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국ㅣThe SOUTH 제작그룹 대리 bk21.park@cheil.com
자살의 원인에 대한 미신적 생각과 정신병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지배하던 100년 전, 자살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에밀 뒤르캠의 <자살론>을 읽다 보면 방대한 통계를 기반으로 한 저자의 치밀한 분석이 빛남을 알 수 있다.
급격한 문화. 계층적 변화 속에서 그 당시 살아가던 사람들이 겪을 수 밖에 없던 충격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현상을 분석한 그의 논리는, 지금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과의 관게에는 오는 수많은 문제를 언급했다는 점에서는 놀라운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생각 중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있는데, 자살이 발생한 시간대를 분석해보니 낮 12시부터 2시까지의 자살빈도가 다른 시간대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 자살이 단순한 시간대 분석만으로 파악도리 수 없는 복잡다단한 것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단순 분류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새벽이나 저녁시간이 아닌 하루 중 가장 정신 없이 일할 시간에 자실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결과는 의외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한 뒤르캠의 분석은 책의 논조와 일맥상통한다. 하루 중 그 시간대가 많은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때이며 아닌가라는 분석 말이다. 이후 책은 이 경해에 대한 지속적인 보완과 다른 사례를 들며 흘러가는데, 그 시대의 도시인들엑게 오후 2시는 농사지으며 살 때는 느껴 보지못했던 '폭팔 직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경험에 기인한 지극히 사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말하건데, 내게 있어 오후 4시 30분은 대체로 '폭팔 직전의 시간'인 것 같다. 가만히 눈을 감고 4시 30분을 생각해 보자. 퇴근 후 약속은 잡혀있고 당신은 약속시간 사수를 위해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벨이 울리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하다. 당신의 책상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서류로 넘쳐나고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주변 분위기는 조금씩 긴장의 수위를 높여간다.
밀려오는 전화와 생각보다 더딘 일 처리 속도, 그리고 그보다 더욱 느려터진 컴퓨터 중앙처리장치에 뒷골이 당겨올 무렵, 격전을 치르고 모함으로 귀한하는 우주전투기처럼 피곤에 치진 선배들의 어두운 얼굴이 파티션 너머로 보일 때문 당신은 1990년대 히트한 노래의 한 소절이 생각날 것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아, 오늘도 속칭 '나가리'를 맞았는가?
결과를 듣기 위해 모두 회의실로 모일 때면 우린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고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뛰어난 유추력과 놀라운 천리안을 갖게 된다. 그런데 만약 공교롭게도 그날이 친구들과 5개월만에 약속한 만찬회동이 잡혀있는 금요일이라면? 추측컨대 금요일 오후 4시 30분은 아마도 순간 흡연율과 커피 소비량이 일주일 중 가장 높은 시점이 아닐까?
박 아트의 자난 주를 돌아보자.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회사에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사람들의 환한 미소가 아닌 빽삑이 적힌 일정표였다. 월, 화는 가볍게 스윕, 수요일의 격전을 지나 목요일은 연장혈투 끝에 무승부. 드디어 최대의 승부처라 할 수 있는 금요일의 최고 분수령이 되었던 폭발 직전의 오후 4시 30분은 고속 촬영처럼 천천히 열리는 출입문의 주성치처럼 통과하는 CD님의 미소가득한 얼굴에 굿바이 홈럼으로 마무리된다(ASSA 노래방!).
오늘 들어간 보고는 격찬을 받았으며 광고주 시사 결과는 탄산수처럼 상큼하게 마무리 되었고 세 개중 하나만 고르자고 들어간 시안은 배은망덕하게도 세 개 모두 팔려버렸다나 뭐라나~ 브루스 윌리스가 1초를 남기고 극적으로 멈추게한 시한폭탄마냥 사라져버린 나의 '폭팔 직전의 시긴' 금요일 오후 4시 30분은 고생 많았다는 팀장님의 말씀과 함께 프라이데이 나이트 피버로 자연스럽게 그라데이션되었다. 우리나라 국회가 여야대치 상황으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관계로 아직 죽으란 '법'은 입안이 되지 않은 것 같으니 참 다행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