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거리의 분기위에 스며드는 간판!
아카이브처럼 쌓이는 도시의 풍경
정자역 주변은 마치 신도시의 역사를 모아둔 박물관 같은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분당과 일산으로 대변되는 초기 신도시 모습부터 해서 최근 등장하는 지역까지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분당선 정자역 인근 상가에는 초기 신도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구획 별로 정돈된 규칙적인 블록과 오피스 타운을 타고 형성된 상권의 모습. 대형 건물에 큼직하게 붙은 간판과 개성 없는 가게들. 부천과 일산등 여러 신도시에서 수도 없이 봤던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몇 걸음 더 걸어 신분당선의 개통과 함께 최근 몇 년 새 들어선 아파트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 전혀 다른 정자동이 나온다. 블로거들이 흔히 말하는 이른바 정자동 카페거리다. 정자역 5번 출구앞 아파트 단지와 3번 출구 뒤편으로 형성된 대규모 단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거리가 만들어지고 재미있는 가게와 간판이 들어섰다. 그야말로 신도시의 역사가 그대로 거리에 기록돼 있는 셈이다. 초기 모습부터 최근까지. 간판 개선사업을 진행해야 할 생각이 들 정도로 난립한 공간부터 전혀 손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간결하고 아름다운 곳까지 다양한 형태의 도시가 모여 있는 곳이 정자동이다.
최근 등장하는 아파트는 단지 전체를 같은 느낌의 익스테리어로 구성하면서 간판과 매장 느낌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지지 않는 선에서 들어서는 것이 특징이다. 단지 전체 디자인 컨셉트에 간판이 녹아드는 분위기라고 하면 딱 맞다. 이는 어쩌면 지자체가 주도하는 간판개선산업 이후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관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주나 입주민 단체가 나서서 공간과 간판의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말이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신도시는 간판개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거리에 방점을 찍는 간판
정자동의 간판은 거리의 디자인을 완성하는 오브제 같은 생각이 든다. 특정한 컨셉트를 중심으로 간결하게 정리한 아파트 단지의 익스테리어와 디자인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느낌말이다. 마치 아파트 단지로 거리의 기본적인 스케치를 하고 간판으로 방점을 찍어 그림을 완성하는 듯하다. 정자동 카페 거리를 비롯한 새롭게 형성되는 상가 간판은 대부분 단지의 익스테리어 일관성을 지키는 안의 범위 에서 변화를 꾀한다. 아치형 혹은 지붕 모형으로 건물의 익스테리어를 구성하면 그 일관성을 지키 면서 매장 개성을 드러내는 간판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이는 간판개선사업이 목표로 했던 이른바 롤모델 전략을 구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간결한 형태의 간판을 시범사례로 보여주면 그 분위기가 자연스레 확산하도록 말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가게가 들어와 간판을 설치할 때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디자인을 구성한다.
정자동 거리의 간판이 흥미로운 것은 각자의 개성을 명확하게 표현하지만, 다양한 요소를 통해 공간의 공통적인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반원모형 아치, 지붕 형태 상단, 간결한 외벽등 단지별로 정해진 컨셉트에 따라서 공간의 개성을 드러낸다. 간판뿐만 아니라 익스테리어 등 다양한 디자인요소가 결합해 거리를 꾸미고 있다. 상가 중간중간 배치한 크고 작은 공원과 길거리에 정돈된 가로수까지 전체적인 어울림을 통해서 거리의 풍경을 만든다. 정자동의 간판은 가독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점이 되레 시너지 효과를 내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로수는 간판을 가리고 있지 만, 그것이 마치 오브제처럼 작용해서 간판을 돋보이게 한다.
이렇듯 간판을 통해 거리의 풍경을 바꾸는 것에 대한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자동의 사례는 핫플레이스의 풍경과는 또 다르게 배울점이 있다. 자체적으로 건물과 거리의 풍경을 바꿔가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불법을 합법으로 전환하며 난립한 간판을 정리하는 사업도 의미가 있다. 정비사업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정비사업에 더해 디자인을 중점으로 둔 개성 있는 간판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고민해볼 시기가 됐다. 간판 개선사업의 전략을 다각화한다는 측면에서 지자체는 정자동 같은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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