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내는 미디어 변화와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에 대한 단상
글 ┃ 허웅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소장
새로운 미디어 기술은 커뮤니케이션을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인쇄술은 문자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가져왔고, TV는 시청각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SNS는 참여와 공유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으로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고도화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체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Experience Communication)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전의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넘어 인간의 감각기관을 확장해 자동으로 읽고 반응하고 행동하게 하는 체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가령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려 할 때 내 몸과 체형, 스타일 등을 자동으로 인식, 증강현실을 통해 옷을 피팅해 준다. 또한 근처 펍에 들어가면 주문을 하지 않아도 얼굴을 인식하고 좋아하는 음료와 필요한 서비스를 자동으로 주문하고 제공해 준다. 이미 이러한 체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체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기관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커뮤니케이션의 밀도 또한 한층 높여준다. 그렇다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가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과 커뮤니케이션 특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커뮤니케이션 접근방법이 필요할까?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을 근간으로 최근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접근방식과 사례들을 통해 몇 가지 의미 있는 단초들을 찾아볼 수 있다.
From Integration to Connection : 통합에서 연결로
Fuelband를 활용한 ‘Nike+’ 캠페인
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는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만병통치약처럼 회자됐다. 다양한 전달 매체들을 통합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높이는 접근방식이다. 이는 전달 미디어(Mass Media)가 중심이 되는 환경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인간의 감각기관이 확장되어 모든 것이 연결되고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소비자와 얼마나 잘 연결(Connection)되느냐가 중요하다.
2012년부터 나이키는 그동안의 전통적인 IMC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사람들 생활 속에 나이키가 항상 함께할 수 있는 연결고리, Fuelband를 개발하여 ‘Nike+’ 캠페인을 진행해 오고 있다. Fuelband는 손목에 차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아이폰과 앱이 연동되어 하루의 운동량을 체크하고 관리해주는 개인 퍼스널 트레이너 역할을 한다. 우리 생활 속에 나이키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디바이스(미디어)를 활용하여 소비자와 지속 가능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현재 나이키가 지향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다.
하기스의 ‘모션캠’ 캠페인
하기스 또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을 브랜드와 소비자의 연결고리에서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진행된 ‘아버지의 날’ 캠페인에서는 태동체험벨트(복대)을 만들어 소비자와 연결했다. 전기 센서가 장착된 한 쌍의 복대를 산모와 예비 아빠가 함께 두르면 산모들이 느끼는 아이의 발차기 등 태동을 부부가 오롯이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태동체험벨트가 아이와 엄마, 아빠의 감각기관을 확장해 상호 연결하는 미디어인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엄마와 아이, 브랜드 간에 연결을 이끌어낸 하기스 ‘모션캠’ 캠페인이 진행됐다. 모션캠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촬영할 수 있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로, 생활 속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 엄마가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들을 그대로 녹화 가능한 신체 부착형 관찰 카메라다. 이렇게 모션캠으로 녹화된 영상은 육아에 지쳐있는 엄마들에게 아이를 키우는 기쁨과 행복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처럼 고도화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전달 미디어 환경의 통합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감각기관의 확대를 통해 역동적 상호작용을 유도할 수 있는 연결 중심의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From Copy to Code : 카피에서 코드로
보통 ‘광고대행사’ 하면 카피라이터(Copywriter)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Just do it’, ‘Think Different’, ‘진심이 짓는다’, ‘사람이 미래다’ 등 멋진 카피 한 줄이 전달매체 중심의 환경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광고대행사에는 디지털 관련 부서가 만들어지고 그곳에는 공학기술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이들이 함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왜 그럴까? 새로운 기술들이 결집되고 있는 고도화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코드 즉, 새로운 기술이 커뮤니케이션 아이디어에 영감을 주고, 이러한 기술이 사람을 움직이고 마음을 사로잡는 커뮤니케이션 연결고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혼다의 ‘Sound of Honda’ 캠페인
2014년 깐느 광고제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혼다의 ‘Sound of Honda’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1989년 혼다의 드라이버로 F1 그랑프리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아리돈 세나(Aryton Senna)의 전설적인 드라이브. 혼다의 기술혁신 집결체인 인터네비(Internavi)를 활용하여 그 당시 역사적인 영광의 순간을 빛과 소리로 재현했다. 혼다 자동차에 차용된 기술인 인터네비 코드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인 것이다.
버드와이저의 ‘Buddy Cup’ 캠페인
버드와이저가 브라질에서 진행한 ‘버디컵(Buddy Cup)’ 캠페인은 사람들이 마시는 맥주컵에 NFC(근거리 통신 기술)칩을 부착하여,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입력하면 바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잔을 부딪칠 때마다 페북 친구로 등록되도록 했다. 대표적인 IoT 기술로 인정받고 있는 아마존의 ‘대시(Dash)’ 또한 그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다. 대시는 바코드 스캐너와 음성인식기를 결합한 막대 모양의 사물기기로, 이것으로 식료품 바코드를 스캔하거나 바코드가 없는 식료품의 경우 마이크에 대고 해당 물품의 이름을 말하면 자동으로 온라인 주문된다. 즉, 대시는 생활 속에 모든 사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자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인 것이다. 이처럼 과거 전달매체 중심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멋진 카피 한 줄이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끌 수 있었지만, 이제는 멋진 카피보다 새로운 코드, 즉 새로운 기술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영감을 준다. 요즘 필자 주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카피를 쓰기보다 새로운 기술 탐색에 노력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고도화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새로운 기술이 크리에이티브에 자극을 주는 또 하나의 창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코드(기술)는 크리에이티브에 영감을 준다.
From Distribution to Invention : 매체 집행에서 비즈니스 창출로
나이키의 CMO 트레버 에드워드(Trevor Edwards)는 “더 이상 우리는 미디어 기업들을 먹여 살리는 비즈니스를 하지 않겠다(We are not in the business of keeping media companies alive)”라고 선언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광고 매체비를 집행했던 나이키가 이제 더는 매체 집행을 하지 않겠다니,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궁금하게 하는 발언이다. 이 말의 속뜻은 더 이상 전달매체를 통해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매체 집행은 지양하고, 좀 더 자사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방식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많은 기업이 이 말에 공감하고 나이키가 지향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방향에 동의하고 있다. 이제 미디어는 확산의 수단을 넘어, 비즈니스를 움직이는 솔루션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의 요구인 것이다.
스페인 극장연합회가 진행한 ‘Pay Per Laugh’ 캠페인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은 미디어가 비즈니스 창출의 솔루션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한층 높여준다. 스페인 극장연합회가 진행한 ‘Pay Per Laugh’ 캠페인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스페인 정부가 극장 공연에 대한 추가 세금을 부가함으로써 티켓 값 상승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줄어든 관객을 회복하는 것이 극장주들의 가장 큰 고민이자 생존의 문제였다. 이들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디지털 기반의 미디어 아이디어에서 찾아냈다. 공연장 자리에 아이패드를 설치하고 안면인식 기술과 이를 연동하는 앱을 개발해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웃고 울고 즐거워하는 횟수를 확인, 공연이 끝나면 그 횟수만큼 개별적으로 지불하는 후불제 공연방식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실제로 관람객이 35%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를 통해 비즈니스 솔루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독일 공익단체 미셀로의 ‘The Social Swipe’ 캠페인
독일의 공익단체인 미셀로(Misereor)가 진행한 ‘The Social Swipe’ 캠페인은 마음은 있지만 귀찮고 불편해서 기부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즉각적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방법을 미디어 아이디어에서 찾아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공항이나 열차 대합실에 있는 디지털 사이니지를 카드 리더기로 확장한 미디어 솔루션이다. 디지털 사이니지에 있는 광고를 보고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사이니지 자체를 카드 리더기로 만들어 카드를 화면에 대고 긁으면 자동으로 2유로씩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된다. 이를 통해 1개월 만에 3,000유로를 기부받고, 전년 대비 23% 기부 건수 증가를 가져왔다. 그동안 전달매체 중심의 미디어 환경에서 광고 비즈니스 모델은 매체 집행에 의존해왔지만,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업의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아이디어로 커뮤니케이션 접근방법이 진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전술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다. 그리고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더 이상 멋진 카피 한 줄과 그림 한 장으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기에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고도화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기술을 활용한 아이디어와 실행 중심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접근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카피라이터(Copywriter)가 필요한 시대는 멀어져 가고 아이디어라이터(Ideawriter)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AD&Technology] 카피라이터(Copywriter)를 넘어 아이디어라이터(Ideawriter)가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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