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학] 3D 열풍 들여다보기
대홍 커뮤니케이션즈 기사입력 2010.09.29 03:11 조회 4372







글 ㅣ 이승재 (동아일보 영화기자)



“아~ 과연 얼마나 야하고 실감 날까?”

요즘 영화계 인사들을 만나면 한 번쯤 ‘은밀히’ 나누는 대화다. 도대체 뭘 두고 이 난리일까? 10월 초 개봉 예정인 멜로 영화 <나탈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벌이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영화를 두고 이리도 기대치가 높은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국내 영화 최초로 3D 베드 신을 선보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동승>(2003)을 만든 주경중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이른바 ‘3D 베드 신’을 강력한 볼거리로 내세운다. 주 감독은 이 영화를 100% 3D로 촬영했는데, 베드 신의 3D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했다는 뒷이야기가 들린다.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가 성공한 이후 스크린에 불어닥친 3D 돌풍이 성인물에까지 이를 만큼 3D는 이제 영화의 대세가 되었다.


3D 영화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

현재 3D 영화로 제작을 발표한 국내 영화만도 5~6편에 이른다. 할리우드는 한발 더 앞선다. 지난 2003년 처음으로 2편을 선보인 3D 영화는 2008년엔 8편으로 늘더니, 지난해엔 20편으로 급격히 늘었다. 올해도 <드래곤 길들이기> <슈렉 포에버> <토이스토리 3> 등 30여 편이 개봉했거나 개봉할 예정이다.

미국영화제작자협회(MPAA)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3D 영화의 극장 수입은 지난해 11억 4,000만 달러(약 1조 2,870억원)에 달해 4,000만 달러인 2005년보다 30배 가까이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2008년 2,543개인 3D 상영관 수는 불과 1년 만에 3배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다.

이쯤 되면 3D 영화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닐까? 3D 상영관 입장료는 평균 8,000원인 2D 상영관보다 60~100%가 비싼 1만 3,000~1만 6,000원이니 말이다. 실제로 <아바타>는 지난해 12월 개봉날부터 국내에서 총 1,335만 명이 관람했는데, 이 중 절반인 638만 명이 3D 버전으로 관람했다. 지난 5월 개봉한 할리우드산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는 3D 상영의 재미를 톡톡히 봤는데, 국내에서 올린 총매출 268억원 중 3D 버전의 비중은 무려 92%였다. 지난해 <아바타>가 개봉할 당시만 해도 100여 곳에 불과하던 국내 3D 상영관은 벌써 150여 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현명한 독자라면 이런 화려한 수치 사이에 숨은 또 다른 진실을 알아챌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3D 영화에 ‘묻지 마 투자’를 하다가 후회막급하게 되는 유감스러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먼저 <드래곤 길들이기>를 들여다보자. 국내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상영한 스크린이 모두 100개라 가정하면, 이 중 3D 버전으로 상영한 스크린의 수는 무려 70개에 이르렀다는 사실. 다시 말해 국내 극장 대부분이 3D 버전으로 상영하는 바람에 관객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3D 버전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90%를 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최근 개봉한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3>도 대부분 3D로만 상영한다. 결국 아이들의 등쌀에 못 이겨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값비싼 3D 상영 티켓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극장가에선 3D 상영을 통해 사실상의 ‘관람료 인상’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3D 영화 제작 열풍을 근심 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바타>의 성공 후 3D 영화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하는 일부 투자자들을 ‘화려한 불꽃을 향해 무조건 달려드는 부나방’에 비유하곤 한다.

사실 <아바타>가 나오기 전 할리우드가 벌인 ‘3D 실험’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2006년 내놓은 <수퍼맨> 시리즈의 최신작 <수퍼맨 리턴즈>의 3D 버전은 입체 효과의 장관을 보여주지만 흥행에선 쓴맛을 봤다. 또 지난해 초 ‘공포 영화 사상 최초의 3D 상영’이란 기치를 내걸고 개봉한 <블러디 발렌타인> 역시 민망한 성적표를 남겼다. 이 영화들이 <아바타>를 능가하는 3D 효과를 과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참담한 결과를 낳은 것은 탄탄한 스토리가 없이 3D 외형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관객이 영화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영화의 ‘기술’이 아닌 ‘이야기’인 것이다.


3D가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최근 남아공 월드컵을 전후해 3D 평판 TV가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3D 영상’은 시대의 화두가 된 듯하다. 3D 열풍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넘어 삶의 질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뿐 아니라 의학, 생명공학, 건축, 쇼핑, 마케팅에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핵심장치로 3D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3D를 활용해 알코올 중독 환자를 치료하는 이른바 ‘가상체험 치료’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그리고 가라앉은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분양 마케팅의 일환으로 3D가 동원되기도 한다. 또 3D로 인해 온라인 쇼핑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온라인 쇼핑의 단점은 모니터에 펼쳐지는 2차원 사진만을 정보로 삼아 구매여부를 결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3D 영상이 도입되면 소비자들은 모니터에서 펼쳐지는 입체영상의 이곳저곳을 클릭하며 마치 오프라인 매장에서 실물을 보고 구매하는 듯한 ‘버추얼(virtual) 쇼핑’을 체험할 수 있다.

3D 기술의 급속한 진화는 일반대중을 3D의 ‘소비자’ 뿐 아니라 ‘공급자’로까지 진화시킬 것이다. 3D 영화나 TV를 보면서 즐기는 차원을 넘어, 3D 카메라를 통해 직접 입체사진을 찍고 이를 편집해 온라인에 유통시키는 시대가 머지않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전용 안경 없이 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구현되는 날이 온다면 인류는 또 다시 획기적인 삶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입체 길 찾기 기능을 실현하고, 야구게임을 실제처럼 즐기는 꿈같은 순간이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 속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진화하는 3D 기술은 앞으로 꾸준히 우리 생활 곳곳에 파고들것이다. 지금 불고 있는 ‘3D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조만간 최소한 몇몇 분야에서는 2D로는 부족한 시대가 올 것이다. 이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소비자나 제품을 만드는 기업, 마케팅 업체 모두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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