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헌 공연연출가 nyer1011@naver.com
어린 시절, 가족은 내게 애물단지였다. 아빠는 직업 없이 술판과 싸움으로 소일했고, 엄마는 식구들 입에 풀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생은 틈만 나면 내 물건에 손을 대니, 집이라는 공간이 들어가고 싶은 장소가 아니라 나오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다. 아빠는 아저씨, 엄마는 아줌마, 동생은 도둑놈이라는게 당시 내 지론이었다. 나는 종종 성당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아무도 없는 기도석에 앉아 나 자신에게 속삭이곤 했다.“ TV에서 봤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다 거짓말이야.”
고민과 시름의 원천이었던 가족을 잊기 위한 나의 선택은 자전거였다. 200원을 내면 30분간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었는데, 학교가 끝날 시간이면 자전거 가게 앞에는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남의 자전거를 빌려 타는 게 안쓰러웠는지, 어느 날 아줌마가 하얀 봉투를 꺼내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물론 자전거가 온전히 내 것이 되기 까지는 그 봉투를 노리던 아저씨와 싸워서 이겨야 했고,“ 나도! 나도!”를 외치던 도둑놈이라는 난관이 있긴 있었다. 그 후, 나의 생활은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페달을 밟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가방을 내팽개치자마자 페달을 힘차게 밟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바퀴가 휘어 있었다. 순식간에 내 머리 속엔, 두 발 자전거를 탈 줄 모르던 도둑놈의 부러운 눈빛이 떠올랐다. 방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구석에, 도둑놈이 울고 있었다. 때렸다. 마구 때렸다. 또 때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도 울고 있었다.
일터에서 돌아온 아줌마는, 도둑놈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말했다. 자전거를 타다가 벽에 부딪쳤는데, 넘어지면서 두 팔이 다 부러졌다고. 도둑놈은 팔이 아픈 것도 모르고, 그저 무서워서 울고만 있었던 거다.‘ 병신, 팔이 부러졌다고 하면 그렇게 때리진 않았을 거 아냐. 나는 아무 잘못 없어. ’꽤 오랫동안, 도둑놈은 두 팔에 깁스를 하고 살았다. 그리고 나는 그보다 긴 시간 동안 마음에 깁스를 했다.
어느 여름 밤, 나는 도둑놈과 마주 앉아 있었다. 도둑놈이 군대 가기 전날이었는데, 소주가 있었던 것만은 기억이 선명하다.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자전거가 화제에 올랐다. 내 입에선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기는,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웃음은 눈물로 바뀌었고, 멈출 줄을 몰랐다.
나이가 들면서, 나에게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가족을 부르는 호칭이 변했다. 아저씨는 아버지로, 아줌마는 어머니로, 도둑놈은 동생으로. 그리고 내 모자란 점을 수긍하고 사과하는 법을 배웠다.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되 접어두고 쉬는 요령도 얻었다. 내 옆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겼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도 알았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게 세월이 흐르면서 생기는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나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고, 그 시작은 가족에서부터였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삼성전자의 광고,‘ 또 하나의 가족’편. 말썽꾸러기 훈이 덕분에 엄마와 아빠는 고민과 갈등을 겪는다. 광고는 그 해결책을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훈이에게 해줄 말을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우리 가족의 얼굴을 떠올린다. 손가락이 전화기를 간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