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강교자 (한국 YWCA 연합회 회장)
배추 한 포기 값이 만원을 훌쩍 넘는 상황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배추사기에 혈안이 된 주부들의 사진이 신문과 TV 뉴스에 계속 소개 되고 있다. 추석이 지난 후에도 하락할 줄 모르는 채소 값에 불안해하며 벌써부터 김장걱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우려의 소리들이 많이 들려온다. 우리 집 식탁에서도 배추 값이 화두였다. ‘배추 한 포기에 만원이 넘는다니...’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분간 배추김치 먹지 않으면 되지요’ 하고 큰 아들이 대답했다. ‘그렇지? 모자랄 때에는 모두가 조금씩만 덜 먹든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 먹든지 하면 좋을 텐데...’ 추석 전부터 비싸진 배추 값에 우리는 이미 양배추 김치를 담가 먹고 있다.
며칠 전에 읽었던 기사 내용이다. ‘통일 20주년이 되었어도 아직도 사재기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일단 보면 사게 된다. 오랫동안 궁핍하던 시절 몸에 밴 습관이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오랜 세월 가난에 시달렸던 경험 때문에 사재기 습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앙겔라 총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습관이기도 하다. 그동안 라면 파동, 휴지 파동을 비롯한 여러 파동을 겪은 우리 사회가 아닌가?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배추파동에도 사재기 습관을 탈피한 적극적인 주부들의 모습이 계속 소개되고 있다. 하나에 200원 정도 하는 무 모종 100여 개를 잘 키워 올 겨울 김장에 쓸 생각으로 태풍에 씻겨간 무 모종을 다시 심기 위해 텃밭을 찾은 주부, 비가 그치고 나서 20일 사이에 20명 넘게 많은 분들이 주말농장에 문의전화를 했다는 소식, 아파트에서도 쉽게 키울 수 있는 채소 씨앗과 흙, 화분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은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50% 이상 증가할 정도로 집에서 직접 채소를 키우려는 세대도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들이다.
위기는 기회이다. 위기는 변화를 위한 최선의 기회이다. 이미 시작된 지구의 기후변화에 지혜롭고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대응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농수산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의식변화는 절실한 요구이다. 소비자운동가나 환경운동가의 외침이 아닌 모든 소비자들의 구매, 관리 원칙이 변하고, 삶의 패턴이 변해야한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녹색 물결이 농업,산업,정보혁명에 이은 ‘제4의 물결(the Fourth Wave)’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기업은 물론 국민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제4의 물결, 녹색혁명은 소비생활의 전반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개인의 소비활동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나와 내 가족의 생존과 안전을 유지하고, 일상생활의 편리와 안락한 쉼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비용을 지불하고, 그것들이 합리적이고 정직하며 신속하게 제공되느냐 아니냐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소비자의식은 이 수준을 넘어서야만 한다.
좀 더 넓게, 좀 더 멀리 개인의 소비활동이 사회에 미칠 영향들을 생각하는 소비자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나의 소비가 자연의 순환 질서를 지키는 일에, 이웃과의 공동체성을 이어가는 일에,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목적에, 우리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더 안전하고 풍요롭게 남겨주는 책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도움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를 생각하는 소비자의식이 성숙된 소비자의식이다.
단순히 개인 개인의 경제적인 합리성, 효율성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를 지켜나가는 책임감을 가진 소비자의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인류들의 이기적인 소비활동을 위해 여지없이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마음으로 우리 후손들의 삶을, 우리 후대의 삶의 터전을 보다 긴 안목으로 보고 생각할 줄 아는 소비자들의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소비자교육운동과 교육의 내용에서도 이 부분은 강조되어야 한다.
녹색소비는 물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며 버릴 때까지의 전 과정에서 친환경적인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환경 친화적인 상품 구매 뿐 아니라, 친환경상품들이 재배, 제조 될 수 있는 환경조성에도 관심을 가지고 권장, 협력하는 행동이다. 또한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재활용,분리수거와 함께 1회용품 사용 자제 등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일에 적극적인 행동이 요구된다. 주택의 단열,적정 냉난방 온도 유지,자동차 이용 자제, 자전거나 대중교통 이용하기, 물 절약 등 함께 사용해야 하는 지구의 자원들을 함께 지키는 원칙에 의한 소비생활을 꾸려가는 것이 녹색혁명 시대의 소비자의식이다.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 <조화로운 삶>의 저자 스코트, 헬렌 니어링 부부가 평생 지향하고 실천했던 ‘조화로운 삶’의 실천사항 중에서 ‘이 세상에서 삶을 마치고 떠날 때 지구가 자신이 오기 전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도록 생활하는 습관을 들일 것’이라는 항목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제 기업이 물건을 만들어 팔기만 하는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모든 기업은 사회공헌뿐만 아니라 노동자 인권, 환경 보호 등 다양한 책임 경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을 강조하는 윤리적 소비운동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