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오 | 이상오아트 대표 Isoart@naver.com
안상헌 | The SOUTH 제작그룹 CD sanghun.ahn@cheil.com
서부영화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보안관이라면, 이에 맞서는 악인들의 흔한 직업 중의 하나는 은행 강도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은행 강도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은행의 이름 대부분이 아멕스 카드의 창시자인 헨리 웰즈와 윌리엄 조지 파고의 이름을 합한‘웰즈 파고’라는 것이다. 1850년 창업 이래로 신용카드의 대명사가 된 아멕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수없이 많은 서부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 '웰즈 파고 (Wells Fargo) 은행'은 서부개척 시대 미국 은행의 대명사였다. 그리고 이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아멕스)의 창시자 헨리 웰즈(Henry Wells)와 윌리암 조지 파고(Wiliam George Fargo)의 이름을 합한 데서유래한다. '익스프레스'라는 말은 지금이야 특급열차를 의미하지만, 당시에는 역마차에 의한 급행 편을 가리키는 말로, 따지고 보면 지금의 택배와 같은 역할을 했다.
아멕스라는 회사가 문을 연 당시에는 신용카드라는 말조차 없었다. 교통도 불편하고 운송이 고르지 않았던 가운데에서도 이 역마차 회사는 가장 믿을 만한 업체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물 운송량만으로 수익은 부족했고 아멕스는 은행으로부터 주식, 어음, 돈 등을 배달하면서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시절의 영향때문인지 이 때 신뢰와 안심이라는 개념이 이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됐다.
이 후 아멕스는 세계 최초로 여행자수표를 발행하면서 금융회사로서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일기장 같은 신청서
누구나 새로운 카드에 가입하려면 신청서를 채워야 한다. 이름부터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직장 주소, 집 주소 등등 무심히 손이 가는 대로 적어 내려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만약 나에 대한 공식적인 내용으로 채워야 하는 카드 가입신청서대신 <광고 1>과 같은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릴 적 꿈, 가장 간직하고 싶은 추억에서부터 가장 큰 도전과 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채워 가는 순간, 문득 내 삶을 돌아보며 카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이다.
예전만 하더라도 아멕스 카드는‘지위의 상징(status symbol)’으로 통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지갑에서 이 카드를 꺼내는 것 만으로도 주의의 시선을 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면서 똑똑해지고 꼼꼼해진 소비자들은 겉멋보다는‘현명한 선택(smart choice)’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성공한 사람들이 전하는 나의 인생과 나의 카드이야기다.
아멕스의‘My life, My card’캠페인은 다른 카드사와 마찬가지로 유명인을 모델로 내세우지만 전혀 다른 접근으로 소비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광고 2>는 영화‘타이타닉(Taitanic)’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배우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을 주인공으로
화려한 그녀의 겉모습에 숨겨진 솔직한 생활을 꾸밈없이 그려 내고 있다. <광고 3>에선 영화‘라스트 사무라이(Last Samurai)’에서 열연을 펼쳤던 와타나베 켄 (Watanabe ken)이 자신을 깨우는 알람이 아이들의 목소리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적고 있다.
<광고 4>의 주인공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있는‘블랙베리(BlackBerry)’폰을 개발한 RIM(Research In Motion)사의 CEO인 마이크 라자리디스(Mike Lazaridis)다. 그는 돈을 번 후 원래 자신의 관심사였던 이론 물리학을 연구하기 위해 6600만 달러이라는 거금으로 연구소를 설립해 세계적인 학자들을 초빙해 부담없이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하고 있다. 백만장자가 되고 뒤에도 자신의 꿈인 과학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고 있는 이 사람을 통해 아메리 칸 익스프레스 카드 멤버십의 가치를 올리고 있다.
<광고 5>에서는 나이트 샤밀란(M. Night Shyamalam)이라는 사람이 카드를 들고 있다. 언뜻 보면 누군가 싶겠지만‘식스 센스(Six Sense)’를 만든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다시 한 번 그의 프로필을 읽어 보게 된다. 열 살 때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해 열여섯 살에 마흔 다섯 번째 단편영화를 완성했다고 하니 타고난 영화천재라는 수식어가 틀린 말을 아닐 성 싶다.
<프리미어> 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 중 21위로 뽑히기도 한 유명인물이지만 그가 친필로 써내려 간 메모에 적힌 내용은 소박하기 그지 없다. 아내와의 키스를 최고의 추억으로 꼽고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는 평범한 이 남자의 프로필,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면서도 따스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이 사람이 쓰는 카드라면 왠지 참 좋은 카드일 것만 같다.
<광고 6> 은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배우로 토크쇼‘엘렌 (Ellen)’의 진행자인 엘렌 드제네레스(Ellen Degeneres)의 이야기다. 그녀는 지난 97년 미국 공중파를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해 화제가 되었다. 지난 미 대선에서 존 매케인 후보와 동성 간의 결혼을 가지고 설전을 벌였던 인물이다.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힌 연예인이 주인공인 광고,
내 삶의 일부가 된 다른 성적취향 그리고 이를 함께 한 카드의 이야기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가 단순히 카드가 아니라 멤버들의 평생 동반자임을 느끼게 해준다.
<광고 7~9> 를 통해서도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을 등장시키면서도 아멕스 카드다운 접근방식을 놓치지 않고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면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과장된 설정을 배제한 자연스러운 사진을 이용, 소비자와의 친밀감을 높이고 있다.
결코 유명하지 않은 카드
아멕스의‘My life, My Card’캠페인은 카드광고라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유명인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여느 광고처럼 유명인들의 화려함이나 겉모습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꾸밈없이 보여 주며 보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하루 종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사는 유명인들도 일상으로 돌아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낼 때는 그저 카드 영수증에 사인하는 하나의 평범한 이름 석자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언론에는 결코 보도되지 않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 이런 삶의 곁에는 언제나 아멕스 카드가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여기서 같은 모델을 쓰더라도 접근방식이 달랐다면 과연 이런 캠페인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광고를 대하는 우리의 선입견에 비추어 보면 이 광고의 카피는 이렇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여기 카피 중에 최근 구매한 리스트에 버터라? 너무 험블하지 않아? 이 정도 셀러브리티면 버터대신 18캐럿 다이아몬드라고 쓰면 어떨까?"
흔히들 현대사회는 사치를 파는 사회라고 한다. 여기서 사치라 하면 필연적으로 약간의 사기적인 요소와 아름다움을 판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만드는 광고를 보면 사치를 팔기 위해 너무 사기를 치면서 정작 미적 감각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경우가 있다.
고급스러운 문구와 사진으로 가득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카드의 멤버는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기현상, 그 열쇠는 품격을 찾는 방법에 있다. 광고적인 표현의 고급감도 중요하지만 광고에 등장하는 제품이나 브랜드가 갖고 있는 자체의 품격을 잘 지켜내고 또 살려 내는 것이 바로 사치를 파는 기본기가 아닐까 싶다.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유명인의 자필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신뢰도를 가지게 하는 효과는 물론 클래식한 디자인과 함께 하나의 비주얼 요소로 품격을 높이는 데 한 몫을 한다. 유명인을 기용했지만 결코 유명하지 않게 광고한 아멕스 카드, 이들의 이런 발상은 거꾸로 광고캠페인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꼭 되고 싶은 멤버
‘Do you know me?(1974-1978)’,‘ Membership has its privileges(1987-1996)’,‘ Do more(1996-2004)’등 다양한 슬로건으로 카드 광고의 역사를 이끌어 온 아멕스는 또 2007년 또 한 번, 새로운 슬로건을 꺼낸다. 바로‘Are you a cardmember?’다. 카드 발급자(cardholder)라기보다 카드 멤버(cardmember)라는 표현을 고른 것처럼 이 광고 캠페인도 유명인의 실생활 이야기를 통해 아멕스 카드의 멤버십을 통해 얻는 베네핏을 말하고 있다. 기존의 광고가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형 광고였다면 이번 캠페인은 행동을 유발(more of call to action)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고 10>에서는 배우인 해리 데이비드(Harry Devid)가 꽤나 불편한 표정으로 비행기에 앉아 있는 걸 포착하고 있다. 옆에 적힌 내용을 보니 꽤나 여행을 즐기는 것 같은데 일단 페이지를 넘기니 바로 뒷 장에 <광고 11>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은 토리노 동계올림픽 남자 하프파이프 금메달리스트 숀 화이트(Shawn White). 눈을 찾아 세계곳곳을 다니는 보더의 일상을 보여 주며 바로 뒤에 게재된 <광고 12>에서는 항공마일리지 혜택과 수화물 보험 서비스 등이 되는지 다른 경쟁사와 비교하며 아멕스 카드의 멤버가 되어 스트레스 없는 여행을 보장 받으라고 귀띔해 주고 있다.
<광고 13>의 주인공은 가수 비욘세(Beyonce)다. <광고 14>는 미국의 배우 겸 시나리오 작가인 티나 페이 (Tina Fay)의 이야기다. 유명 연예인으로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는 그녀의 생활은 솔직히 드러내 주는 코드는 바로 엉망이 된 집이다.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서류들과 천진난만하게 엄마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 그리고 책상 밑에 앉아 있는 티나 페이의 모습, 설명만 들었다면 분명 어지럽고 짜증나는 상황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광고를 보면 짜증난다는 생각보다는 바쁘지만 잘 해내고 있는 엄마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겉보기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서 한적함이 느껴진다. 바로 사진의 힘이다. 고도로 계산된 조명을 통해 앞과 중앙에서 그녀의 일과 가족을 비추는 한 편, 안에 작은 조명을 비춰 그녀가 이 어지러운 배경 속에서도 주인공으로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희망적인 표정연출은 그녀가 이 상황과 싸우고 있다 라기보다는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음을 표현해준다.
이 광고 뒤에는 바로 <광고 15>가 붙어 있다. 물론 아멕스 카드 멤버가 되어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실전적인 지침도 함께. My Life, My Concept 요즈음 클라이언트를 만나다 보면 컨셉트를 놓고 함께 방황할 때가 많다. 뭔가 힘있고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서로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지만 그중에 마땅한 녀석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부담이 크다보니 컨셉트에는 점점 군살이 붙기 마련이다.
그런데 마치 헤드라인처럼 족히 두 줄은 되 보이게 적혀 있는 문장을 컨셉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쯤되면 이런 컨셉트는 확장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기 마련이다. 좋은 컨셉트란 심플하고도 오래오래 널리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멋있고 힘있는 광고 캠페인을 볼 때마다 느끼는 바다.
내가 아멕스 광고 캠페인의 주인공인양 빈 칸을 채워 본다. ‘어릴 적 꿈이 뭐였더라?’‘내 인생이란 한 줄로 뭐지?’빈칸을 다 채워 갈 때 쯤, 내 머리 속은 카드 사용 설문지를 작성하듯 스스로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몇 개의 컨셉트를 가지고 계시나요? 그리고 어떤 컨셉트를 주로 쓰시나요? 주로 어떤 혜택을 받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