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쉼 없이 달려온 몸도 쉬고 마음도 풀어놓는 휴가철입니다. 한데 저는 이 나른한 시즌에 주채긋럽게도 각오를 다지자는 얘기를 꺼냅니다. 일본 소설과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 <소설가의 각오> 입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일본에서도 아주 독특한 작가로 분류됩니다. 언론이나 출판사에세 주는 문학상도 거부하고 중앙 문단과는 담을 쌓은 채 일본 북 알프스 기슭의 오지에서 부인과 둘이 삽니다.
은둔해 살며 오직 소설 쓰기에 전념하는 수도승 같은 작가죠. 그가 이런 삶을 사는 까닭은, 사교계 기웃거리지 않고 작품을 쓰는 데 전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소설가가 소설만 써서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언론의 청탁을 받아 이런 저런 잡문도 쓰고 TV에도 얼굴을 내미는 등 중 연에인처럼 변해 가죠.
상황이 이러함을 꿰뚫어 본 이 작가는 돈의 유혹에 넘어가 소설 아닌 잡문을 써대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아예 돈 쓸 일이 없도록 시골로 이사 가 산 속에서 삽니다. 오로지 자기 내부에 소설이 차올라, 자기 페이스대로 쓸 수 있도록 본질이 아닌 모든 것을 절제하고 차단한 것입니다. 머리까지 박박 밀어 삭발을 하고서 말이죠.
우리나라 작가 한 사람이 몇 년 전 그를 인터뷰하러 갔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저녁 상을 차려 주는데 마루야마 겐지의 식사는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비타민 한 알을 털어 넣었는데 그것이 그의 저녁 식사였어요. 왜 식사를 하지 않느냐니까 밥을 먹으면 정신이 흐려져서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하더랍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인생을 살 수는 없고 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업이고 그것으로써 밥 벌이를 하고 있다면 극진한 마음을 갖는 것이 기본 일 겁니다. 십 년, 이십 년 했다고 대충할 게 아니라 말이죠. 그러니 각오를 다져야 할 사람이 어디 소설가 뿐이겠습니까. 자신의 일에 이름을 걸고 인생을 건 사람이라면 자세가 흐트러지고 나태해질 때마다 각오를 다져햐 하는 거겠지요.
어느새 저는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져 버렸고 웬만한 자리에서는 어른인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처지가 되고 보니 선배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최근 제가 도달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선배란, 성과를 보여 주기보다 태도를 보여 줘야겠다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가짐을 보여 줘야겠다고.
후배들이 언제 선배에게 감탄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선배의 기량이 변함없이 뛰어남을 확인할 때도 그들은 갈채를 보냅니다만, 나이 들어서도 꼿꼿한 등허리를 지닌 것처럼 정신이나 태도도 풀어지지 않고 꼿꼿할 때 후배들은 감탄하는 것 같습니다. 존경이랄까요. 저 양반은 저 나이에도, 혹은 저렇게 오래 하고도 성심을 다하는구나 하는....
언제부터인가 저는 알아 버렸습니다. 후배들이 광고를 참 잘 한다는 것을요. 광고는 사이틀이 짧고 젊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젊은 후배들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모습과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극진한 마음을 한 때의 초심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도 무너뜨리지 않고 간직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젊은 그들이 갖기 어려운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므로 각오를 다지는 건 젊은이가 아니라 오히려 나이 든 선배들의 일이라는...
지난 달에 퍼포먼스를 내는 것 말고도 인생엔 여러 기쁜이 있다고 해 놓고 한달만에 다시 각오를 다지라니 왔다 갔다 한다고도 하시겠지만 각오를 다지는 것과 인생을 즐기는 것이 영 다른 방향은 아닌 것 같군요. 여러분은 이번 휴가에 각오를 다지셨습니까, 아님 인생을 즐기셨습니까. 어느 것이든 의미 있는 시간이었기를 기원합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일본에서도 아주 독특한 작가로 분류됩니다. 언론이나 출판사에세 주는 문학상도 거부하고 중앙 문단과는 담을 쌓은 채 일본 북 알프스 기슭의 오지에서 부인과 둘이 삽니다.
은둔해 살며 오직 소설 쓰기에 전념하는 수도승 같은 작가죠. 그가 이런 삶을 사는 까닭은, 사교계 기웃거리지 않고 작품을 쓰는 데 전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소설가가 소설만 써서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언론의 청탁을 받아 이런 저런 잡문도 쓰고 TV에도 얼굴을 내미는 등 중 연에인처럼 변해 가죠.
상황이 이러함을 꿰뚫어 본 이 작가는 돈의 유혹에 넘어가 소설 아닌 잡문을 써대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아예 돈 쓸 일이 없도록 시골로 이사 가 산 속에서 삽니다. 오로지 자기 내부에 소설이 차올라, 자기 페이스대로 쓸 수 있도록 본질이 아닌 모든 것을 절제하고 차단한 것입니다. 머리까지 박박 밀어 삭발을 하고서 말이죠.
우리나라 작가 한 사람이 몇 년 전 그를 인터뷰하러 갔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저녁 상을 차려 주는데 마루야마 겐지의 식사는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비타민 한 알을 털어 넣었는데 그것이 그의 저녁 식사였어요. 왜 식사를 하지 않느냐니까 밥을 먹으면 정신이 흐려져서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하더랍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인생을 살 수는 없고 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업이고 그것으로써 밥 벌이를 하고 있다면 극진한 마음을 갖는 것이 기본 일 겁니다. 십 년, 이십 년 했다고 대충할 게 아니라 말이죠. 그러니 각오를 다져야 할 사람이 어디 소설가 뿐이겠습니까. 자신의 일에 이름을 걸고 인생을 건 사람이라면 자세가 흐트러지고 나태해질 때마다 각오를 다져햐 하는 거겠지요.
어느새 저는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져 버렸고 웬만한 자리에서는 어른인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처지가 되고 보니 선배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최근 제가 도달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선배란, 성과를 보여 주기보다 태도를 보여 줘야겠다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가짐을 보여 줘야겠다고.
후배들이 언제 선배에게 감탄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선배의 기량이 변함없이 뛰어남을 확인할 때도 그들은 갈채를 보냅니다만, 나이 들어서도 꼿꼿한 등허리를 지닌 것처럼 정신이나 태도도 풀어지지 않고 꼿꼿할 때 후배들은 감탄하는 것 같습니다. 존경이랄까요. 저 양반은 저 나이에도, 혹은 저렇게 오래 하고도 성심을 다하는구나 하는....
언제부터인가 저는 알아 버렸습니다. 후배들이 광고를 참 잘 한다는 것을요. 광고는 사이틀이 짧고 젊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젊은 후배들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모습과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극진한 마음을 한 때의 초심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도 무너뜨리지 않고 간직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젊은 그들이 갖기 어려운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므로 각오를 다지는 건 젊은이가 아니라 오히려 나이 든 선배들의 일이라는...
지난 달에 퍼포먼스를 내는 것 말고도 인생엔 여러 기쁜이 있다고 해 놓고 한달만에 다시 각오를 다지라니 왔다 갔다 한다고도 하시겠지만 각오를 다지는 것과 인생을 즐기는 것이 영 다른 방향은 아닌 것 같군요. 여러분은 이번 휴가에 각오를 다지셨습니까, 아님 인생을 즐기셨습니까. 어느 것이든 의미 있는 시간이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