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하나가 되어
지난 2월, ‘DUNE : Part Two’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의 소식으로 한동안 연예계가 들썩였다. 덕분에 생각지 못한 멋진 영화를 접했고, 올해 미디어 전략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나에게 광활한 아라키스 행성의 사막 폭풍을 헤쳐 나가는 티모시의 여정은 좀 더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영화 속 결정적인 고비의 순간 그에게 읊조려진 내레이션이 미디어&광고 업계가 당면한 상황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삶의 미스터리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현실이다.
막아서는 이해할 수 없고 하나가 되어 함께 흘러가야 한다.”
“The Mystery of Life isn’t a problem to solve, but a reality to experience. A process cannot be understood by stopping it.
Understanding must move with the flow of the process, must join it and flow with it."
2022년 1분기 이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2023년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0.8%), 그리고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0.9%)을 제외하고 1.4%라는 최저 성장률을 기록한 해가 되었다. 2024년 경제 성장률 역시 2.1%로 전망되고 있다. 경제 상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국내 광고시장은 경기 침체의 거시적 환경 속에서 코로나 이후 심화된 디지털 가속화, AI 기술 혁신, 소비자의 미디어 이용행태 변화 및 규제 관련 이슈 등으로 인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변화무쌍한 아라키스 행성의 사막 폭풍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나 이 상황들을 막을 수 없다.
이번 글은 국내 총 광고비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TV와 디지털광고에 있어서 단순히 살아남기 위함이 아니라,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연결을 강화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할 2024년의 흐름을 '콘텐츠'와 '미디어' 측면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콘텐츠를 가진 자, 모든 것을 가질 것이다
‘DUNE’의 배경이 되는 아라키스 행성의 가장 귀중한 자원이 스파이스(Spice)인 것처럼, 소비자가 선택한 콘텐츠(Contents)는 미디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영향력 있는 플랫폼의 콘텐츠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컸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엔 콘텐츠 파워가 플랫폼의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즉, 소비자의 여정 속 최적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콘텐츠가 소비자의 관심과 선택을 받을 지 예상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2024년 가장 주목할 만한 콘텐츠 장르를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 스포츠(Sports)다.
그 포문은 1월 12일 시작된 AFC 아시안컵 축구였다. 선후배 선수들 간의 불협화음과 그로 인한 저조한 성적으로 조금은 퇴색되었지만, 지상파가 아닌 CJENM(tvN/tvN Sports) 단독중계를 통해 tvN의 1~2월 시청률은 단숨에 상승하였고, tvN스포츠채널의 존재를 성공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림 1 참고]
다음 포문은 야구였다. 올 3월 초 티빙(tving)은 강력한 야구 팬덤을 기반으로 한 유료가입자 확보와 월간 활성 사용자(MAU) 증대를 목표로 과감히 투자하여 KBO(한국야구위원회)와 3년간 프로야구 유무선 중계권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기존 포털을 통한 무료 시청은 불가해지면서, 향후 소비자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 가입을 선택할지, 아니면 케이블 스포츠 채널을 더 많이 시청할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또한 MLB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를 중계한 쿠팡플레이는 LA다저스 오타니와 SD파드리스 김하성 선수와의 맞대결로 관심을 끌었을 뿐 아니라 개막전 직관을 위해 고척돔을 찾은 수많은 셀럽들로 인해 더욱더 이슈몰이가 되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파리올림픽(24년 7월 26일~8월 11일)이다.
사실 올림픽 등의 빅 스포츠 이벤트에 대해 소비자들은 초반은 늘 소극적 시청자(Shy Viewer)의 모습이나 한국 선수들의 선전과 정비례하여 시청률 상승을 보여주는 것이 정설이다. [그림 2 참고] 어찌 보면 최근 스포츠 콘텐츠에서 밀렸던 지상파들이 파리올림픽을 통해 반격할 기회가 온 것이다. 파리(Paris)와 시차는 8시간이 나지만 아시아 국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종목은 아시아 시간대에 최대한 맞추어 편성한다고 하니, 이번 올림픽에서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우리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스포츠의 힘이 어느 정도 7~8월 시청률 상승으로 나타날지 기대해 보자.
이렇듯 2024년은 스포츠 콘텐츠가 채널 및 플랫폼의 고객 유치 전략에서 락인(Lock-In)의 핵심 역할을 하며 최우선적인 해법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콘텐츠의 시작과 끝을 스포츠로만 채운다면 2% 아쉬울 것 같다. 올해도 여전히 주요 방송사와 OTT는 자신들의 오리지널 킬러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시킬 것이다. 최근 드라마에 대한 키워드 중 하나는 도파민 충족을 위한 ‘뇌빼드(뇌를 빼놓고 봐도 되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올해 어떤 드라마들이 소비자의 관심과 선택을 받게 될지 궁금하다. [그림 2 참고]
#2. 경계가 없어지는 ‘Total TV’의 시대
디지털 가속화로 인해 기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융합되는 Big Blur현상이 각각의 역할, 영역을 지켜오고 있던 미디어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로 급변하는 시대에서 전통적인(Linear) TV가 대세감을 위한 캠페인의 메인 미디어로 활용되고 있는 이유는 단기간 파급력과 함께 노출-검색-액션으로 이어지는 성공적 전환 사례가 증명되면서 TV광고의 역할이 브랜딩을 넘어 퍼포먼스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미디어 이용 행태 변화로 인한 TV 시청률 하락과 이로 인한 과거 대비 도달범위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업계에서는 이런 변화가 영타깃(MZ)을 중심으로 생겨나는 트렌드라 생각해 왔지만, 5년 전과 시청률 추이를 비교해 보면 TV 시장을 굳건히 견인해 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40대 이상에서의 시청률 하락이 눈에 띈다. 이 현상과 반대로 타깃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등의 OTT(Over the Top)는 40대 이상에서 이용률 증가폭이 두드러지고 있다. 즉 동영상 소비가 40대 이상에서도 전통적인 TV에서 OTT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림 3 참고]
이 흐름과 함께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한국의 스마트 TV 점유율이 63.5%(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 이용실태조사 기준)를 넘어가면서 빅 스크린이 주는 편의성과 몰입감으로 인해 TV 디바이스를 통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청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나스미디어 NPR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동영상을 시청할 때 이용하는 기기는 모바일이 87.7%로 가장 높고, TV가 56.8%로 그 뒤를 따르지만, TV를 주 이용하는 비중도 약 32% 수준으로 확인된다. 즉, TV는 기존 전통적인 역할의 경계를 넘어 온라인 동영상 소비 매체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디지털 콘텐츠를 인터넷과 연결된 TV스크린을 통해 시청할 수 있는 커넥티드 TV (Connected TV, CTV)가 부상 중이다.
코드 커팅(Cord-cutting) 비율이 높은 미국의 경우, 커넥티드 TV 점유시간이 40%, 광고비도 Total TV의 약 30%를 차지하며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 TV시장의 감소분 이상으로 CTV시장이 커지면서 Total TV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스마트 TV 확대, 광고기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FAST), 그리고 저가의 광고요금제 OTT 확대를 통해 커넥티드 TV광고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4 참고]
앞으로 전통적인(Linear) TV의 개념에 국한되어 TV 하락을 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Linear TV와 Connected TV를 포괄하는 ‘Total TV’ 관점에서 브랜드와 소비자를 잘 연결할 수 있는지 등의 효과적인 광고 집행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 같다.
#3.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디지털 시장
2024년 디지털 시장의 가장 큰 흐름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주된 2가지는 AI 기술의 발전과 개인 정보 보호법 강화로 인한 변화일 것이다.
글로벌 마케팅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WARC의 2023년 이후 미디어 전망에서 디지털 시장은 ‘S곡선’의 정점에 도달함과 동시에 경기침체, 규제강화, 혼탁한 광고 환경 및 효율성 하락 등의 도전을 맞이하여 이전의 가파른 성장이 아닌 완만한 추이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24년 디지털 시장은 그동안 빅테크 기업의 광고 플랫폼 개선을 위한 인공지능(AI) 투자가 빛을 발하는 원년이 되어 디지털 시장의 변곡점을 만들 것이라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AI가 우선 활용되고 있는 분야는 창작 영역으로, AI를 활용한 광고 소재 제작 자동화를 위한 툴들이 나오며 효율성과 창의성을 증대하는 분위기이다. 미디어에서도 구글, 메타 등의 빅테크 플랫폼들을 중심으로 AI 기반 자동화 광고 설루션들이 출시되고 있으며 조금씩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국내외 빅테크기업들은 생성형 AI검색 서비스를 출시하며 소비자의 검색 경험을 확장하고 동시에 정보 소비 여정을 단축시키며 디지털 미디어 이용행태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렇듯 AI는 듄 영화 속 거대하고 강력한 생명체인 샤이훌루드(모래벌레)처럼, 디지털 광고 시장에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샤이훌루드(AI)를 다룰 수 있는 역량 확보 여부에 따라 AI 시대에서 기회를 잡을지 아니면 뒤처질지 결정될 것이다.
한편, '쿠키리스(Cookieless)'는 AI 못지않게 디지털 시장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2018년 애플을 시작으로 구글 크롬이 2019년 서드파트 쿠키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2024년에는 해당 정책이 본격 시행되면서 디지털 광고 생태계에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그림 5 참고]
이런 쿠키리스로의 전환은 소비자의 과도한 맞춤형 광고에 대한 저항감과 함께 개인정보보호 필요에 의한 것이지만, 고객의 행동과 이동 경로 등의 추적이 어려워 리타기팅 광고의 성과도 현저히 떨어지게 되고, 리타기팅 광고를 운영했던 클라이언트뿐만 아니라 서드파티 쿠키를 수집하고 분석했던 DMP, DSP 등의 애드테크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쿠키리스 시대에 대비해 이미 여러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콘텍스트 기반 타기팅, 퍼스트 파티 데이터활용, AI 및 머신 러닝 등이 활용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고객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제로파티 데이터, 구글 프라이버시 샌드박스가 내놓은 사용자 관심사 기반으로 타기팅 하는 토픽 API, 고객 구매 여정을 파악하고 소비자를 사로잡는 CRM 마케팅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들이 완전히 쿠키리스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림 6 참고]
쿠키리스는 데이터를 내부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대형 플랫폼들에게는 시장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서드파티 데이터에 의존해 온 중소형 매체들에게는 더욱더 악재가 될 수 있다. 이 상황은 마치 '듄' 영화 속, 일반인이 마시면 살아남기 어려운 ‘생명의 물’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2024년 쿠키리스라는 위기를 이겨낸다면, 향후 디지털 시장은 총 광고시장의 구세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하나가 되어 나아가보자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미디어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사막은 최근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과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DUNE"의 시대를 초월하는 대사, "Fear is the mind-killer"는 어느 해보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2024년의 미디어 시장에서 되새겨야 할 메시지 같다.
걱정이 인간의 능력을 마비시키고 진정한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가르침처럼, 우리도 변화를 걱정하기보다는 이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면서 Total TV 관점에서 스파이스 같은 콘텐츠를 잘 활용하고, AI 기술의 도움을 받아 쿠키리스 시대를 이겨 나간다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