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코뿔소, 코끼리, 기린, 불곰의 공통점은? 바로 모성애가 강하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아이를 키우면서 인간인 나에게 모성애가 없는 게 아닐까 의심하던 순간은 꽤 자주 찾아왔다. 임신했을 때 야근을 많이 해선지 신생아인데도 아이는 잠을 많이 안 잤다. 거의 두 달 동안 밤낮이 바뀌고 한번에 30분 이상 연속해서 잠을 잘 수도,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도 없는 생활이 계속되자 탄생의 기쁨은 조기종영되었다. 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있으니 그건 돈이 아니라 바로 체력이었다.
동생 없이 혼자 크면서 아이는 놀아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가능한 한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썼으나 늘 일과 피로 사이, 육아는 노동이었고 봉사였으며 또 다른 업무의 연장인 듯 했다. 오죽하면 ‘육퇴(육아퇴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땐 알지 못했다. 지금도 가장 미안하고 또 후회되는 일은 아이와 더 자주,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이다.
놀이는 늘 남편 담당이었다. 이상하게 다른 무엇보다 놀아주는 게 고되고 힘들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놀아주지 말고 같이 놀아 사랑하는 내 아이와 누구보다 잘 놀아주고 싶은 마음은 다 같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둘 중 하나다. 놀아주는 방법을 모르거나 놀아줄 체력이 없거나! 그렇다, 세상 모든 엄빠들은 궁극적으로 ‘놀이왕’이다. 비록 3분 놀이왕일지라도! 아이가 정말 원하는 그때, 원하는 사랑을 주는 부모가 되는 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선 소위 잘 나가는 아버지와 그렇지 못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6년 만에 서로 뒤바뀐 아이를 찾는 과정이 주된 줄거리인데, 진정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의 조건은 결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며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동안 부모 또한 아이를 통해 길러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아이가 없을 때도 뭉클했는데, 지금은 한 줄만 읽어도 울컥해지는 ‘글리코유업’(어린이용 요쿠르트) 광고도 소장각이다. 이것은 카피가 아니라 차라리 詩다.
‘울면서 태어난 너니까 앞으로, 많이 웃길 바래.’
‘깜짝 놀라거나 반성하거나 부모인데도, 너에게 길러지고 있다.’
‘자란 너를 상상할 때마다 지금의, 너와의 시간을 소중히 하자고 생각해.’
‘달리는 거리가 넓어져 간다. 조금, 쓸쓸하다. 그래도 기쁘다.’
‘화가 나더라도 용서해 버린다. 당신의 잠든 얼굴은 비겁합니다.’
‘엄마 힘의 원천은 당신입니다. 엄마의 약점도 당신입니다.’
(출처: 블로그 그녀는 코피라이터 중에서)
그 어떤 임팩트보다 공감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신뢰하며, 자신을 이해하는 브랜드를 믿습니다. (도널드 밀러 <무기가 되는 스토리>) 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놀다 지쳐 잠들리라”라는 캠페인 키워드를 내세우며 단숨에 회원수 60만 을 돌파한 키즈놀이앱 브랜드 ‘놀이의발견’의 약진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는다는 말을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공부보다는 경험을 중시한다는 요즘 젊은 부모들(주로 1980년대~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주도 학습만큼 자기주도 놀이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창의력과 놀이력은 맞닿아 있는 개념이니까.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클래스, 키즈카페, 체험학습 등 7개 카테고리, 9천여 개 놀이 컨텐츠를 한 곳에서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다니! ‘오늘은 또 어떻게 하루를 버텨낼까’ 고민하는 이 땅의 부모들에게 큰 위로와 응원이 될 것 같다.
“잘 들어…… 지나간 짜장면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어린이들, 인생은 그런 거야” (드라마 <환상의 커플> 중에서)
지나간 유년시절은 다시 돌아올 리 없지만, 즐거웠던 놀이의 추억은 수많은 어른이들의 마음 한 켠에 남아 힘든 날 힘든 마음 위에서 별처럼 빛날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아이들이 잃어버린 놀이를 되찾을 수 있기를! 부모들은 누구나 놀이왕이 되기를!
김미경 오리콤 IMC Creative 2HQ 제작본부장