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옷·개성있는 물건 등
실속없어 보이는 소비행위에
겉멋만 들었다 폄하하지만
거기엔 개인 정체성 고스란히
광고 등 창의적인 일뿐 아니라
모든 일에 걸맞은 꾸밈 갖추면
스스로는 물론 고객에게도
긍정적 기대감·자세 심어줘
[양희동 오리콤 카피라이터]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광고회사에 다니다 보면 실로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캐릭터가 드러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입고 있는 옷과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다. 옷과 물건을 고르는 기준이 실용성이나 가성비인 경우보다 자신의 감성에 맞는 디자인이거나 브랜드일 때가 많다.
하지만 개중에는 이런 옷과 물건에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철저히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고, 옷과 물건의 기능적인 측면에 더 주목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상사이거나 나이가 많을 때 그렇지 못한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겉멋만 들어가지고…. 그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기 딱이다. 가령 카메라를 구입하는데 특정 브랜드 로고와 감성을 너무 소유하고 싶어서 몇백만 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 카메라도 얼마나 잘 찍히는데! 겉멋만 들어가지고. 또 누군가 컴퓨터를 구입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 기반의 프로그램을 더 많이 쓰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애플의 컴퓨터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카페에서 멋있어 보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얼마나 불편한데…. 특별히 반박할 논리가 없다. 사실, 예뻐서, 그 브랜드가 갖고 싶어서가 이유라지만 어쩐지 논리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아 보여서다.
이런 경우도 있다. 오피스 인테리어가 소셜 미디어상에서 자주 화제가 되는 요즘, 회사의 인테리어를 조금이나마 바꿔보자는 제의를 하면 이 역시 겉멋에 치중한 비합리적인 지출이라는 피드백을 받을 때가 많다. 일을 하기에 효율적인 구조와 배치만 따질 뿐 일터에서 어떤 감성을 채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겉멋을 따지며 소비를 하고, 그런 공간에 놓이길 원한다.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입고,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감성과 맞는 기기로 일하길 원한다.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치며, 어떤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겉멋`이라는 거친 단어로 요약되고 또 거부되는 이런 일들이 과연 돈만 낭비하는 비합리적인 행태일까. 그것에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을까. 필자는 먼저 `겉멋`이라는 단어를 `꾸밈새`로 바꿔 말하고 싶다. `겉멋`은 왠지 속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속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꾸밈새`는 실속도 있지만 그 실속 있는 결과물을 어떻게 잘 포장하고 마무리할까 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다시 다니고 있는 광고회사로 돌아와 본다면 감각 있는 옷을 입고 크리에이터에 어울리는 기기를 들고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간다고 가정해보자. 일의 결과물이 더 중요하지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에게 광고와 브랜딩은 결국 기업의 꾸밈새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스스로의 꾸밈새에 아무런 가치를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이 누군가의 꾸밈새에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의 결과물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여주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전에 그 사람 자체에 대해 일의 과정에도 기대감을 품게 하려면 역시 스스로의 꾸밈새가 남달라야 하지 않을까. 물론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가치 있는 물건도 검은 봉지에 넣어주느냐와 오래 고민한 흔적이 있는 아름다운 포장에 싸서 주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의 꾸밈새는 그런 역할을 한다.
광고회사처럼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더라도 그 일에 걸맞은 꾸밈새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정확한 계산과 분석을 요하는 일에는 그에 맞게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는 꾸밈새가 필요할 것이다. 또 고객의 편의를 책임지는 일에는 그에 맞게 부드럽고 정갈한 꾸밈새가 필요할 것이다. 개성 있는 옷을 선물하느냐, 고급스러운 만년필을 선물하느냐에 따라 포장 역시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각각의 내용물에 걸맞은 꾸밈새는 `겉멋` 차원의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라 `에티켓`과 같은 기본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꾸밈새는 누군가에게 기대감을 품게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 취향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날은, 어쩐지 `나갈 맛`이 나고, 누군가를 `만날 맛`도 난다. 조명부터 색상까지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공간에 가면, 어쩐지 `일할 맛`이 난다. 그렇게 자신감이 생기고 일상을 지탱하는 새로운 힘이 생긴다. 이런 경험들이 주말에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평일에도 이런 남다른 꾸밈새가 주는 긍정적인 경험들을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단순히 `예뻐서` `갖고 싶어서`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입고 있거나 소유했을 때 내 꾸밈새가 달라질 수 있다면, 또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꾸밈새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겉멋`이 아닐 것이다. 이제 그들이 `겉멋`으로 바라봤던 나의 취향과 소비에 조금은 당당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양희동 오리콤 카피라이터]
- 출처 ▶ 매일경제 2019년 10월 10일자 온라인 기사 발췌
- 원본보기 ▶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19/10/813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