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 피터 드러커, 스티븐 코비, 잭 웰치…. 이들은 한때 서점가를 풍미했던 자기 계발서의 전설들입니다. 1970년대에 등장해 1990년대 불붙기 시작한 자기 계발서 열풍은 2000년대 들어서도 호황을 이어갔습니다. 당시에는 10만 부가 넘게 팔린 자기 계발 베스트셀러가 수두룩했습니다. 출판 시장에서 ‘10만 부’는 영화로 치면 ‘천만 관객’쯤 되겠지요.
자기 계발서는 일제 강점기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입니다. 그의 자서전 중 계몽적인 구절들을 발췌해 잡지나 신문에 연재하기도 하고, 단행본으로도 출간됐다고 합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지요.
지금은 어떨까요? 지난봄 한 출판 브랜드가 직장인 약 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주로 읽는 책은 56.4%로 1위를 차지한 자기 계발서였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계발에 대한 꿈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장 안에서 당신의 모습은 평상시와 동일한가요?” 잡코리아가 올해 초 직장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놀랍게도 약 80%의 직장인들이 “나는 가면을 쓰고 일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출근 후 내 모습과 퇴근 후 내 모습이 다르다는 얘기죠. 드라마 <직장의 신>에 나오는 계약직 사원 미스 김은 자격증을 무려 170개나 보유한 능력자인데, 회사에선 칼같이 일만 하는 냉철한 캐릭터지만 칼같이 퇴근한 후에는 탱고를 추는 뜨거운 캐릭터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시인과 촌장’이 노래했듯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 내재해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색하고 끄집어내며 발현시키는 것…. 요즘엔 이를 ‘멀티 페르소나’ 또는 ‘부캐’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 계발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사회적 성공을 위한 스펙 쌓기가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내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말 직장인들에게 “올해 가장 잘한 일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취미와 특기를 만든 거예요”라고 대답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과거의 자기 계발은 ‘나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은 열망에 가까웠습니다. 평범한 고등학생 피터 파커가 건물 벽을 유유히 기어올라갈 수 있는 능력, 어설픈 가장 스콧 랭이 상황에 따라 몸을 작게도 크게도 만들 줄 아는 능력…. 어떻게 하면 스파이더맨 슈트나 앤트맨 슈트를 얻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죠. 책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으나 “확고한 의지를 가져라”, “죽어라 노력해라”, “아침형 인간이 되라”처럼 뭐를 ‘하라’는 강요 앞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좌절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자기 계발은 결국 남의 얘기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냥 ‘또 다른 나’를 자신 안에서 끄집어낼 뿐이죠. 해야만 하는 무엇이 아니라 하고 싶은 무엇을 향해 다가갑니다. 앞서 출판 브랜드의 설문 조사를 언급했는데, 그 조사에서 2위를 차지한 장르는 바로 45%를 기록한 인문학·예술 서적이었습니다.
자기 업그레이드의 양상이 이렇게 달라진 데는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이 점차 어려워지는 사회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소확행’과 ‘워라밸’이 중요해지고 경제적 풍요보다 삶의 질적 수준을 높이려는 욕구가 증가했기 때문일 겁니다.
낭만적 정열…. 바야흐로 자기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욕망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몽주의 성향에서 자신의 창조적 가능성에 관심을 두는 낭만주의 성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제일매거진 8월호에서는 ‘삶의 전방위적인 질적 향상’을 추구하며,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기 계발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