(Androboi)입니다.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작고 동그란 눈, 더듬이와 T자가 새겨진 초록색 둥근 몸통으로 광고에서 코믹한 연기로 사랑받았습니다.
LG전자의 휘니(Whini)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에어컨’의 캐릭터답게 첨단 기능으로 인간과 교감을 시도했습니다. 감정이 풍부한 휘니는 스키점프에서 국가대표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통신서비스나 전자제품에 등장하는 로봇캐릭터 외에도 금융에서 사용되는 동물캐릭터 역시 이채롭습니다. 바로 우리투자증권의 파란문어, 옥토(Octo)입니다.
미국 메트라이프생명의 스누피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캐릭터는 기존 만화캐릭터를 차용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우리투자증권의 옥토는 순 국산으로 광고를 위해 개발된 캐릭터로 보수적인 금융업의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시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소비자에게 친숙하게 다가와서 공감대를 형성,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젊음에게 이야기하다
오늘날 고용 없는 성장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오로지 취업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희망도 없고, 꿈꿀 여유도 없는 청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광고에 더욱 눈길이 갑니다. 두산의 “사람이 미래다” 캠페인은 원씬 원컷의 롱테이크 기법으로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림 6]. 기차여행, 실내야구장, 회의실, 서점,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청년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합니다. 클로즈업 되는 화면과 이야기의 클로즈업도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라고 하지 않아도, 좋은 실패를 해도, 실수를 인정하는 그들은 그리는 재주가 없어도, 공을 맞추는 재능이 없어도 기회를 찾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박용만 회장의 트위터(@solarplanet)를 통해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진 이 캠페인은 젊은이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건네준 하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960번 사랑하다
대한민국의 할머니가 뉴욕타임즈, 로이터통신, 시카고트리뷴지에 실렸다면 아마 김밥을 팔아서 대학에 수십억 기부한 사연쯤으로 예단하기 쉬울 것입니다. 미 대통령 오바마도 인정한 대한민국의 교육열이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아닙니다. 960번 도전해 꿈에 그리던 운전면허를 따고 광고에도 출연했던 차사순(69)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그림 7].
필자가 속한 학회의 ‘올해의 모델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가까이서 뵌 적이 있는데 아주 작은 체구의 충청도 할머니셨습니다. 그런데 960번의 도전, 그리고 성공이라는 강력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광고는 그 분의 힘을 잠시 빌렸습니다. 현대자동차 ‘달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캠페인에 출연, 캠페인 블로그 사이트(www.gift-car.kr)에서 네티즌의 열렬한 응원댓글 덕분에 소울(Soul)의 오너드라이버가 되셨습니다.
작은 거인, 차 할머니는 쉽게 도전하고 더 쉽게 좌절하는 현대인에게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현대차는 차 할머니를 비롯해 역도부 5총사, 승가원 천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3편의 광고와 함께 농부들로 이뤄진 ‘파머스밴드’, 다문화가정 아이들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예은이를 응원하는 광고 등을 내보냈습니다. 캠페인의 장점은 ATL인 TV와 BTL인 블로그를 활용해 시너지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소셜미디어 시대의 소셜이펙트(social effect)를 잘 활용했다 하겠습니다.
스마트한 시대, 광고의 역할을 생각하다
최근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600명, 트위터 사용자 300만명 시대가 열렸습니다. 내년엔 스마트폰만 2천만대를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이른바 “TGiF(Twitter, Google, iPhone, Facebook)”의 혁명을 실감하게 됩니다. 광고 역시 이러한 미디어의 빅뱅에서 빗겨나 있지 않습니다. 필연적으로 녹록하지 않은 다매체 다채널은 다접점과 다선택을 소비자에게 선물했습니다. 더욱 똑똑하고 까다로운 그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에서 스마트폭탄이 필요하듯 스마트폰과 스마트TV로 무장한 소비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우리나라 광고들은 마음을 움직여 왔고 어렵지 않게 공감을 얻는 방법을 알았으며 말하기보다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이름을 불러주었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으며 젊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960번 이상 사랑했습니다.
세상과 소비자, 그리고 미디어가 스마트해지는 2011년 광고를 통한 더 많은 연결(connected)과 사귐(social)이 필요합니다. 연결은 감정의 연결이며 사귐은 지속적인 관계입니다. 광고에서도 ATL, BTL을 뛰어넘는 CTL(Cross, 또는 Cultural The Line) 전략이 필요하겠습니다. 미디어 중심이 아닌 콘텐츠 중심의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릇의 모습은 바뀌겠지만 그 안의 요리는 바뀌지 않습니다. 훌륭한 셰프가 그릇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광고 크리에이터들은 콘텐츠 크리에이터, 문화 크리에이터를 자처합시다. 2011년 스마트한 광고의 조건, 연결과 사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